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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야기

[단독]‘윤후 엄마’ 김민지씨와의 솔직 담백한 인터뷰

일산백송 2015. 6. 26. 15:53

[단독]‘윤후 엄마’ 김민지씨와의 솔직 담백한 인터뷰
레이디경향 2015년 7월호

전 국민의 사랑 속에 방영됐던 MBC-TV ‘일밤-아빠! 어디 가?’가 끝난 지 6개월, 

열 살 초등학생이 된 윤후는 여전한 대중의 관심 속에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지내고 있다. 

윤후 엄마 김민지씨(37)도 마찬가지다. 

가수 윤민수의 아내로 그리고 특별한 아이 윤후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녀가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레이디경향」과의 만남에서 그녀는 그동안 쌓아뒀던 이야기를 나누며 

배꼽을 잡기도 했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윤후 엄마 인터뷰 좀 해봐.” 

‘아빠! 어디 가?’가 방송되던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매주 일요일마다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친구들도, 

동생도, 남자 후배도 궁금해했다. 

유명인의 가족들이 대중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게 그리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TV 속 그녀는 유독 카메라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피해 도망 다니기 일쑤에 어쩌다 얼굴이라도 나올라치면 긴 생머리를 연신 얼굴 위로 늘어뜨렸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눈앞에서 편안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제가 무대 공포증 같은 게 있어요. 어렸을 때 플루트를 연주했는데 평소에는 잘하다가 무대에만 올라가면 

눈앞이 깜깜해져서 결국 음악을 그만뒀거든요. 그런데 촬영 카메라를 보니 그때처럼 심장이 뛰더라고요. 

제가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숨었던 게 아니라 심장이 너무 뛰어서 그랬던 거예요.”

그래도 2년 동안 2주에 한 번꼴로 집에서 카메라를 만났다.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이른 새벽 눈도 뜨기 전에 촬영 카메라를 맞이하는 일이 윤후나 남편과는 또 다르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전혀. 가족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꾸밀 것도, 불편한 것도 없었단다. 

이제 어느 정도 카메라에 적응이 됐다 싶었는데 방송이 끝났다며 웃는 그녀다. 

방송에서 보지 못한 사이 윤후는 쑥쑥 자라 어느새 키가 130cm를 훌쩍 넘었고 

요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 남편은 틈만 나면 윤후와 놀러 갈 궁리를 한단다. 

결혼 10년 차, 힘든 일도 많았지만 점점 닮아가는 남편과 아들을 지켜보며 그녀는 요즘 더없이 행복하다.

방송이 끝나고 윤후는 어떻게 지내요? 

이제 TV에 나오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 않았어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윤후는 자기가 방송에 나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자기를 알아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본다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방송을 보여달라고 한 적도 없고요. 끝나고 나서 한 번 보여줬는데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요. “어? 이때랑 이때랑 잘라서 붙여놨네?” 

이 정도의 반응이에요. 오히려 윤후 아빠가 더 아쉬워해요(웃음).

아이랑 놀러 가고 싶어서요? 네. 2주에 한 번씩 놀러 다니던 게 버릇이 돼서 이제 틈만 나면 애를 찾아요. 그때처럼 자주 여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전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게 가장 달라진 점이에요. ‘아빠! 어디 가?’ 멤버들과도 자주 만나 어울리고요.

맨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어요? 엄마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윤후가 일곱 살 때였는데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윤후랑 ‘일밤’에 나갈 수도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잘됐다 싶었어요. 그 전까지는 부자가 잠 한 번 같이 자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 기회에 두 사람이 친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죠. 

이벤트성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2년 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두 사람이 방송에서 워낙 친구 같은 모습을 보여줘서 원래부터 돈독한 부자 사이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직업 특성상 생활 패턴이 윤후와 정반대였거든요. 

밤에 음악 작업 마치고 아침에 잘 때쯤 아이는 학교에 가고, 아이가 학교 다녀오면 민수씨는 일하러 나가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이 한 달에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오죽하면 아이가 집에 와서 아빠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고 그랬겠어요. 윤후가 여섯 살 때였나. 

남편이 밤늦게 들어와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애가 그걸 보고 달려와서 저를 막 깨우는 거예요. 

“엄마 일어나, 이상한 사람이 또 왔어”라면서요(웃음).

상상이 되네요. ‘아빠! 어디 가?’를 하면서 많이 달라진 거군요. 남편이 요즘 그래요. 

자기가 윤후 예뻐하기 시작한 게 3년 됐다고요. 그 전까지는 일하느라, 가족 돌보느라 책임감에 눌려 

아이 예쁜 걸 모르고 살다가 이제 알게 된 거죠.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윤후가 엄마와 애착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간혹 방송에서 보면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엄마 껌딱지예요(웃음). 모유 수유를 5년이나 했어요. 그래서 그런 건가 싶어요.


다섯 살 때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는 건 좀 놀라운데요. 주변에서 왜 아무도 안 말렸을까 싶어요(웃음). 

그때는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는데, 또래 친구들 중에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컴맹이라 인터넷도 못하고 친정 식구들도 미국에 있었거든요. 

