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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이야기

탈모, 병도 아닌 것이 큰 걱정이네

일산백송 2017. 9. 9. 12:14

탈모, 병도 아닌 것이 큰 걱정이네

2017.08.29 10:19

 

ㆍ탈모인구 1000만명 육박…

건강보험 보장강화 정책서도 여전히 제외

 

“전국의 탈모인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와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합니다.”

 

단상에 오른 노건호씨의 머리에 시선이 모였다.

‘털끝 하나’ 없는 매끈한 머리였다.

지난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자리는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전한 장남 노건호씨도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관해

농담을 섞어 언급할 정도로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눈길을 끈 노건호씨의 삭발 헤어스타일은 탈모 때문이었다.

노씨는 삭발을 한 이유가 “정치적인 의사표시도 아니고, 사회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라며 “최근 좀 심하게 탈모현상이 일어났는데 탈모반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군데여서” 머리카락을 밀어버렸다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 아들의 탈모 소식은 화제가 됐다. 바꿔 말하면 탈모 때문이든, 삭발 때문이든 많지 않은 나이의 남성에게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눈길을 끄는 일이었다.

 

한 대학병원에서 모발 확대경으로 탈모증 환자의 모발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 단국대병원 제공

 

연애·결혼에 취업·사회생활까지 장벽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 탈모인구는 1000만명에 육박한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탈모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미 탈모 증상이 나타난 700만명에 잠재적 탈모인구 300만명을 더한 추정치다. 건강에 심각한 해가 되는 증상도 아니고, 주위를 둘러보면 흔히 찾을 수 있는 증상이지만 유독 탈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농담의 소재가 되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탈모인 사람을 기피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탓이다.

 

“(머리카락이) 빠졌으면 일단은 하루 빨리 심고, 빠질 기미가 보이면 약부터 먹으라고 합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보다 그 말을 더 자주하는 건 회개해야 할 일이긴 한데….” 한 개신교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신모씨(39)의 ‘웃픈’ 고백이다. 신씨는 탈모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성경과 교회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신씨는 늦깎이로 신학을 공부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일선 교회 아동부에 전도사로 부임했을 때 신씨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문제는 신씨에게 이른 탈모가 진행된 것, 그리고 탈모 때문에 ‘액면가’가 본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는 점이었다.

 

“아직 많이는 벗겨지지 않은 때라서 이마가 훤한 정도였는데도,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전도사님 이마에서 파리가 미끄러져요’ 같은 농담을 깔깔대면서 하더라고요.” 참고만 있을 수 없던 신씨는 어느 날 설교시간에 ‘예언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구약성서 열왕기하에서 엘리사는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했고, 그 결과 아이들 42명이 곰에게 물려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끔찍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표현을 순화시키긴 했어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외모로 타인을 놀리는 데 대한 경각심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신씨의 기대는 빗나갔다. “예배가 끝나고 보니 ‘대머리여 올라가라’라는 성경 속 표현을 그대로 쓰면서 놀리는 걸 보고, 대머리를 보는 인식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절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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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씨가 택한 방법은 모발이식이었다. 뒤통수 쪽의 모근을 벗겨지기 시작한 이마의 헤어라인으로 옮겨 심었다. 이식 후에는 더 이상의 탈모 진행을 막기 위해 평생 탈모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도 충실히 들었다. 다행히 모발이식 수술 뒤부터 지금까지는 탈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앞머리 숱이 약간 듬성하긴 해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 수준이다. 신앙의 힘으로도 저주는 해도 치료할 수는 없었던 탈모를 현대의학의 힘으로 적어도 현상유지는 되는 정도까지 막아낸 것이다.

 

신씨의 경우처럼 탈모가 진행되는 나이가 점차 낮아지는 추세는 탈모 진료 통계로도 확인된다. 탈모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내역을 종합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30대가 전체의 24.2%를 차지해 탈모 진료인원이 가장 많은 연령대로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40대가 22.6%를, 20대가 19.3%를 차지했다. 50대(15.9%)와 60대(5.8%)로 갈수록 탈모 진료를 받은 인원이 줄어드는 점을 보면 탈모 치료가 비교적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젊은 연령대일수록 탈모를 외모의 심각한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도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탈모 진료환자의 수도 10년간 꾸준히 늘었다. 2005년 14만5000여명이던 탈모 진료인원은 2015년 20만8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연평균 약 2%씩 증가한 셈이다. 탈모 진료를 받은 환자 대다수는 남성일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여성이 전체의 45%를 차지한 점도 눈에 띈다. 탈모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점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여성 탈모환자는 50대 이상 연령대에서 탈모가 눈에 띌 정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고령의 내원객이 많다는 점이 남성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의 탈모 원인은 같다. 두피 여기저기에서 머리카락이 빠져 둥근 탈모반을 남기는 원형탈모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원형탈모는 면역계의 작용과 호르몬 분비 등이 일시적으로 교란돼 문제를 일으킴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탈모 유형이다. 그러나 ‘남성형 탈모’ 또는 ‘안드로젠 탈모’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대부분의 탈모는 한 번 진행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전적 요인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탈모에 작용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면 물려받은 유전자에 따라 탈모를 겪을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남성형 탈모가 진행되는 과정과 그에 대처하기 위한 방침도 분명히 할 수 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5알파 환원효소와 만나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라는 물질로 바뀐다. 이 DHT가 바로 탈모를 직접적으로 부르는 물질로, 머리카락 뿌리에 있는 모낭세포에 작용해 모낭을 축소시키면서 탈모가 진행된다. 처음에는 모낭에서 머리카락을 만드는 힘이 점차 약해지면서 머리카락이 점차 가늘어지다가 결국에는 모낭이 더 이상 모발을 만들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발이식 수술을 위해 탈모증 환자의 머리에서 모낭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20·30대, 갈수록 늘어 40% 이상 차지

