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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출가'한 여수 흥국사 영우 스님 "삶 자체가 소풍"

일산백송 2022. 5. 7. 22:08

'은퇴출가'한 여수 흥국사 영우 스님 "삶 자체가 소풍"

오병종 입력 2022. 05. 07. 20:21 
조계종 '은퇴출가' 제도.. 만 51세 이상 65세 이하 대상으로 2018년 시행

[오병종 기자]

  은퇴출가자 흥국사 영우 스님. 출가 3년째 64세다.                                                                                   ⓒ 오병종

 "출가요? 하하~ 저는 출가할 집이 없었어요. 그러니 진정한 출가는 아닌 것 같아요. 소풍 나온 거죠! 삶 자체가 소풍이니까요."

'은퇴출가'를 한 영우(64) 스님의 '출가' 소감이다. 영우 스님은 지난 2019년 61세에 여수 흥국사로 출가해 행자 생활 1년을 마치고 조계종단에서 정한 교육 절차를 통과하고 사미계를 받아 예비 승려(사미승)가 되었다. 사미계 받고 5년을 채워야 비구계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데, 64세인 영우 스님은 앞으로 3년 더 수행한 후 종단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테스트를 통과하면 정식 승려가 된다.

조계종 '은퇴출가' 제도는 사회 각 분야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경력자 중 은퇴시기의 연령대인 만 51세 이상 65세 이하인 자에게도 수행자 삶을 살도록 하는 출가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로 2018년부터 시행됐다. 이전에는 출가 대상 자격이 만 13부터 50세 이하였다.
  
 
  대운전 앞 마당에서 연등을 달고 있는 영우 스님.
ⓒ 오병종
 
 
출가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서울 출신인데 왜 여수 흥국사로 출가했을까. 현재 흥국사의 주지 명선 스님과 부주지 진만 스님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70년대 불교계 아주 유명한 광덕 스님께서 창간한 <불광> 잡지 편집진으로 손 위 누님이 참여했고, 광덕 스님을 도와주는 비서 역할도 하는 터라 불교적인 집안 분위기 영향을 받았다. 재수해서 대학을 갔는데, 처음 낙방하자 누님이 구례 화엄사에 머리 좀 식히자고 데리고 왔었는데, 그때 화엄사 주지 스님이 명선 스님이었고 진만 스님이 교무스님이었다. 그때부터 진만 스님과는 꾸준히 거의 형님처럼 따르며 인연을 이어왔다.

청년 시절에도 가끔 진만 스님은 출가를 권유하기도 했는데, 출가를 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그러다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마치고 자녀들도 다 성장했고 어쩌다 이혼도 하게 되었다. 재혼해볼까도 생각했는데 그즈음에 내 나이에도 출가가 가능한 은퇴출가 제도가 생겨서 두 스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이곳 흥국사로 출가하게 된 것이다."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지난 4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흥국사 안에 계신 분들이 초파일 행사 대비 회의를 하고 있다. 맨 왼쪽 벽 밑에 검은 빵모자에 안경 쓴 이가 영우 스님. 
ⓒ 오병종
 
마음을 다잡고자 출가 전에 영우 스님은 법구경 붓글씨 사경을 13년간 해왔다. 한문으로 네 번, 한글과 영어로 각각 세 번씩 썼다. 또 5~6년간은 1일 1식만 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오체투지 수행도 꾸준히 해왔다. 반 승려 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는 사회생활 중에 IMF라든가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라든가 고비 때마다 번창한 사업들이 크게 휘청거리기는 경험도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평소 승려 생활을 동경했다 하더라고 사회·경제적인 환경이 일면 나를 출가하도록 몰아붙인 측면도 있다"고 고백했다.

일반사회와는 잘 안 맞는다고 여기고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는 얘기다. 사회·경제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그런 고백은 은퇴 후 출가가 그에게 '도피'라는 의미일까?

"우리 정도 나이면 대부분은 인생에서 달아나고 싶고 도피하고 싶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탈출구를 찾는 것인데 중대한 선택은 계기나 전환점이다. 나는 쌓아 온 다양한 경력들과 사회 인연을 끊고 단순 명료한 절 생활을 선택했다.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도피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 안 쓴다. 도피도 전환점이니까."
 
 
  매일 새벽 4시, 도량석 목탁을 두드리며 여수 흥국사 원통전 앞을 지나고 있다.
ⓒ 오병종
 
은퇴자로서 늦게서야 수행에 길을 걷고 있는 영우 스님은 행자 생활을 마친 말단 예비 승려 3년째다. 그는 흥국사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새벽 '도량석'을 책임지고 있다. 

흥국사는 매일 새벽 예불 시간이 5시여서 영우 스님은 전체 도량을 돌면서 흥국사 아침 예불 의식의 시작인 만큼 매일 새벽 4시부터 전체 도량을 돌며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목탁을 두드린다. 도량을 청량하고 맑게 해주며 새벽을 깨운다. 새벽을 깨우는 목탁을 두드리며 수행자의 길을 다시 음미한다.

"실은 출가했어도 속세와 연결이 이어진다. 불교가 산중에만 머물 것은 아니라고 본다. 스님 직책은 서비스업이다. 신도들에게 잘 대해주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불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 성직자들은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 분들에게 평등하게 따뜻하게 대해 줘야 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예비 승려로서 서비스업 종사자인 만큼 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 도량석은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의식이면서 내 자신에게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준비를 잘해 나가는 수행과정이다."