물어볼 사람이 없었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키우다 보니 일반적인 육아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어요.

자연주의 육아로 자란 아이네요. 윤후는(웃음). 어떻게 보면 그래요. 

아이가 네 살 때까지 남편 소속사에서 구해준 경기도 과천의 숙소에서 살았거든요. 외진 곳이라 주변에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윤후랑 단둘이 복닥거리며 둘만의 세계를 만들며 지냈어요. 한 몸같이, 떨어져본 적이 없어요. 유아기를 그렇게 보냈던 게 엄마에 대한 애착을 크게 형성한 게 아닌가 싶어요.


짜장면으로 대신한 결혼 피로연 


스물여섯 겨울, 가수 윤민수를 처음 만난 그녀는 이듬해 봄 동사무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스물다섯의 남편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른 아침부터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동사무소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단다. 그렇게 젊은 두 사람은 부부가 됐고, 가난했지만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수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결혼 이야기가 궁금해요. 윤민수씨와 처음 만나고 초스피드로 결혼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에서 학교를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잠시 한국에 들어와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거기서 남편을 만난 거예요. 

때가 11월이었는데 12월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결국 돌아가지 못했죠(웃음). 


한 달 일정이 무기한으로 연기가 됐군요. 그 이후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난 다음에야 짐 가지러 갔어요. 

연애 기간은 정확히 5개월이에요. 만난 지 5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했거든요.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는 건데,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에 친정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 중이셨는데 남편이 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했어요. 

아버지 임종 때도 남편이 마지막을 지켰고요. 그때 친오빠가 사정상 미국에서 귀국을 못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오빠 대신 상주 역할을 했어요. 후배 가수들 불러서 장례를 치른 거예요. 

3일 동안 상주 역할 하며 손님 맞고.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여자밖에 없는 집에 남자친구가 와서 

아들 노릇을 했으니 이미 사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어요. 그때 친정 식구들에게 인정을 받았죠.

그대로 결혼으로 직행했군요. 남편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에요.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결혼하겠다고 워낙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오죽했으면 

친정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같이 좀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하실 정도였어요(웃음). 

처음엔 반대하시던 엄마도 두 손을 드셨죠.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저를 데리고 남편 사는 동네 동사무소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9시 땡 하고 

동사무소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도장 찍고 혼인신고를 했어요.

결혼식도 안 올리고요? 식을 올릴 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그때가 ‘바이브’ 2집 때였는데 남편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상황이 안좋았거든요. 

혼인신고 하고 나와서 짜장면 먹으면서 우리끼리 식을 올렸죠(웃음). 

2005년 4월에 혼인신고 하고 살림 합쳐서 살다가 아이가 생기고 2006년 6월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윤후가 속도위반으로 태어났다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식전 위반이지 속도위반은 아니에요(웃음).

혼인신고 도장 찍고 나와 짜장면이라니, 평범하지 않네요. 

연애 시절 제일 많이 먹었던 음식이 떡볶이랑 짜장면이었거든요. 나름 저희에겐 의미가 있었어요(웃음). 

둘 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거라 결혼 뒤에도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어요. 회사에서 월세로 내준 숙소에 신혼집을 꾸리고 윤후가 다섯 살 때까지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죠. 아이가 제대로 된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여섯 살 때부터예요. 그 와중에 남편이 군대도 다녀왔고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겠어요. 윤후가 다섯 살 때까지는 많이 어려웠어요. 

마트에서 우유 하나 살 때도 고민하고 그랬어요(웃음). 

그런데 그때는 둘 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좋은 유모차, 좋은 장난감 그런 것도 몰랐고, 주변에 비교할 사람도 없었고요. 

여유롭진 않았지만 세 가족이 부대끼며 오손도손 살았죠. 

그렇게 지내다 남편이 ‘포맨’이라는 그룹을 만들면서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숙소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둘 살림도 장만하고요. 

지금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이제 좀 살 만하구나 싶어요. 



혹시 윤후를 키우며 힘들었던 점은 없었어요? 어렸을 때 윤후는 굉장히 산만한 아이었어요. 

힘들었다기보다 어디 가서 튀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친구들 무리에 잘 섞여 

마음을 놓았죠. 얼마 전에 윤후 성격검사를 했는데 굉장히 내성적인 성향으로 결과가 나왔어요.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경쟁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요. 

이렇게 내성적인 아이를 방송에 2년 동안 노출시켰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윤후는 방송 전 모습과 거의 변함이 없어요. 학교에 들어가고 저에게 좀 덜 속는 것 빼고는요(웃음).

윤후는 그 나이대 아이들에 비해 생각이 깊고 배려가 많은 아이예요. 

누가 시켜서 하는 배려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배려 있잖아요. 

그런 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어요.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이에게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예절이에요. 예의범절, 인사, 웃는 얼굴,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선 엄하게 하는 편인데, 가끔은 친정엄마께서 저보고 너무 아이를 잡는다고 하실 정도예요. 

예절 교육 시키느라 공부에는 너무 신경을 못 쓴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웃음).

