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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일산백송 2014. 8. 23. 11:56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4.08.23 00:16 / 수정 2014.08.23 00:24

딸아이가 네 살 때다. 열이 오르는데 해열제를 먹여도 내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감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다 아이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말을 시켜도 알아듣지 못했다. 

덜컥 겁이 나서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체온은 어느새 40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의사 선생은 흔한 열 경기라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큰 눈망울에 총기를 잃고 인형처럼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고, 몸을 꼬집고 때려도 아무 반응 없이 입맛만 다셨다. 

아내 앞에서 겉으론 침착한 척 하고 있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태어나서 이보다 무서운 순간은 없었다. 병원의 처치 방법도 물찜질뿐이었다. 

애 온몸을 닦고 또 닦았다.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는 주제에 누구일지 모를 절대자에게 하염없이 기원했다. 

제발 살려만 주십사고.

열이 내리고도 한참을 반응 없이 자던 딸애는 갑자기 거짓말처럼 눈을 깜박이며 엄마, 아빠를 찾았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보다 더 기뻤다. 

호두껍데기 속 엄지공주의 세계 같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엄마, 아빠에게 돌아와 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떠올린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한 왕이 숲으로 사냥을 갔다가 예쁜 아기 사슴을 발견하고는 활을 쏴 명중시켰다. 

그런데 활을 맞지도 않은 어미 사슴이 죽은 아기 사슴 옆에서 슬피 울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조각조각 잘라져 있었다. 

왕은 모녀 사슴을 고이 묻어주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불교 우화다. 

어릴 때 읽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뜻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 날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때 기억을 유민이 아버지의 움푹 파여 뼈만 남은 다리와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사진을 보며 

다시 떠올렸다. 

딸아이가 시퍼런 물속에 잠겨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 조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그 아비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 왔다.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때 무슨 여야의 구분이 있었을까. 모두가 같이 울었고 같이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 누구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고, 누구는 그 옆에 와서 빨리 죽어버리라고 저주하고 있다.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대립 당사자의 분쟁을 매일 보는 판사로서 어느 한쪽만 옳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공격이 공격을 부르고, 불신이 불신을 낳다 보면 가족도 이웃도 원수가 된다.

재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으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밝히자고 동의했다. 

그런데 한낱 원인을 밝히는 ‘방법’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 때문에 한 아비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광주지방법원은 이 사건 재판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전문가를 불러 

심각한 충격 상태에 있는 유족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사전 교육을 받았다. 

대법원은 긴급히 규칙을 개정하여 광주 재판을 안산지원에 생중계했다. 

광주의 재판부는 생존 학생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안산으로 찾아갔다. 

담당 검사들은 학생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학교를 찾아가 언니, 오빠처럼 

친밀하게 절차를 설명해 주었다. 

재판 후 유족 측 변호사는 학생들을 대신해 감사의 글을 SNS에 올렸다. 

이런 노력의 이유는 이 사건이 ‘예외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자기 아이들이 산 채로 숨져 가는 것을 집단적으로 장시간 지켜봐야 했던 사건이다. 

어느 나라의 법률가든 이런 경우 혹시나 모를 후속 비극의 방지를 최우선적 목표로 보고 

예외적인 절차적 배려를 할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배려는 절차에 국한된 것이고, 결론은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법관의 사명은 그 어떤 피고인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공분하는 것을 경계하고, 엄정하게 증거로 입증되는 사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 국민의 분노가 법원을 불태운다 해도 말이다. 

분노가 결론의 엄정함을 좌우한다면 이는 문명국가로서의 이 나라의 침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넉 달 전 모두가 공유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분명히 서로 대화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모든 비본질적인 논쟁은 치우고,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하자. 

딸아이를 그렇게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무심히 같이 지켜보기만 한 후 

이 사회는 더 이상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