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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공무원, 월급 180만원 ‘신의 직장’ 떠난다

일산백송 2023. 3. 20. 13:52

MZ 공무원, 월급 180만원 ‘신의 직장’ 떠난다

입력 2023. 3. 20. 11:38
 

저연차 공무원 3년새 2배 퇴직
9급 지원자 수 6년새 반토막
노량진 ‘컵밥거리’마저 한산

# 지난 15일 오후 7시께 노량진. ‘공무원 준비생의 메카’라는 말이 무색하게 썰렁한 풍경이다. 사람이 가득 들어찬 식당은 찾아볼 수 없고,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인기가 많았던 컵밥거리마저 한산하다. 고시원 밀집지역 상가의 지하식당가도 고요하다. 6곳 남짓한 식당 절반은 불이 꺼져 어둑하다. 영업 중인 찌갯집의 손님은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 반, 인근 주민 반이다.

2000년부터 노량진에서 고깃집을 운영 중인 50대 이모 씨는 “2000년대 중반 공시생이 급격하게 늘었고 2017년 정점을 찍더니 갑자기 줄었다”며 “코로나19 이전부터 하락세가 느껴지더니 곧바로 공시생을 상대로 장사하던 밥집부터 망했다. 원룸과 고시원은 최근 배달라이더나 근처 대학생들이 채우고 있지만 공실이 적어도 30%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노량진 상가에서 침구를 판매 중인 김모(75) 씨 또한 같은 생각이다. 김씨는 “5~6년 전만 해도 점심, 저녁시간만 되면 지하 1층 식당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었다”며 “지금은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4면

 

공시생이 사라진다. 2010년대 내내 청년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으로 꼽혔지만 사정이 급변했다. 낮은 연봉, 늘어나는 민원인, 경직된 조직문화로 MZ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가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지원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3년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원서 접수 인원은 12만1526명으로, 지난해 대비 4만여명 줄었다. 2017년 지원자 수가 22만8368명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6년 사이 46.8% 줄어, 반 토막이 난 셈이다. 7급 국가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원서 접수 인원이 2017년 4만8361명에서 지난해 3만3455명으로, 30.8% 급감했다.

인사혁신처는 학령인구 감소, 고교 선택과목 폐지 등을 원인으로 들지만 부족한 설명이다.

공무원시험을 가장 많이 응시하는 20~29세 인구는 2017년 674만여명에서 올해 636만명으로, 5% 줄어드는 데에 그쳤다.

경찰공무원도 예전 같지 않다.

2018년부터 노량진에서 공무원 체력시험학원을 운영 중인 40대 김모 씨는 “처음 학원을 열었을 때에 비해 30% 정도 수강생이 줄었다. 지금은 한 달에 50명 정도가 수업을 듣고 있다”며 “코로나19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난해부터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큰 차이가 없다”고 노량진 일대 상황을 전했다.

실제 상반기 경찰공무원(순경 일반) 응시자 수는 2018년 5만2920명에서 2023년 3만1667명으로, 2만여명 넘게 줄었다.

고위 공무원을 뽑는 5급 공무원과 외교관 공채 지원자 수도 마찬가지다. ‘고시’는 옛말이다. 5년 사이 20% 넘게 줄었다.

5급 공채·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원서 접수자 수는 2017년 1만5725명에서 올해 1만2356명으로 줄었다.

서울 소재 대학 한 행정학과 교수는 “5~6년 전만 해도 행정학과 학생 50명 중 30명은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최근에는 5~10명 정도만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연세대 재학생인 권모(23) 씨는 “예전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공무원보다는 대기업 취업이나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9급 공무원은 월급이 180만원이라던데 어떻게 ‘신의 직장’이라고 불렸는지 의문이다. 5급 공무원은 사정이 낫겠지만 뽑는 인원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지원자 수만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입직하고도 정년을 포기하는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행정안전부 국가공무원 의원면직자 현황’에 따르면, 자발적 퇴직을 의미하는 의원면직자는 2018년 1만694명에서 2021년 1만4312명으로, 33.8% 늘었다. 지방직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의원면직자 수가 3610명에서 5202명으로, 44% 급증했다.

입직 3년 이하 저연차의 퇴직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발적 퇴직 증가세는 MZ세대가 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입직 3년차 이하 퇴직자 수는 2018년 5166명에서 2021년 9881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4년간 공무원사회를 떠난 저연차 수만 2만9636명에 달한다.

10년차 공무원인 최모(35) 씨는 “2021년에 입직했던 공무원 2명이 지난해 나란히 퇴직해서 조직 전체가 웅성웅성했다. 1명은 선생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1명은 대기업에 붙어서 공무원사회를 떠났다”며 “2013년 저와 같이 입직한 동기 중에는 퇴직자가 거의 없다. 요즘에는 확실히 1년 안에 퇴직하는 친구들이 생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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