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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야기

애 낳자는 제가 비현실적이라는 남편, 정말 그런가요

일산백송 2015. 8. 13. 11:51

애 낳자는 제가 비현실적이라는 남편, 정말 그런가요
기사입력 2015-08-13 04:05 | 최종수정 2015-08-13 09:23 1488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은 보는 사람까지 미소 짓게 만듭니다. 

또한 아이들을 향해 미소 짓는 사람만 봐도 우리 마음은 훈훈해지지요. 

아마도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일 테고, 행복한 유년기를 지나온 성숙한 어른일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남의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 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요.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수행 불가능한 임무처럼 되어가는 세상에서, 

마냥 낙천적일 수만은 없다는 젊은 남편. 그런 남편에게서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삐딱함을 보는 게 

슬프다는 아내. 그들이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시 하나의 길을 엮어갈 방도는 무엇일까요?

홍 여사 드림

저희는 결혼 4년 차 신혼부부입니다. 

아직 2세가 없다 보니, 연차가 더해가도 사는 모양새는 처음의 소꿉장난 그대로네요.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별다른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습니다. 

적령기에 만났고, 연애 기간에도 싸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양가 부모님도 너무 좋으시고요. 

별다른 고민 없이 결혼에 골인해서 몇 년 동안 둘이서만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주위에서는 저희가 아무 고민 없이 신혼을 즐기는 줄만 알겠지요.

하지만 속사정은 다릅니다. 

3년 차 되던 해부터 저희 부부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밀고 당기는 중입니다. 

바로 2세 계획이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남편은 2세를 원하지 않는답니다. 

확신이 안 선다, 필요성을 절실히 못 느낀다고 하네요. 

반면 저는 결혼하면 그다음 순서로는 부모가 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온 사람이고요.

사실 남편의 그런 별난 태도를 전혀 몰랐던 건 아닙니다. 

결혼 전에도 한번씩 그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부부에게 자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준비나 각오 없이 무턱대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 

한심스럽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때로는 저도 동의하고 때로는 반감도 들었지만, 그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물론 세상에는 자식 없이 행복한 부부도 많고, 자식한테 못 할 짓 하는 부모도 많지만, 

우리 둘만큼은 여느 사람들처럼 행복한 부모가 되어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남편은 결혼 이후에 자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3년 차에 이르러서는, 점차 초조해지는 마음에 제가 아이 얘기를 구체적으로 꺼내놓았지요. 

그러자 남편은 '싫다'는 대답을 분명히 했고, 오히려 저를 설득하기 시작하더군요. 

우리 능력에 자식을 충분히 서포트하긴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평균 소득을 웃도는 두 사람이, 아이 한둘도 못 키울까요? 

대체 얼마나 잘해주고 어디까지 책임져 줄 생각이기에 그런 말을 할까요?

이미 일 년 넘게 그 문제로 부딪치고 있기에, 저희는 서로의 생각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를 보수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고 하네요. 

내 아이는 무조건 건강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태어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어디서 나오느냐고요. 아이 잘못 낳으면 인생 꼬인다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라 해도, 자식을 낳기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약속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아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남편은 겁쟁이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비뚤어진 사람입니다. 

숱한 대화와 말다툼 끝에 저는 결국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크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더군요. 욱하면 이런 말을 합니다. 

뭐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애를 낳느냐? 자식 낳아 키워봤자, 부모 원망만 듣게 돼 있다.

솔직히 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남편은 부자 동네에서, 좋은 학교에 다니며 자란, 중산층의 아들입니다. 

그만하면 어려운 줄 모르고 대학 다녔고, 부모님 지원도 받을 만큼 받았습니다. 

적어도 저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오직 본인 앞길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인데, 

어째서 마음에 원망이 자리 잡고 있을까요?

그러나 남편은 제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부모님이 낳아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느냐고요. 그 말이 제게는 참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청소년기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저는 오랜 꿈을 접고 진로를 바꿨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웬만큼 재기를 하셔서 경제적인 문제는 겪지 않고 있지만, 

십대 시절의 경제적인 풍파가 제 마음과 삶에 큰 굴곡을 남기긴 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픈 미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남편은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부모님 원망 안 하느냐고요. 

그러나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리 근사한 인생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부모가 될 수도 있어서 만족하니까요. 

배경이 좋아 쉽게 잘 풀리는 친구들 보면 속상하지만, 그들 인생에 큰 관심 두지 않으려 애쓸 수밖에요. 

그러나 남편은 제가 세상을 모른답니다. 제가 보기엔 남편이 세상을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요.

인생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우리 둘이 재미있게 살자는 남편의 말.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전 같은 행복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2세 계획뿐만 아니라 인생관 차이 때문에 더욱 멀게 느껴지는데, 이런 고민 역시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고민일까요? 

양가 부모님들에게 말씀드리면, 어른들은 뭐라고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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