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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착한 분" 극단선택 경비원 위해 분양소 차린 주민들 김지아

일산백송 2020. 5. 11. 15:35

중앙일보

"바보처럼 착한 분" 극단선택 경비원 위해 분양소 차린 주민들

김지아

입력 2020.05.11. 14:27수정 2020.05.11. 14:42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

 

“갑질 없는 세상에서 억울함 꼭 밝혀질 겁니다.” “저 임신해서 같이 좋아해 주셨는데…원통하고 슬픕니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에게 폭행·폭언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50대 경비원 최모씨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1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경비실 앞 직접 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엔 입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향초와 국화꽃, 사과, 배, 전이 놓여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한 주민은 “어제 집에서 향초를 가지고 나왔는데, 어느새 다른 주민들도 직접 전을 만들어 놓고 꽃을 사 왔다”며 “주민들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로 바보처럼 착했던 경비원이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18살, 15살 자매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스케치북에 “추모와 반성의 촛불을 밝힙시다”라는 문구를 쓰며 추모를 이어갔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

“경비원, 협박당해 밥 안 넘어간다” 호소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근무를 하던 경비초소 모습. 과거 그는 주민에게이미지 크게 보기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근무를 하던 경비초소 모습. 과거 그는 주민에게

입주민들은 “평소 경비원 최씨가 입주민 A씨에게 폭행·폭언을 당했다고 호소했다”고 입을 모았다. 분향소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아파트 입주민 이모(40)씨는 “주차를 도와주시던 경비아저씨가 ‘요즘 주차 문제로 협박을 당해 힘들다. 밥이 안 넘어가 뻥튀기만 먹는다’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며 “그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드려야 했는데 원통하다”고 말했다. 최씨가 근무하던 경비실 내부엔 뻥튀기 봉지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서울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1일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차량을 밀어서 옮기는 과정에서 입주민 A씨와 시비가 붙었다. 최씨는 지난달 28일 경찰에 A씨를 폭행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 이후 최씨는 오히려 ‘역고소를 하겠다’는 협박과 폭행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

 

일부 입주민들은 경비원이 폭행당한 사실을 이달 초부터 알고 있었다. 아파트 입주민 황모(48)씨는 “3일 아파트가 소란스러워 나와보니 입주민 A씨가 경비원에서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며 “이 장면을 목격한 입주민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가자 경비원은 주민들 뒤로 몸을 숨기며 ‘저는 여기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딸과 먹고살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당시 A씨는 “저 경비가 사람 밀쳤다. 잘라야 한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입주민 “발등뼈, 코뼈에 폭행 흔적 발견”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추모하고 있다. 김지아 기자

 

경비원 최씨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입주민 다섯명은 관리사무소 등에 찾아가 경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황씨는 “이때 경비원 최씨가 4월 말부터 A씨에게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경비실 안에서 지속해서 맞았고, 역고소할 거란 협박을 받아온 사실을 털어놨다”며 “입주민들이 뜻을 모아 지난 5일 최씨를 인근 병원에 입원시키고 MRI촬영을 해보니 발등뼈에 금이 가 있고, 코뼈도 부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경비원 최씨는 A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할테니 몇천만원은 준비하고 있으라”라고 말해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입주민은 편지를 유족에게 전달하겠다며 손편지를 써왔다. 김지아 기자

 

입주민 B씨는 “최씨가 생전 친형에게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도와주는 주민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들을 봐서라도 살아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씨는 10일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해자로 알려진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강북서 관계자는 “현장 CCTV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조사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