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단독]"부끄러운 놀이할래?"..서초구 사립유치원서 또래 성추행
입력 2018.01.07. 10:21 수정 2018.01.07. 11:31
유치원 측 일 커질까 ‘쉬쉬’
유아동 성 문제, 제도는 무방비
“엄마, ‘부끄러운 놀이’가 뭔지 알아?”
지난해 12월 20일 우모씨는 6살 딸 A양이 어렵게 꺼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씨가 “그게 뭐야? 엄마한테 한 번 알려줘봐”라고 묻자 A양은 바지와 팬티를 벗고 본인의 성기 부분을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서울 유치원서 또래 성추행 - 서울 서초구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또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피해 아동이 아닌 이미지 자료입니다.
놀란 기색을 보이면 아이가 입을 다물까봐 감정을 숨기며 우씨는 재차 물었다. “위는? 아래만 하고 위에는 안 해?” 아이는 “아니지”라며 웃옷을 젖꼭지가 보일 때까지 끌어올렸다.
당황한 우씨는 아이에게 “그런데 이 놀이를 누구랑 해?”라고 물었다. A양은 유치원 같은 반에 있는 동갑내기 남아인 B군을 언급하며 “B가 하라고 하는데 안 하면 괴롭힌다고 했어”라고 대답했다.
A양은 같은 반인 C양과 D군 등 2명의 피해아동이 더 있으며 유치원 화장실에서 세 차례 ‘부끄러운 놀이’를 했다고 엄마에게 털어놨다.
서울 서초구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또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는 피해 부모의 요구에 유치원은 오히려 이들이 업무를 방해했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우씨는 다음날 바로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4명의 아이에게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B군의 부모와 서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A양의 부모와 B군의 부모는 유치원 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만났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했던 A양 부모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대 부모가 자신들도 B군의 여동생을 키우는 입장에서 유감이지만 법률 자문을 받고 왔는데 본 건에 대해 사과할 의무는 없다고 들었다. 남근기에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고 하는데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우씨는 “교육 공간인 유치원 안에서 그것도 6살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거라 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성 문제가 발생했는데 유치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피해아동인 C양은 B군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 교실 피아노 밑에서도 상·하의를 탈의하는 부끄러운 놀이를 했다고 엄마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추가 피해아동과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는데도 유치원은 소극적인 모습이었다고 피해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다. 우씨는 “유치원 측이 다른 피해아동의 부모들에게 사건에 대해 뒤늦게 알리는 등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해당 유치원 원장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A양과 B군 가정 간의 감정싸움의 문제이고 유치원에서 발생한 사건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또 “폐쇄회로(CC) TV에서도 사건의 정황을 파악할 만한 증거는 없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원아 대상 성교육, 교사교육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유치원에는 A양 외에도 돌봐야 할 100명의 어린이가 있는데 피해 여아 어머니의 과도한 요구로 다른 아이들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추후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A양은 ’부끄러운 놀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아이가 팬티에 대변을 본 채 몇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놀아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일련의 일들을 알고보니 이런 이상행동이 바지를 내리기 싫어서 생긴 것 같아 참담하다”고 말했다.
유치원에서 또래 성추행이 발생하더라도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초등학생부터는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를 열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유치원 내 폭력사건은 학폭위 개최 대상이 아니다. 유아기 발달과정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교육청 유아교육과 관계자는 “유아기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발달 현상이어서 사춘기 아이들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다만 유아 성교육을 통해 피해아동과 가해아동을 모두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미취학아동 보육·교육기관에서 성추행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교육당국에 보고를 의무화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게 하는 등의 대응지침(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적으로도 유아동의 또래 성추행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10월 BBC와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웨일즈의 43개 경찰서 중 38개 자료를 취합한 결과 아동 또래 성추행 사건이 2013년 4603건에서 지난 2015년 7866건으로 70.9% 증가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지난 2014년 아동 또래 성추행 사건 대응 관련 행정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아동보호 성 조사관은 피해아동의 2차 피해를 막고자 가족을 중심으로 외상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 또 아동의 부모, 아동보호 수사 요원, 법 집행기관과 교육부와 계약을 맺은 아동보호센터, 의료기관 등이 관련 아동의 치료와 행동 개선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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