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한 이 나라…"
독립운동가 후손 “광복70년,...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5년 8월 13 (목요일)
□ 출연자 :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임시국회 국무위원 차리석 선생 후손)
“친일 후손 사죄하면 두 손 붙잡고 얼싸안을 것”
- 아버지 61년 생애 중 35년 독립운동
- 어머니도 임시정부 망명 동행, 하지만 독립운동 인정 못 받아
- 나는 초6 중퇴... 나라가 교육만 시켜줬어도....
- 60년대까지 재정적 지원 전무
- 쌀값만 준 정부...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
- 독립운동가 후손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 없어
- 사료 부족해 예우 못 받는 독립운동가들 많아
- 친일 후손, 홍영표 의원처럼 사죄한다면 용서, 포용할 수 있어
-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억해야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조금 있으면 광복 70주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 이게 참 창피한 일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아마 이런 나라도 참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말이 단순히 과장된 말이 아닌 현실이라는 데에 우리는 더욱 더 부끄럽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과 그 후손들이, 광복 70주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작심인터뷰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 한 분을 만나보려 합니다.
여전히 가진 것 없지만, 부모님의 독립운동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고 계신 분이에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내신 차리석 선생님의 아들, 차영조 선생님, 전화 연결합니다.
안녕하십니까?
◆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회장(이하 차영조): 네 안녕하세요.
◇ 신율: 선생님,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 차영조: 71살입니다. 광복되기 1년 전인 1944년에 태어나서, 저는 광복 71년으로 연결이 됩니다.
◇ 신율: 그렇군요. 차리석 장관님이시죠.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셨으니까요. 45년 9월 9일에 돌아가셨죠?
◆ 차영조: 네, 그렇습니다.
◇ 신율: 그러니까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에 태어나셨네요.
◆ 차영조: 네, 그렇죠.
◇ 신율: 아버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렸을 때 많이 들으셨어요?
◆ 차영조: 제가 돌 지나고 아버님이 작고하셨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 영상도 모르고요.
뭘 하셨는지는 몰랐고요. 제가 장성해서 역사책으로 보아서 제 선친의 역사를 알게 되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직접 아버님의 말씀을 들은 말도 없고, 간접적인 공부를 해서 알고 있습니다.
◇ 신율: 어머님께서도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 차영조: 어머님과 아버님이 만나서 같이 생활한지가 4년에 불과합니다. 망명 생활 때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님이 아버지의 역사를 다 아시기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광복되어서 헤어지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세한 걸 모르시죠. 단편적인 것만 저한테 말씀해주셔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신율: 그래서 아버님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아셨을텐데, 아버님 소개를 해주시죠.
◆ 차영조: 제 선친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65년 일생동안 35년을 독립운동 하셨으므로, 평생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고 계신 분이죠. 임시정부에서 변함없이, 좌우 흔들림 없이 직책을 수행하신 것을 저는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신율: 어머님과 아버님이 4년 정도 같이 계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어머님도 망명 생활을 하시다가 아버님을 만나신 건가요?
◆ 차영조: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는 1941년에 평북 의주에 사시다가 망명을 하셨어요.
그래서 본 남편은 가는 도중에 단둥에서 일경한테 피체되어, 연행되어가지고, 그 자리에서 24시간을 기다려도 남편이 안 나타나니까, 홀로 물어물어 임시정부를 찾아가가지고, 광복군 진지에 도착해서,
거기서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 신율: 그러면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 차영조: 어머니는 1979년, 66세로 타계하셨습니다.
◇ 신율: 그러면 어머님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고, 두 분 다 독립운동을 하셨는데요.
차영조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정부에서 지원이나 이런 게 있었나요?
◆ 차영조: 제가 지금 되돌아봐도 항상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신 그 분의 후손은 정부가 지원을 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줘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중요한 교육을 시켜주었으면, 우리가 남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았으면
이렇게 뒤처지는 생활을 하지 않았을텐데, 교육혜택까지도 못 받았어요.
