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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죽음, 캐면 캘수록 알면 알수록 이상해"

일산백송 2018. 12. 2. 21:59

오마이뉴스

"남편의 죽음, 캐면 캘수록 알면 알수록 이상해"

정대희,유성호 입력 2018.12.02. 20:30

 

[인터뷰] KAL 858기 사건 피해자 가족 연제원씨 "남편의 억울함 죽음 진상 밝혀라"

[오마이뉴스 글:정대희, 사진·영상:유성호]

 

▲ KAL858기 사건 유족 연제원씨가 27일 오후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된 김현희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그의 남편은 31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일도, 해가 바뀌어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다. 그는 어제도 이런 상상을 했단다. 그때로 돌아가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하는 상상을. 그는 지금도 남편을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보낸 걸, 후회하고 있다.

그의 남편은 지난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KAL 858기에 탔다. 이날 남편 최만구씨가 탄 비행기는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공중 폭파됐다. 승무원과 탑승객 115명 모두가 실종됐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는 북한 공작원이 저지른 폭탄 테러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산산조각 난 건 항공기만이 아니다. 이날부터 아내 연제원(60)씨의 삶도 두 동강 났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에 있는 카페에서 연씨를 만났다.

"비행기 사고 뉴스가 나오는데 아범 이름이 뜬다"

사고 발생 1만 1313일째, 그는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연씨는 그 장면을 수백, 수 천번 떠올렸단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연씨는 또 한 번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알아요? 그때는 저녁이면, 가족들이 모여서 드라마를 봤죠. 그날 밤도 그랬어요. 그런데 갑자기 TV 화면 아래 뉴스 속보라는 자막이 뜨는 거예요. 비행기가 폭파됐다고. '아이고 이게 또 뭔일이래'라며 놀랐죠. 그때만 해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입으로만 걱정했죠.

 

그런데 조금 이따가 시댁쪽 작은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비행기 사고 뉴스가 나오는데 아범 이름이 뜬다'라고 하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했죠. 아직 돌아오려면 두 달 남았는데 그럴 리 없다고 대답했죠. 티브이 화면에 뜨는 사망자 명단에서 남편 이름을 찾았죠. 이름이 특이했거든요. 최만구."

 

연씨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23살에 중매로 만난 남편은 31살의 노총각이었지만 서로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다.

"가진 건 없지만 참 자상한 남자였어요. 결혼하고 내가 양말 한 켤레 빨아본 적이 없었어요. 전세 100만 원에 반지하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죠. 근데 5년 동안 애가 없었어요. 자연유산만 두 번 했죠. 힘들게 첫째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정말 좋아했어요. 리비아로 돈 벌러 갔을 때도 첫째 돌잔치를 위해 귀국했을 정도니까요.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갔어요. 예감이었을까요? 남편이 아부다비로 떠나는 날 엄청나게 울며 가지 말라고 말렸어요. 남편도 '리비아 때랑 다르다'라며 힘들어했죠. 1년을 계획하고 아부다비에 갔는데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난 거예요. 두 달만 더 있지. 그게 한스러워요. 그때 남편이 둘째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아마 애들 보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빨리 돌아온 게 아닌가 싶어요."

 

엉뚱한 곳 조사했다는 말 듣고 까무러치기도

 

당시 전두환 정부는 사고 현장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이 수색에 나선 지역에 사고 흔적은 없었다. 지난 2007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펴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국정원 진실위 보고서 총론'에 기록된 내용이다.

11.29 밤부터 칸차나부리 지역 추락 풍문이 돌고, 11.30 아침 지역주민으로부터 추락 목격 신고가 들어와, 同(동) 내용이 외신과 태국 정부를 통해 한국에 알려짐

정부 조사단은 당시 추락 신고가 들어온 칸차나부리 지역을 집중 수색했으나 발견에 실패. 수색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 조사단은 현지 대사관과 대한항공에 수색작업을 인계한 뒤 12.10 철수

*당시 추락 목격 제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며, 동 허위제보들은 해당 지역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스콜 현상과 태국군의 사격 연습으로 인해 포성이 자주 울리던 지역으로서, 주민들의 착각에 의한 제보였던 것으로 추정됨

전두환 정부 조사단이 허위 제보를 믿고 엉뚱한 현장을 조사하느라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연씨는 까무러쳤단다. 그 후로도 남편의 죽음은 캐면 캘수록, 알면 알수록 이상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으나 변한 건 없었다.

"(전두환) 정부 조사단이라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입국했어요.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는 블랙박스도 못 찾고. 30일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데 왜 못 찾았는지 대답도 없었어요. 남편의 유품도 한 점 가져오지 않았어요. 도대체 뭐하러 거길 간 거냐고요.

