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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직업 1위요?.. 학생들 그림자도 밟아선 안 돼"

일산백송 2017. 12. 28. 22:08

세계일보

[뉴스+] "희망직업 1위요?.. 학생들 그림자도 밟아선 안 돼"

김선영 입력 2017.12.28. 19:17 수정 2017.12.28. 19:36

 

초중고생 희망직업 1위 '선생님'.. 교사들은 냉소적 반응 /

교권 추락에 자조 섞인 목소리

 

서울의 한 초등학교의 김모(39) 교사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고 배운 세대지만 정작 교사가 된 지금은 ‘학생들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고 자조할 때가 많다. 자신의 경험이 그랬다. 지난 10월 수차례 주의를 받고도 수업 중에 계속 떠드는 아이에게 3분 정도 손을 들게 하는 벌을 줬다. 그런데 바로 그날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김 교사는 “‘왜 우리 아이를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벌을 세워 창피를 줬느냐’고 따지더니, 또 그러면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면서 “그런데 이런 선생님이 희망직업 1위라는 건 진짜 아이러니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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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초·중·고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교사로 조사됐다. 2007년 이후 11년째 부동의 1위다. 당사자인 교사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결과지만 냉소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생지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교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인데 ‘직업적 안정성’만으로 교사를 동경한 결과라는 것이다.

 

28일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5년(2012∼16년)간 교권침해 사례는 총 2만3574건으로 연평균 4700건이 넘는다.

교사에 대한 폭언·욕설이 1만4775건(62.7%)로 가장 많았고 수업방해 4880건(20.7%), 폭행 461건(1.9%), 성희롱 459건(1.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학부모 등의 교권 침해도 464건(2%)으로 집계됐다.

 

무너진 교육 현장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7일 강원도 고성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4명이 여교사 앞에서 성행위를 흉내내며 교사를 희롱한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달 28일에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생활지도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50대 교사의 뺨을 2∼3차례 때리는 일도 발생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교권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크게 떨어져 있고, 직업적 사명감 또한 상실되고 있다”며 “교사들이 자긍심을 못 느끼게 하는 교육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실에도 학생들이 ‘직업’으로서 교사에 매력을 느끼는 건 직업적 안정성에다 방학 등 재충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희망직업 쏠림 현상’이 진로지도보다 진학지도에 치우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제일 자주 접하는 직업이 교사고, 그 밖에 의사, 경찰, 소방관이나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정도를 안다”며 “아이들의 선택지가 별로 없다. 진로교육에 힘쓰지 않으면 지금처럼 희망직업 쏠림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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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0년 전에 비해 교사에 대한 선호도는

△초등학생 15.7%→9.5%

△중학생 19.8%→12.6%

△고교생 13.4%→11.1% 등으로 떨어졌다며 진로교육에 따라 학생들의 희망직업이 다양해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사, 경찰, 공무원, 의사 등 안정적 직종에 대한 선호도 쏠림에는 큰 변화가 없다.

 

김용련 한국외대 교수(교육학)는 “안정성을 고려해 교사나 공무원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직업세계에 대한 간접교육 기회가 더 많아지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직업을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