특히 여자친구들을 대할 때 윤후는 유독 다정하고 매너가 넘쳐요. 놀라울 정도로요. 제가 워낙 마르고 약해 보이다 보니 윤후가 어렸을 때부터 친정 식구들에게 “엄마는 몸이 약하니까 후가 엄마를 잘 도와줘야 해”, “엄마는 여자니까 후가 지켜줘야 하는 거야”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편이 천생 보수적인 한국 남자거든요. 제가 대신 남자가 지켜야 할 매너에 대해 자주 얘기해주는 편이에요.

가족의 삶을 변화시킨 아이 윤후 


이야기를 나누며 윤후의 사랑스러움이 그녀에게서 온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솔직하고 유쾌했으며 깐깐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결혼 전까지 전형적인 개인주의자였다”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윤후는 그녀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을 변화시킨 아이였다.

아이 교육 면에서는 어때요?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오히려 저보다는 남편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저는 최대한 시키지 말자는 주의인데 남편은 어렸을 때 본인이 해보고 싶었던 것이나 못해봤던 걸 해주고 싶어 해요. 남편이 “윤후 뭐 시켜야 할 때 되지 않았어?”이러면 저는 “때가 되면 하겠지”이런 패턴이에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도 아이 아빠가 결정을 했고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계획을 다 세워놓았어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가 재밌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요.

만약 윤후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남편이 방송에 자주 나오기 전까지 연예인이 왜 좋은지 몰랐어요. 오랜 시간 고생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겉은 화려하지만 그다지 좋은 직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윤후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는 걸 경험하고 나서 연예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 치열한 환경 안에 아이를 놓고 싶지는 않다는 게 엄마 마음이에요. 무엇보다 연예인으로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고요.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을 잘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연예인로서의 재능과는 다른 것 같아요. 아직은 천천히 지켜보고 있어요.

‘아빠! 어디 가?’가 방송되는 동안 윤후의 인기가 정말 뜨거웠어요. 

이러한 상황이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남편이 밑바닥부터 자수성가한 스타일이라 

연예계에서 인기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들뜨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죠.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면 구설에 오르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방송을 하는 동안 최대한 조심조심,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윤후가 사람들에게 예쁨 받는 걸 당연시하고 잘난 척하게 될까 봐 그게 항상 염려됐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큰 감정의 변화 없이 그 시기를 넘어온 것 같아요.

여전히 윤후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SNS를 통해 윤후의 근황이 전해질 때마다 반응이 뜨거워요. 저보다 윤후 걱정을 더 많이 해주세요.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죠. 저는 무척 행복한 입장이에요. 사실 처음 SNS를 시작할 때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유명인의 가족이 무언가를 하면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숨어 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윤후를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그렇게나마 소식을 전해드리는 게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윤후가 지금 방송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인터뷰를 못 했을 거예요.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윤후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윤후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특별한 아이예요. 양쪽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였거든요.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저 역시 아이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요. 윤후가 태어나며 친정엄마와도 돈독해졌어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유학 생활을 해서 엄마와 떨어져 지냈는데 윤후를 통해 가족이 더 가까워졌죠. 



얼마 전 6월이 결혼 10주년이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전형적인 개인주의자였어요. 주는 만큼 받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남편을 만나며 달라졌어요.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도 아름답더라고요. 길가에 돌멩이 하나도 예쁘다고 멈춰 서는 사람이에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하게 된 것 같아요.

10주년인데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나요? 이벤트보다, 얼마 전에 집을 샀어요. 10년 동안 일곱 번이나 이사를 다닌 끝에 드디어! 여자에게 자기 집이 생겼다는 건 정말 뿌듯한 일이잖아요. 그동안 이사 다니며 고생했던 게 싹 사라지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래도 10년 동안 세 식구가 함께 고생해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뿌듯한 마음이에요. 전에 제가 가방 팔아서 남편 옷도 사주고 그랬거든요. 그걸 다 기억하더라고요. 요즘엔 남편이 그동안 해주고 싶었는데 못해줬던 것들을 많이 해주려고 해요. 표현도 많이 하고요.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결혼 후 가정과 육아에만 매달려 살았어요. 이제 윤후도 어느 정도 컸으니 무언가 본인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것 같기도 해요. 사회생활에 대한 호기심은 항상 있어요. 직장 생활 하며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진 친구들이 언제나 부러웠거든요. 올 초에 기회가 생겨 지인과 쇼핑몰을 운영해보기도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3개월 만에 접었어요. ‘아직은 아이와 함께 있자’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 저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봐야 할 것 같아요.

윤후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뭐예요? 건강하길. 욕심이 있다면 아빠와 잘 지냈으면. 그리고 언젠가 생길 여자친구의 좋은 남자친구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윤후를 사랑해주시고 지켜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윤후가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혹시 어딜 가나 ‘윤후 엄마’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섭섭하거나 하진 않나요? 남편이 10년 동안 가수로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윤후 아빠가 됐잖아요. 제가 윤후를 어떻게 이겨요. 저랑 남편 둘 다 합쳐도 윤후를 못 이겨요(웃음).

글노정연 기자I사진&리터칭ANDREW KWON(RARI STUDIO, 02-544-7232)I헤어&메이크업W퓨리피(02-549-6282)I스타일리스트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