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 앞둔 딸·사위와 식사 후 10분 만에 비극 맞아
강진구 입력 2018.12.05. 20:02 수정 2018.12.05. 20:34
열수송관 파열 사고 희생자 사연
유은혜(오른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5일 오전 전날 저녁 경기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발생한
지역 난방공사 열 수송관 파열 사고로 숨진 송씨의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는 곧 가정을 이룰 막내딸에게 축복을 선사한 지 수 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너희 부부 둘만 잘 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 송모(69)씨는 4일 밤 백석 열수송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오후 8시30분쯤 딸과 헤어진 뒤 10여분 만에 닥친 비극이었다.
운전하던 그가 차량 뒷좌석에서 발견된 걸로 미뤄 차가 물구덩이 앞으로 처박히자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전의 그는 두 딸에겐 ‘딸바보’ 아빠로, 이웃에겐 ‘꽁지머리’ 아저씨로, 동료에겐 다정한 회장으로 불렸다.
따뜻하고 평범했다. 경기 고양시 풍동에서 구두수선가게(구두방)를 운영하던 송씨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꼭 딸들과 만났다.
사고 당일엔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막내(28)와 예비사위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이날 송씨는 유독 웃음이 많았다.
송씨와 동서지간인 김모(58)씨는 “4남매의 엄마인 맏딸에 이어 막내까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던 사람”이라며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고인의) 큰사위가 시신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하더라”라고 눈물을 삼켰다.
송씨 유족은 “사고 원인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고인은 장애인이었다. 과거 차량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
의족을 사용할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송씨는 포기하지 않고 생계를 이어나갔다.
송씨처럼 인근에서 구두방을 운영하는 조모(61)씨는
“20년 전 부인과 헤어진 뒤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라며
“살아남기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구두방을 차리게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힘든 와중에도 봉사활동을 놓지 않았다.
10여년 전 구두수선업자모임인 일산기능미화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불우이웃단체에 수익금을 기부했다.
5일 빈소를 찾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지역구(경기 고양시 병)의 구두미화협회 행사에서 자주 뵙던 분”이라며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안타까운 부상자 소식도 들렸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5일 현재 4명.
이 중 양 발에 중화상을 입은 손모(39)씨는 화상전문병원인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돼
1차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 안에 고립된 시민을 대피시키다가 발에 2도 화상을 입은 김오경 소방위와 백석역 출구에서
구급차까지 시민을 업고 이송하다 발에 2도 화상을 입은 이명상 소방위의 사연도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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