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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의 길고 낯선 독특한 성씨..디아스포라 애환 담겨있어

일산백송 2020. 12. 19. 19:39

고려인들의 길고 낯선 독특한 성씨..디아스포라 애환 담겨있어

박호재 입력 2020.12.19. 18:11 

최쎄본의 출생증명서.이 증명서에서 알 수 있듯이 '최'씨는 러시아어로 '쪼이'로 표기된다(사진1). 제가이 레브의 당원증. 조씨가 러시아어로 표기되면서 '제가이'가 되었다(사진2)./나눔방송 제공


우리 표현법에 무지한 러시아 관리들의 기록이 빚은 왜곡, 본래의 성 찾아줘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같은 민족이지만 고려인들의 성씨는 독특하다. 뗀 니꼴라이, 우가이 알렉산드르,

니 베라, 노가이 나딸리야, 짜이 유라, 쪼이 빅또르 등등이 우리가 흔히 듣는 고려인들의 성과 이름이다.

고려인 3세 시인 리 스따니슬라브는 이를 두고 "고려사람 이름이 없어졌다. 짧은 우리의 성만 남았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고려인들의 성씨는 왜 이렇게 우리에게 이처럼 낯설게 다가설 정도로 특별해졌을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유랑민족의 또 다른 애환이 숨겨져 있을을 알 수 있다.

 

두만강을 건너며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고려인들의 성씨가 길고 특별해진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발음과 표기체계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러시아어로 우리의 성씨를 표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발음 왜곡 현상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말 구어체 표현법에 대한 연해주 호적등록부 관리들의 오해와 무지 때문이었다.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거주 등록을 할 때 러시아 관리들이 성씨를 물으면 평소의 습성대로 허가, 마가,

지가 등으로 대답했다. 성씨 다음에 ‘가’를 붙여 대답하는 우리말 관행을 모르는 러시아 관리들은 ‘가’를 그대로

성씨에 포함 시켜 지금의 ‘허가이, 마가이’ 같은 성씨로 굳어졌다.

그 결과 받침 발음이 없는 대부분의 성씨는 니가이(이), 뺘가이(배), 셰가이(서), 유가이(유), 제가이(조), 차가이(차) 처럼

3음절의 성씨로 변질됐다. 물론 때로는 이와 같은 성씨들이 ‘가이’라는 꼬리표 없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채나 최 처럼 발음이 복모음으로 이루어진 성씨는 이에 대응하는 러시아어 복모음이 없는 탓에 ‘짜이’ ‘쪼이’ 등

두 개의 단모음으로 풀어 쓰게 되었다.

다행히 러시아 관리들이 김, 박, 신, 윤, 한 과 같이 받침 발음이 있는 성씨에는 ‘가’를 붙이지 않아

본래의 성씨 그대로 남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말 받침 ‘이응(ㅇ)’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발음이 없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러시아어에서는 이를 ‘니은(ㄴ)’ 발음으로 대용하는 데 그러다 보니 정 씨와 전 씨는 ‘뗀’ 씨가 되고,

송 씨는 "손"씨로 변해버렸다. 또 변씨는 ‘삐엔’으로, 여씨는 ‘예가이’로, 왕씨는 ‘반’으로 표기되는데,

그러다 보니 이주해 온 고려인들을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각각 편 씨와 예 씨와 반 씨로 명기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도 있다.

이처러 성이 바뀌어버린 사람이 다행히 자신의 본관을 알고 있다면 본래의 성을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찾을 방법은 영영 사라져버린다.

고려인들 또한 자신들의 성씨 표기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1990년대에는 몇몇 학자와 명망가들이 성씨 표기를 재정립하자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호적을 모조리 들춰내야 하는 일이므로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였다.

또 소련이 해체되어 동일한 국가의 공민이었던 고려인들이 각기 다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성씨를 재정립하는 일은 더욱 요원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만이라도 고려인들의 성씨를 올바로 찾아 표기해주는 노력이 필요하지않을까?

고려인들은 조상이 가르쳐준 본관을 기억함으로써 왜곡된 자기 성씨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고 나름 노력해왔다.

국내 이주 고려인들의 이러한 노력에 부응해 그들의 본래의 성과 이름을 정확히 찾아 불러주는 것 또한

그들의 정착을 돕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forthetru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