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환자 흉기 사망' 의사는..우울증 명의 임세원 교수
입력 2019.01.01. 16:46 수정 2019.01.01. 19:46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자
2016년 우울증 극복기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펴내기도
동료 의사들 "자신에 엄격하고 환자에 따뜻했던 의사"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강북삼성병원 모습. 다음 로드뷰 갈무리.
지난 31일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생전에 자살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에 힘써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임 교수는 20여년간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우울증·불안장애 등과 관련한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대한불안의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맡는 등 국내 불안의학 학술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2011년 개발된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보듣말)의 개발자로,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을 받기도 했다. ‘보듣말’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전국에서 7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는 2016년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알키)를 펴내기도 했다. 한 개인으로서 ‘마음의 병’을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된 진솔한 경험담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2012년 미국 연수를 앞두고 발병한 만성 허리디스크 통증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함께 활동했던 동료를 잃어버린 임 교수의 동료들은 하루아침에 훌륭한 선후배를 잃어버린 슬픔과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임 교수와 함께 ‘보듣말’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던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의사로서 자신에겐 한없이 엄격했지만, 환자들에게는 너무나 관대하고 따뜻했던 친구였다”며 “지난해 공군에 이어 올해 육군에 도입되는 ‘보듣말’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로서 밤낮없이 일하느라 동료들이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다. 불과 24시간 전까지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임 교수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비통해했다.
황태연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장 역시 “누구보다 환자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의사였는데, 그런 의사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게 정말 가슴이 아프고 충격이 크다”며 “이번 일처럼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의료진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임 교수를 환자로 또는 책을 통해 접했던 일부 누리꾼들은 에스엔에스(SNS)에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임세원 선생님. 보고듣고말하기 프로그램을 접하며 참 따뜻하고 다정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그랬구나. 눈물이 난다.”(@bluesinthef***), “운 좋게 살아있는 2019년 1월1일. 조금 썰렁하지만 단호했던 선생님의 유머를 사실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고 임세원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말도 안 되는 비극으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___h_l**), “힘들었을 때, 어려운 시간 내서 만나주고 상담해준 친구를 추모합니다. 임세원의 명복을 빕니다.”(@jonunstud***)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앞서 임 교수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께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자신의 환자 ㄱ(30)씨를 상담하던 중 ㄱ씨가 갑자기 흉기를 휘두르자 진료실 밖으로 도망쳤으나 뒤쫓아온 ㄱ씨에게 3층 진료 접수실 근처 복도에서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렸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오후 7시30분께 끝내 숨졌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1일 “ㄱ씨가 범행 동기 등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있다”며 “살인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북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1일 오후 5시 현재 1만7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에 대한 병원 내 폭력 및 범죄 행위를 강력히 처벌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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