그러다보니까 항상 남보다 뒤떨어지는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 신율: 교육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한데요. 교육 혜택을 못 받았다는 것이 두 종류가 아닌가 싶은데요.
요새 같은 경우에는 독립유공자, 민주화 유공자의 후손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에서 가산점을 주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아마 그런 제도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 차영조: 네, 저희 같은 경우는, 사람이라는 건 교육받는 시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 교육을 지원해주는 것이 1960년대 중반부터 였어요.
그러면 저 같은 경우는 이미 20살이 되어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 받을 기회를 놓쳤죠. 그래서 제가 학력이 초등학교 6학년 중퇴입니다.
◇ 신율: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뭐냐면, 그렇게 대학교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 말고도
재정적 지원을 해줘야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재정적 지원도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 차영조: 그렇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정말 전무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부터 한 달에 가족 먹고 살 정도의 쌀값만 줬어요.
그러니까 교육이나 문화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남보다 뒤처지는 것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 신율: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 다 독립운동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사실 원래 아무리 조금이라도
두 분 따로따로 지급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죠?
◆ 차영조: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셔서 인정을 받았으면,
그 부인이나 가족이 협조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가족에 한 분이면 당연하지, 뭘 더 어머님까지 포함을
시키냐? 남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저는 그걸 거절했었는데요. 지금 정부 정책이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인정해서 서원해드린 분이 1만 4천 명이에요. 그
러면 실질적으로 일제 치하 50년 동안 독립운동 하신 분이 1만 4천 명만 되겠어요? 제가 추산하건데
적어도 140만 명은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숫자가 적으냐?
독립운동 하는 분들은 근거를 남기지 않았어요. 사료가 없습니다.
◇ 신율: 그렇군요. 그것도 발굴을 해야 할텐데요.
지금 차 선생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에 계시죠? 지금 어떤 일을 추진하고 계십니까?
◆ 차영조: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는 사단법인으로 발족되었고요.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가정적으로 봤을 때 아버지가 있고, 그 위에 할아버지가 있고,
증조할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쭉 올라가다보면 시조가 계세요.
그 1대라고 해서 그 분을 득관시조, 또는 득성시조라고 하는데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쓴 이 국가가 이 국호가 탄생한 임시정부를 기억하지 않고, 헌
법 전문에 한 줄만 딱 들어가 있고, 구체적인 사업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복 70주년이라는 이런 해를 맞이해서, 앞으로 4년만 더 있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데 우리는 무얼 할 거냐? 우리가 떳떳한 문화 국민이고, 역사를 아는 국민이라면,
여기에 대한 상당한 사업이 있어야 되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임시정부 기념관 수립을 중점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 신율: 네, 그리고 지난 11일이었죠.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이 자신의 조부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차영조: 참 대단히 용기있고 훌륭하고, 자기 조상의 명예를 지켜주는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부 ‘친일파’라고 부르는데, 본 의미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죠. 이 친일반민족행위자도 강요에 의한
친일파가 있고, 자발적인 친일파가 있습니다. 우리는 친일파를 호칭할 때 자발적인 친일파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제발 그 후손이 지금이라도, 고등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면,
조상이 잘 했다, 잘 못 했다는 것은 판단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서,
홍영표 의원처럼 내 조상이 그 당시 생각을 잘 못해서 이런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 자식으로서
부끄럽다. 이렇게 용기 있게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면, 우리 독립운동으로 말미암아서 피해 받은
후손들은 지금 두 손 붙잡고 얼싸안고, 우리는 용서하고, 포용하고, 동행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홍영표 의원처럼, 자발적으로 사죄하는 후손이 제발 많이 나와서,
이렇게 많이 나옴으로 인해서 독립운동 선열들의 명예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부수적인 효과도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 신율: 네, 잘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차영조: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의원이셨던 차리석 선생님의 아드님이시죠.
차영조 선생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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