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증인석 앉은 현직판사 "임종헌, 박근혜 좋아할 문건제목 정해"
이호재 기자 입력 2019.04.03. 03:00 수정 2019.04.03. 05:21
'사법권 남용의혹 문건' 작성 정다주 판사, 검찰측 증인으로 법정 증언
재판 개입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흰봉투 2개를 들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걸어가고 있다. 뉴스1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사법연수원 16기·수감 중)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문서로 작성하는 일종의 납품 형태였습니다.”
2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311호 중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5회 공판에서 검찰 측 증인인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43·31기)는 이렇게 말했다.
임 전 차장의 얼굴은 점점 붉게 상기됐다.
○ 현직 판사, 직속상관에 대한 첫 법정 증언
정 부장판사는 오전 10시 32분 법정에 들어섰다.
증인보호 절차를 미리 신청해 방청석이 아니라 피고인 등이 이동하는 구치감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입정했다.
정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했고,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을 작성했다.
임 전 차장의 신임을 받았지만 현직 판사로는 처음으로 법정에서 임 전 차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임 전 차장이 판사들의 검찰 진술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하자 검찰 측은 정 부장판사 등
전·현직 판사 100여 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과 2m 남짓 떨어진 증인석에 앉았다.
가림막을 설치하지 않아 임 전 차장과 서로의 표정까지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정 부장판사는 증언을 하다 종종 임 전 차장을 쳐다봤지만 임 전 차장은 시선을 피했다.
○ “林, 정부-여당서 긍정 평가자료 뽑아라” 지시
2014년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항소심 효력정지 결정 재항고이유서 검토’ 문건 작성 이유를
정 부장판사는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당시 임 전 차장이 “청와대가 전교조 사건을 최대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역풍이 불 수 있다.
사법부에 대한 보복이 이뤄질 수 있다”며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문건엔 사법부의 권한이 남용된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비밀스럽게 작성돼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2015년 7∼8월 박근혜 전 대통령 독대를 앞두고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을 위해 생산된 문건의 제목인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바로잡아 고침)’에 대해선
“임 전 차장이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문구로 직접 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건 작성 전) 임 전 차장이 정부와 여당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자료를 뽑아 달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52·수감 중)의 1심 재판장이었던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성 부장판사로부터 수시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 林 “당시 상관으로 책임감 느낀다”
정 부장판사는 “(재판과) 맞바꾸거나 거래하려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방안을 전제로 문건을 썼다”면서 재판거래 의혹은 부인했다.
임 전 차장은 재판 도중 정 부장판사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임 전 차장은 “증인과 오랜 인연이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 만나 마음이 무겁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당시 상관으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의 업무 등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던진 임 전 차장은
“제가 자꾸 감정이 격해지는 거 같아서 그만 질문하도록 하겠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지시 사항이 적혀 있는 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 3권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검찰이 발견한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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