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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희수 엄마', 4년 만에 식물인간 귀국 사연

일산백송 2015. 6. 18. 16:01

필리핀 '희수 엄마', 4년 만에 식물인간 귀국 사연
대사관·한인회 손잡고 추진…메르스 때문에 늦어져
연합뉴스 | 입력 2015.06.18. 15:11

대사관·한인회 손잡고 추진…메르스 때문에 늦어져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필리핀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희수 엄마' 선민정(43) 씨가
현지 대사관과 한인사회의 도움으로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다.

2011년 남편과 이혼하고 아홉 살짜리 딸 희원과 세 살배기 희수를 데리고
필리핀에 건너간 지 4년 만의 일이다.

선 씨는 필리핀 최초의 부동산 개발지역 중 하나인 마닐라 남쪽 파라냐케시의 비에프 홈스 지역에서
홈스테이를 운영하며 살았다. 열심히 벌어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다.


비록 법적으로는 이혼했지만 두 딸이 보고 싶어 필리핀까지 날아온 전 남편 김 모 씨를 돌려보내지 못하고, 

애들 아빠로서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받아들여 한집에서 살았다.
그에게 변고가 생긴 것은 지난해 9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구급차를 탄 것이다.

김 씨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처가와의 관계, 부부간 성격 차이로 이혼은 했지만, 딸들이 보고 싶어 필리핀에 건너왔다"며
"애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다 내 탓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여전히 선 씨의 곁에서 병간호하고 있다.

김 씨는 환자 상태에 대해 "자고 깨고는 하지만 의사소통은 안 되고, 통증은 느낀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세미 코마(반혼수)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선 씨는 집에서 쓰러져 인근 '아시안 병원'에 후송됐다.
현지 의료진의 장시간 수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두 달 넘게 치료했지만,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자 병원 측에서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퇴원조치했다.

그동안 병원비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한국 돈 8천만 원이 나왔고, 계속 이자가 불어나는 상황.
김 씨는 우선 5천500만 원 정도를 갚고 선 씨를 집으로 데려왔다.
미지급 병원비는 현재 이자가 붙어 4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필리핀은 병원과 의사가 받을 돈이 나눠줘 있다. 

병원 몫만 지급하면 환자는 퇴원할 수 있고, 필리핀을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호자와 자녀는 병원비를 다 내기 전에는 출국할 수 없다고 한다.

김 씨는 애들 엄마를 집으로 데려와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7개월 동안 

극진히 간호했다. 많은 병원비로 생활은 곤궁해졌고, 희원(13)·희수(7)도 학교수업료를 내지 못한 상태다.

이런 희수네 가족의 안타까운 사정은 현지 한인사회에 전해졌다. 

남부한인회(회장 나성수)와 지인들은 '희수 엄마 한국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나 회장은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김재신 대사에게 선 씨의 딱한 사정을 전했고, 

김 대사로부터 "대사관 차원에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동시에 한인사회에는 한국 이송에 필요한 항공료 등의 경비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선 씨가 한국에 가려면 항공기 좌석을 최소한 6개는 사야 하기 때문이다.

대사관 측은 전 남편과 두 딸을 급히 면담 후 본부에 '긴급구호활동비'를 요청하고, 

한국 이송에 필요한 서류도 준비했다.

선 씨의 비자연장도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김 씨가 진행했고, 

항공사에서는 선 씨의 항공기 탑승에 대비해 의사가 동반할 수 있도록 조처를 했다. 

희수 엄마처럼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탑승 시 의사의 동반이 필요하다.

한국에 입국하면 선 씨가 입원·치료할 병원도 정해졌다. 

그의 사연을 들은 경기도 용인의 연세엘림요양병원이 선뜻 그를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병원은 인천국제공항까지 구급차를 보내기로 했다.

이웃 주민이었던 김미영 씨는 지난 6월 1일 필리핀 관련 사이트(www.philgo.com)에 

'희수 엄마를 한국에 보내주세요'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올렸고, 

이에 공감한 독지가들이 200여만 원의 성금을 선뜻 내놨다.

대사관, 항공사, 한인회 등이 함께 뛴 선 씨의 한국 이송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소식이 발목을 잡았다.

대사관에서 비행기에 함께 탈 현지 의사를 구했지만,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자 한국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대사관은 다시 수소문 끝에 탑승할 의사를 구해 비자를 발급했다. 

선 씨는 오는 21일 고국을 떠난 지 4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올 예정이다.

"병원비와 애들 공부 때문에 저는 함께 가지 못해요. 먼저 보내 치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심장 박동수가 많이 떨어져 있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하루속히 깨어나 회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 씨의 헤어진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수화기에 전해졌다.

ghwang@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