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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비혼시대]배우자보다도 중요한 건…나만의 집 한 칸

일산백송 2023. 7. 5. 18:58

[비혼시대]배우자보다도 중요한 건…나만의 집 한 칸

이지은입력 2023. 7. 5. 06:02수정 2023. 7. 5. 08:25
 
(18)비혼 1인가구 여성 주거독립 독립
전주 '비비 사회적협동조합' 세미나
"1인가구와 중장년은 배제하는 주거정책"

편집자주 -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세상. 비혼을 선택한 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누가, 왜 비혼을 선택할까. 비혼을 둘러싼 사회의 색안경만 문제는 아니다.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막연한 시선도 존재한다. 이른바 '비혼 라이프'의 명과 암을 진단해본다.

"너무 독립을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은 '결혼을 해야 네가 집을 나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직업도 없어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저 스스로도 '이게 맞는 걸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죠."

수은주가 32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4일. 전라북도 전주 신도심의 한 건물에 자리 잡은 '비비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았다. 비혼 1인 가구 여성들을 위한 '주거독립' 방안을 소개하는 '구해줘 전주홈즈 시즌 2'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무주택자에게 집을 구해주는 동명의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한 콘셉트지만, 대상이 '비혼 1인 가구'라는 것이 이례적이었다.

'비혼, 1인 가구, 중장년 여성, 여성주거공동체 공급 및 운영, 여성 1인 가구 주거상담' 등을 진행한다는 현수막이 1층에 걸려 있었다. 3층에 위치한 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리니 토요일 오후 1시인데도 10여명 정도의 인원이 강의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내 집 마련'은 결혼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 월세로 독립하고, 결혼하면서 돈을 모아 신혼집을 마련하는 식이다. 하지만 비혼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내 집 마련' 욕구는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안전하고도 오래 지낼 수 있는 집을 원하지만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비용 등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건네겠다는 게 비비 협동조합 행사의 취지다.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것은 전주시 주거복지센터 주거복지상담팀의 이태경씨였다. 그는 국민임대, 공공임대, 전세임대, 매입입대 등 전주시의 주요 주거복지 정책과 각종 금융·보증 상품을 소개하고, 방치된 빈집을 수리해 청년들에게 반값에 임대하는 전주시 제도를 소개했다.

강연이 끝나자 "전주에 LH 매입임대 주택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 "LH가 아니라도 함께 살 사람들을 모집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임대하는 제도는 없나" 등 질문이 쏟아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두 번째 강연자는 '추천', '청춘101', '창공' 등의 전주형 사회주택을 운영하는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주거복지조합)의 조연희 대리였다.

전주형 사회주택이란 전주시가 민간의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면, 주거복지조합이 이를 리모델링해 주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시세 80% 이하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특히 이 중 여성안심주택으로 운영되는 '청춘101'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입주 대기 인원이 25명이나 될 정도다.

세 번째 강연자는 전주에서 댄스학원을 운영하는 이은지 멀티버스댄스스튜디오 대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주택자였던 그는 비비 협동조합 조언을 받아 국민임대주택 입주에 성공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 대표는 계약 과정을 담은 브이로그 동영상을 보여주며 "맨 처음 보증금 1900만원에 월세가 11만원이었는데, 효자동에 사는 다른 친구들은 월세가 싸도 30만원 선이었다"며 "지금은 보증금을 2500만원으로 늘려 월세가 6만원밖에 안 된다"고 했다.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입주 조건이나 세대분리 등에 대해 강연자에게 물으며 다양한 정보를 교환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김희정(가명·32)씨는 "몇 개월 안에 독립해야 해서 막막했는데 정보를 많이 얻은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세미나 전반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이날 소개된 주거 복지 제도들이 '비혼 1인 가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39세 이하 청년이나 빈곤층을 위한 복지정책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비혼 1인 가구가 중년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김난이 비비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도 이에 공감하며 이렇게 전했다.

"모든 정책 대상자로 인기 있는 계층은 청년과 노인이다. 중장년이 소외당하고 있는 것은 주거정책뿐 아니라 다른 정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주거는 모든 사람의 생애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청년, 신혼부부, 노인이라는 대상으로 구분 지어 공급하는 방식은 증가하는 1인 가구나 중장년을 배제하는 방식이 되기 쉽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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