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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야기

[만물상] 아들의 죽음

일산백송 2015. 2. 3. 12:37

[만물상] 아들의 죽음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2015/02/03 03:00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가 둘째를 패혈증으로 잃었다.
그는 집무실에서 인터뷰하다 눈물을 흘렸다.
"참 좋은 아들이었는데…."
그는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서전에 '아들이 떠나고 대통령의 권력과 영광도 사라졌다'고 썼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강인한 대통령이자 아버지였다.
"군인이 되려 하지 않는 사내는 국민 자격이 없다"며 네 아들을 1차대전에 보냈다.
눈이 나쁜 막내가 시력 검사판을 외워 조종사가 되자 기뻐했다.
"사자의 막내가 드디어 피를 보는구나."

▶막내는 보름 만에 격추돼 전사했다.
루스벨트는 태연히 성명서를 읽었다.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았다면 더 나쁜 일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돌아서서는 고개를 떨구고 흐느꼈다.
친구에게 "아들을 죽음의 길로 보냈다는 죄책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반년 뒤 세상을 떴다.
한 나라 대통령도 자식 죽음 앞에선 무너지고 만다.
하물며 평범한 어머니는.

▶"자식은 어머니를 삶 가운데 붙들어 매는 닻이다."
(소포클레스) 덴마크 의학자가 부모 30만명을 조사했다.
자식 잃은 아버지가 3년 안에 사망할 확률은 여느 아버지보다 57% 높았다.
어머니는 그 확률이 여느 어머니의 세 배였다. 어머니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
그래서 작년 이슬람 무장 단체 IS에게 참수당한 미국 기자 폴리의 어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는 성명에서 "인질은 미국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아들이 우리에게 줬던 기쁨에 감사한다. 훌륭한 아들이자 형제·기자·인간이었다.
아들을 애도하고 기리는 동안 사생활을 존중해달라."
눈물기 없는 성명에서 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어머니는 다른 기자가 참수되자 "이 끔찍한 일들이 선의와 평화로 승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 기자 고토의 참수 소식이 나온 그제 폴리 어머니를 떠올렸다.
고토 어머니는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성명은 간명하고 힘 있었다.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이며 슬픔이 증오의 사슬로 이어져선 안 됩니다."
어머니는 "폐 끼쳐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속담에 '어머니 품 속에 밤 이슬 내린다'고 했다.
꿈에서도 자식 생각하며 눈물 정성 사랑을 이슬처럼 쏟는다는 얘기다.
고토 어머니는 가슴속이 해지고 문드러졌을 것이다.
그래도 몸 가누고 서서 증오 대신 평화를 말했다.
어머니는 아름답다. 그리고 성(聖)스럽다.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