절 생활, 끝없이 나태해지기 쉬운 조건
 
 
  클래식 기타를 치는 영우 스님. 기타치는 것을 스님은 가무가 아닌 수행이라고 여긴다.
ⓒ 오병종
 
그는 산중 절 생활의 장점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불경을 읽고 명상을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하루 일과 생활 중에 영어 원서를 읽고, 붓글씨를 쓰고, 기타를 치는 시간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채운다.

그러나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큰 단점일 수도 있다는 걸 초반에 적응하면서 절 생활이 끝없이 나태해지기 쉬운 조건이란 걸 깨달았다. 지금은 행자승이라고 해도 산에서 나무를 해온다거나, 물을 길러 온다거나 하질 않기에 예전에 비해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고, 어느 날은 어떤 대화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지나갈 때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스케줄을 짜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해 일정을 짰는데 클래식 기타 치는 것을 포함시켰다. 이 역시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준비과정이다.

"클래식 기타는 학창 시절에 치고 젊어서도 쳤는데 사업 때문에 바빠서 오랫동안 놓고 있었다. 출가해서 보니 시간이 많아 다시 쳐보았는데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불교 교리엔 가무는 금한다. 나는 기타 치는 것을 '가무'라고 여기지 않는다. 수행이라고 여기고 꾸준히 시간을 정해놓고 치고 있다. 나이 들어서 치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다 염증이 생기고 붓기도 하지만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여수 흥국사 주지 명선 스님(앞)과 사찰 경내를 돌아보고 있는 영우 스님
ⓒ 오병종
 
그는 사회에서 외국업체 한국 대리점도 했고, 외국에 나가서도 사업을 했다. 영어로 말하고 글 쓰는 일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명선 스님께서 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사회 경력을 자주 얘기한다거나, '나는 무엇을 했다'하며 자랑하는 듯한 태도는 지양하라고 사미 영우 스님께 조언한다.
      
흥국사 주지 명선 스님은 서산대사 <선가귀감>의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를 인용했다.

"그 이전 사회생활 할 때의 생각을 사찰까지 가져오면 안 된다는 얘기다. 흰옷에 물이 들지 검은옷에는 물이 안 드는 법이다. 뭐가 가득 차 있으면 안 되고 비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입차문래 막존지해'는 절 문으로 들어오면 이전에 '나는 뭐 했다' 하며 말 하지도 말고, 속가에서 경력으로 우쭐대서도 안 된다는 그런 뜻이다."

'은퇴출가'라는 혁신적인 인생 선택
 
  흥국사 새벽 예불 광경. 맨 왼쪽이 영우 스님.
ⓒ 오병종
 
흥국사에는 또 다른 은퇴출가자 사미승 영만(69) 스님이 계신다. 영우 스님보다 1년 먼저 왔다.
그러나 영만 스님은 사진 촬영도 인터뷰도 사양했다. 
다만, 늦은 나이에 출가하면 노후에 병들었을 때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런 게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불교적인 단순한 답을 들려주었다. 이 부분은 인터뷰 허가를 얻었다. 영만 스님 얘기다.

"노후 걱정이요? 사람은 누구나 늙죠? 또 죽죠? 나도 늙고 죽겠죠. 늙으면 늙고 죽으면 죽는 겁니다. 이게 보편적인 진리인 거죠. 죽을 때 그냥 죽는 것이니 그걸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죠. 저는 '누가 보살핀다', '안 보살핀다'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자녀가 있다고 그 자녀가 다 보살피게 되는 것도 아닐 테고, 가족이 없다고 달리 죽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상황이던 '그냥 죽는 것'이죠. 죽는 문제를 미리서 특별히 걱정은 할 건 아니라고 봐요. 왜냐면 해가 뜨면 뜨고, 지면 지는 것이죠. 죽음은 자연현상이고 법칙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노후 걱정? '죽게 되면 그냥 죽는다!' 이게 제가 드리는 답입니다."

참으로 단순하다. 명쾌하다. 일반 속세인은 그런 단순명료한 사고체계를 갖기가 쉽지 않다. 과연 사회생활 다 마치고 '은퇴출가'라는 혁신적인 인생 선택을 한 사람다운 답이다.

우리의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다준 나이 든 사람들의 늦은 '출가'는 시대와 사회의 요구를 수용한 한국 불교계가 선택한 고육지책일지 모른다. 지난 2005년 출가자 감소 해소를 위해 출가 연령 40세 상한선을 51세로, 다시 2018년에는 '은퇴출가' 길을 열어 65세에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100세시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제3의 인생'을 수행자로 살고자 하는 노후세대 선택의 기회와 폭이 넓어진 광경이다. 속세 연을 끊고 출가를 통해서 또 다른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삶의 기쁨을 누린다면 한 생에 있어 혁신적인 선택임은 분명하다. 은퇴 후 수행자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영우 스님이 해준 조언이다.

"조건이 된다면 권하고 싶다. 독신이어야 한다. 이혼을 했거나 사별한 그런 조건이면 좋다. 내가 겪어보니 절 생활이 좋아서 권하는 거다. 마음을 닦고, 환경과 자연이 좋은 사찰 생활이 맘에 든다. 이 점은 와서 겪어봐야만 안다. 나이 드신 분이 다 버리고 출가 결심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뿐이다. 많은 인연, 자신의 많은 업적도 다 놓고 와야 한다. 대신 본래 자신을 찾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복지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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