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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이야기

[스크랩]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함정 2

일산백송 2015. 8. 1. 11:50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함정 2^ 특집 / 우리 사는 이야기
2015.05.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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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브리서 9장 27절 참조)라고 하신 말씀과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신 분에게 회계 보고를 하리라’(베드로전서 4장 5절 참조)고 하신 기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심판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붐비는 곳을 지나다 보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피켓을 들고 

불특정 다수 대중을 향해 열성적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피켓을 보는 대다수가 혐오감 또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 

성경이 말하는 심판 기별의 본질은 ‘영원한 복음’이기에 듣는 자에게 

영적 각성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로 다가가야 맞다.
심판과 회개의 기별은 가까워지는 천국을 맞기 위한 것이지 소위 ‘지옥불’의 형벌을 부각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패권주의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그들의 인식 속에 심판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심는 일은 하나님이 뜻이 아닌 

그 반대 세력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 

심판의 본질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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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함정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요즘도 노방 전도자들의 시뻘건 십자가 피켓에 자주 등장하는 구호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자동차에 단 확성기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부르짖고 다닌다. 

또 어떤 교회는 매 주일 예배 말미에 목사의 선창에 따라 전 교인이 마치 전투에 나가는 병사처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큰 소리로 제창하고 예배를 끝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너무 공격적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하든, 확성기 소리가 소음이라며 시비를 하든 상관없이, 

그것이 곧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좋은 복음 전도 방법이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천당과 지옥을 말하지 않는 전도는 가짜라는 ‘불굴의 확신’을 갖고있는 것이다.
성경은 천국(천당)과 지옥을 확연히 대비하고 있다. 

천국은 믿고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들어가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요, 

지옥은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을 받은 자들이 들어가는 고통의 표상이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는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했고, 

마태복음 10장 28절에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으며,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29절에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여, 

무덤 속에 있는 자에게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심판의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예수의 구원의 피로 의롭게 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 이르고, 

예수의 구원의 피에 참여하지 못해 정죄된 자는 심판을 받아 멸망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구원과 멸망, 둘 중 하나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종착지는 확연히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저들의 구호가 틀린 것은 아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전도자 중 초신자 많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선포하는 전도자들은 대체로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의 강력한 은사 체험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후 전도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 

이웃의 불신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이 앞서서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당장 자신을 책망할 것 같은 

강력한 영적 소명을 느껴 거리나 광장이나 전철 안에서 대중 앞에 나선다. 

이런 사람에게 “당신의 전도 방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도자는 전도 대상자에게 호감을 보여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해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마치 협박이나 저주처럼 상대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며 큰 소리로 내뱉는 것은 호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할 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당부했다. 한 영혼을 더 얻기 위해서는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고린도전서 9장 19~22절)이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전도자의 기본 자세여야 한다.

기독교의 복음 전도는 사랑에 기초해야 


전도는 그의 생명 즉 영혼과 육신의 삶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죄로 인해 사탄의 지배 아래서 자유를 잃은 육신과 영혼을 그리스도의 피로 해방시키고,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 전도이다. 

전도는 잃었던 양을 찾고,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에 이웃을 불러 잔치하는 사람과 같아야 한다(누가복음 15장 참조). 그러므로 전도자는 불신 영혼을 대할 때,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대해야 한다. 

목자 없는 양은 제 혼자 힘으로는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 전도를 종교적 패권주의마냥 공포심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전도자가 마치 심판관처럼 나서는 오만으로 비쳐질 수 있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주변에 많은 ‘죄인들’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 앉아 점심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태복음 9장 10, 11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누가복음 15장 1, 2절).
여기 예수가 가까이하며 함께 먹고 마셨다는 죄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강도, 강간, 살인, 절도, 사기, 횡령 등 파렴치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바보, 병신들이라고 부르는 얼간이, 멍청이, 장님, 귀머거리, 절름발이, 외눈박이 등 

불구자나 장애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는 이런 바보, 병신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가까이하며 복음을 전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아니한 복음 증거나 전도는 그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현대는 자신의 영혼을 현생의 생명보다 중히 여기던 중세와는 달리 

내 영혼이 지옥에 갈 것이 두려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흔치 않다. 

그러므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 구호는 시대착오적이고, 공포심을 야기하는 

기독교적 패권주의로 거부감을 갖게 한다. 전도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마라나타~

강춘오 epnnews@empal.com ---------------------------------
주간 <교회연합신문>, 월간 <풀빛목회> 발행인이자 예장 안수목사인 필자는 장신대에서 수학했고 

한국기독언론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변환기의 한국교회> 등이 있다.
[출처] [특집]#321 -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함정 2^|작성자 에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