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명 구한 사다리차 주인 "장모님은 못 살려" 눈물
입력 2018.01.29. 03:04
[밀양 병원 화재 참사]희생자 7명 28일 첫 영결식
망연자실 27일 경남 밀양시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유족이 영정과 위패를 모신 분향대 앞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이날 한 명이 더 숨져 28일 현재 사망자는 38명으로 늘어났다. 밀양=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할머니 된장찌개, 이제는 못 먹네요….”
손반석 씨(26)는 ‘할머니바라기’였다.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팔다리를 주물러드린 후에야 잠을 잤다. 기숙형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매달 한 번씩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 ‘할머니표’ 시골된장찌개와 김치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지난해 배탈 난 할머니 배를 “손자 손은 약손”하며 쓸어드린 게 마지막 추억이 됐다. “마지막 가는 길이 편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신모 씨(85·여)의 발인을 앞두고 손자는 고개를 떨구었다.
신씨를 비롯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첫 발인이 28일 열렸다. 오전 7시 반 세종병원장례식장에서 박모 씨(93·여) 유족들은 영정사진을 뒤따르며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참던 아들도 관이 화장장 불 속으로 들어가자 끝내 “엄마 가냐”며 오열했다. 이날 7명이 발인을 마쳤다.
각 병원 빈소에서는 자식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귀 어두운 어머님 보청기 맞춰드리고 이야기 많이 나눌걸….” 칠순 맏며느리 박모 씨는 잘 듣지 못하는 시어머니 이모 씨(95)와 대화가 잘 안 됐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보청기 구입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호랑이 할머니’로 불렸지만 가족이 모이면 직접 지은 밀로 수제비를 해주는, 속정 깊은 노인이었다. 입원하면서도 당신보다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을 걱정했다.
안타까운 사연들도 속속 드러났다.
사지와 장기, 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3층 중환자실에 입원한 박모 씨(59)는 기계호흡기가 벗겨진 상태로 구조됐다. 박 씨는 걸을 수는 있었지만 횡격막이 마비돼 스스로 숨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박 씨 아들은 “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아버지를 구출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 유족은 경찰의 무성의함에 두 번 울었다. 박 씨 시신은 사인이 불분명한 것으로 분류돼 부검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 이유와 절차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박 씨 아들이 검안서를 보자고 요구했지만 “바빠 죽겠는데 왜 유난이냐. 궁금하면 직접 찾아오라”는 경찰의 답을 들었다. 정부 관계자들이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이 사실을 말하고 나서야 검안서를 볼 수 있었다. 박 씨 아들은 “경찰이 어떻게 유가족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다리차 영업을 하는 50대 남성은 이 장비로 환자는 10명 넘게 살렸지만 정작 자신의 장모는 살리지 못했다. 정모 씨(57)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장모님이 입원한 3층은 접근이 어려워 5층 사람들부터 구조했다. 장모님을 구하지 못해 비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찾았다. 유가족 대표 류건덕 씨(60)는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밀양 시내 장례식장 18곳에 빈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28일까지 희생자 38명 가운데 5명이 빈소를 차리지 못했다. 유족 박모 씨(64)는 전날 “밀양 시내 장례식장에 전부 전화했는데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날은 추운데 오도 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아들이 인터넷을 뒤져 창녕군의 장례식장을 겨우 구했다. 박연택 씨(48)도 전날 오후 2시까지 어머니 빈소를 차리지 못했다. 박 씨는 “밀양시에서는 전화 한 통 없고 돌아버릴 지경이다. 공무원들은 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말했다.
전날 밀양문화체육회관에 차려진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이날까지 밀양시민 등 5500명이 찾아 조문했다.
밀양=최지선 aurinko@donga.com·안보겸·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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