(경유지) 아부다비에서 15명이 내리고 13명이 탔대요. 대한항공에 이 명단을 내놓으라고 하니 안 줘요. 대한항공은 사고가 났는데도 보험사에 보험금 청구도 안 했대요. (당시) 교통부는 나 몰래 남편을 사망신고 했어요. 이것도 사고가 나고 1년이 지나서야 알았어요. (노태우) 정부는 어땠는지 알아요? 폭탄 테러범 김현희를 특별사면했어요."

연씨 남편의 죽음은 '정치 공작'으로 이용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이 사건을 제13대 대선에 활용했다. 이걸 증명하는 문건이 있다. 국정원 진실위가 밝혀낸 이른바 '무지개 공작'이다. 국정원 진실화해위 보고서 총론에 기록된 내용이다.

"당시 (전두환) 정부와 안기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여당 후보(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선거 전에 김현희를 압송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전국적인 '북괴 만행 규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무부,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Task Force(기동부대)'를 운영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김현희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구제 활용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사면을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음"

"애 둘 키우고 먹고사느라 진짜 고생했어요"

연씨의 인생은 땅바닥을 쳤다. 남편의 죽음에 얽힌 의문도 풀지 못한 채 생업에 뛰어들었다. 6개월, 3살 된 두 아들을 키워야 했다. 먹고 살아남아야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끝까지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씨는 전자제품도 팔고 보험도 팔았다. 팔이 부러진 날에도 우유배달을 했다. 두 아들이 잠든 시간에 일하러 나가 잠이 든 시간에 돌아왔다. 어느 날 두 아들을 보니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애 둘 키우고 먹고사느라 진짜 고생했어요. 근데 남편을 죽인, 115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폭탄 테러범 김현희는 연예인처럼 스타가 됐어요. 방송에도 나오고 책도 펴내고, 국정원 직원이랑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이게 말이 되나요. 이런 게 정의인가요.

김현희는 방송에 출연해서 유족들에게 사과한다며 유족을 위해서 살겠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까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어요. 이런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김현희가 불쌍하네', '김현희 예쁘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져요. (가슴을 팍팍치며) 여기가 꽉꽉 막혀요."

 

▲ KAL858기체 추정 잔해에 헌화하는 유가족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서 유가족 연제원씨(오른쪽)가 KAL858기로 추정되는 잔해에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연씨에게 물었다.

- 왜 대한항공 KAL 858기 사건이 공작이라고 보시나요?

"이 사건을 전두환이 대선에 이용했다는 게 밝혀졌어요. 무지개 공작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조사는 또 어땠어요. 엉뚱한 데 수색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고, 경유지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탔는데 대한항공은 명단 확인도 안 해줬어요. 보험금도 신청 안 했고요.

라디오 폭탄도 그래요. 라디오 내부에 부품 빼내고 (폭탄을) 넣었을 텐데 (그게) 작동됐다니 믿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폭탄 테러범 김현희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자유로운 몸이 돼 오히려 스타가 됐어요. 가정도 꾸리고. 지금까지 폭탄 테러에 대해 김현희의 진술 말고 밝혀낸 게 뭐가 있나요? 김현희의 말만 믿고 수사 발표하고. (참여정부 시절) 재조사에서도 김현희는 조사조차 안 했다고 해요. 숨겨진 공작이 더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죠. 이러니 진상규명, 재조사해달라는 거죠."

국정원 진실위 위원 "사건의 실체는 북한이 저지른 테러 맞다"

연씨와 헤어지고 이튿날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진실위에서 활동했던 조사위원을 만났다. 이 관계자는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이 안기부를 압박해 정보가 아니라 첩보로 초동수사하고 발표한 게 갖가지 의혹을 키웠다. 심지어 두 번이나 엉뚱한 사람을 김현희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당연히 갖가지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기부가 폭파사건을 인지했거나 기획 또는 공작했다는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조사 결과 김현희는 북한의 공작원이었다. 이 사건의 실체는 북한이 저지른 테러였다."

지난 29일은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31년째 되는 날이었다. 연씨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 앞에서 다시 만났다. 이날 유족과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31년 전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폭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의 잔해물을 최근 찾아냈다"라며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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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씨는 이날 쇳덩어리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KAL 858기 폭파사건의 진실을 요구하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 모인 KAL858기 유가족 “진상규명 위해 재조사하라”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KAL858기 사고 제31주년 진상규명과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이 KAL 폭파사건은 전두환 정부의 공작이라며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