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캐럴의 실종
전자신문 발행일 2013.12.11
응답하라 1994. 버티다 지난 주말 몇 회분을 몰아 봤다.
잊고 살던 당대의 음악들이 감정선을 자극한다. 그런데 노래의 목소리가 낯설다.
모두 리메이크란다.
서태지의 `너에게`를 성시경이 부르는 식이다.
저작권 피하기 꼼수다.
`저작인접권료`라는 게 있다.
작사·곡자에게 지불하는 저작권료 외, 그 언저리(인접)에 있는 해당 가수나 음반기획사 등에게도
주는 돈이다. 리메이크하면 이걸 안 내도 된다.
무명의 서태지를 빅스타로 탄생시켰지만, 그새 영세 제작사로 전락한 반도음반은
이번 `응사 OST` 흥행 몰이에도 돈 한푼 받은 게 없다.
반면 `응사 버전` 리메이크 곡으로 판권자 CJ E&M은 매번 저작인접권료를 챙긴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권리 보호인지 모호해진다. 이른바 `저작권의 역설`이다.
응사의 시대적 배경인 1990년대에는 `길보드 차트`라는 게 있었다.
일단 여기에 올라야 정식 음반도 잘 팔리고, 가요톱텐에도 나갈 수 있었다.
길보드는 말 그대로 길거리 리어커에서 파는 무단 복제 테이프다.
지금 같으면 당장 단속반이 들이 닥칠 일이다.
그럼 길보드에 뺐긴 저작권 때문에 당시 음반시장이 침체됐을까. 그 반대다.
1990년대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최고 전성기로 꼽힌다.
미 빌보드지도 K팝의 진앙을 그 때로 볼 정도다.
어지간한 인기 가수면 앨범을 내는 족족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던 때다.
길보드가 시장의 촉매제였던 셈이다.
음반이 아닌 `음원`의 시대로 돌아선 2013년 현재, 무분별한 `저작권 챙겨 먹기`는 전체 시장이 아닌,
일부 거대 자본에게만 돈이 몰리는 기형적 구조를 나았다.
이 맘 때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던 캐럴송마저 저작권에 묵여 있다.
이에 한국음반산업협회 등 관련 협·단체들이 연말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저작권 단속을 일부 유예한단다. 늦게나마 달아오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국내 소비시장이 `응답`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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