 

이러한 탈모과정에서 유전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탈모를 촉진하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남성형 탈모와 관련된 유전자로는 Chr20p11이라는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이 유전자를 어떻게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DHT와 만나는 모낭세포에서 탈모가 진행될지 여부가 달라지는 셈이다. 남성호르몬은 여성의 몸에서도 분비되기 때문에 여성도 탈모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면 탈모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Chr20p11이 탈모와 가장 관련성이 높은 유전자로 밝혀져 있긴 하더라도 탈모와 관련된 모든 유전자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남성형 탈모는 하나의 유전자 변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유전자들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때문에 최근 탈모 클리닉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유전자 검사에서 Chr20p11 등의 유전자가 탈모를 일으킬 소지가 높게 나타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도 실제 탈모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빠르게 진행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이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더 큰 영향을 준다. 탈모와 관련된 유전정보를 갖고 있어도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환경과의 상호작용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탈모의 가장 유력한 원인이 유전이라고 한다면, 그에는 못미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나 고혈압·당뇨 같은 흔한 만성질환, 샴푸 종류와 사용량 같은 생활습관 등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소지는 있다. 거꾸로 말하면 유전자에는 손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탈모인들은 두피를 깨끗이 하라거나 스트레스를 관리하라는 등으로 최대한 탈모를 늦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최근 ‘문재인케어’라는 별칭이 붙은 국민건강보험 보장강화 정책에서 탈모치료제는 이전과 동일하게 적용 제외항목으로 남겨진 바 있다. 미용 목적의 치료는 제외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탈모 치료가 성형수술과 같은 단순 미용 목적의 의료행위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탈모 치료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의 소지는 국민건강보험 보장강화 발표 이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탈모 치료제 복용을 이유로 민간 실손보험 가입이 거부되는 등의 문제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탈모인들이 겪는 불편 중 하나였다.

 

직장인 배모씨(31)는 실손보험에 가입하려 했지만 보험사로부터 가입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험계약 체결 전 보험사에 건강정보와 투약내역 등을 알리는 과정에서 탈모 치료제를 먹는다고 밝힌 것이 이유였다. 배씨는 겉으로만 봐서는 탈모로 짐작하기 어렵지만 병원에서 탈모 위험이 높다는 진료를 받고 예방 차원에서 탈모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탈모 치료제를 처방받기 시작한 것이 실손보험 가입 전이었기 때문에 배씨는 아예 가입자격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배씨는 “탈모 치료제 복용이 보험 가입까지 반려당할 정도의 문제라면 반대로 국민건강보험에서는 보장을 강화할 때 당연히 포함시켜 줬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치료제 복용하면 실손보헙 가입 불가

 

국민건강보험도 민간보험도 보장해 주지 않는 항목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탈모인들은 비싼 약값이 부담스러워 편법을 쓰기도

한다. 탈모 치료제와 같은 성분이 든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를

받기 위해 비뇨기과를 찾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체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2012년 93만명에서 지난해 117만명으로 26% 늘어났다. 특히 이 가운데 20대 환자는 1317명에서 2161명으로 64%나 급증했다. 전립성 관련 질환 역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흔해진다는 점에서 볼 때 통상적이지 않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탈모라는 요인이 숨어 있었다. 20대를 비롯한 젊은 연령대에서 전립선 환자가 급증한 것처럼 보인 이유가 바로 보험적용이 되는 싼 처방약을 받기 위해 비뇨기과로 몰린 탈모인들 때문이었다.

 

탈모 치료에 쓰이는 피나스테리드라는 성분은 전립선비대증 치료에도 동일하게 쓰인다. 애초에 이 성분이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탈모 진행을 막아주는 ‘부작용’이 발견돼 용량을 낮춰 탈모 치료제로도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처방받으면 보험 적용이 되지만, 탈모 치료제로는 그렇지 않아 약값이 훨씬 비싸다는 데 있다. 비뇨기과를 찾아 공공연히 전립선비대증 처방전을 받은 뒤 탈모 치료제로 복용하는 것이다. 의료법으로는 불법이고, 전립선 치료제로 나온 약의 성분 함량이 4~5배 높기 때문에 약을 쪼개 먹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반면 간접적으로 탈모 진행을 늦추는 데 일조하긴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건강기능식품이나 탈모샴푸 등의 세정제 등 관련용품 시장은 꾸준히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탈모 관련 시장은 연간 4조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커지는 추세다. 이 가운데 가발처럼 아예 탈모를 가리는 상품을 제외하면 그 효과에 대해선 업계 관계자나 의료계 관계자들도 반신반의하는 제품들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머리카락 나라고 기우제 지내는 거나 다르지 않다”라는 표현으로 현재의 탈모 관련 시장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빠르게 ‘레드오션’이 됐다는 게 문제지만 탈모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수요는 꾸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바꿔 말하면 탈모를 대하는 현실적 지침이 되기도 했다. “탈모인들은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탈모 아닌 사람들은 탈모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게 궁극적 치료”라는 것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