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프로레슬링 거장 안토니오 이노키 별세
이현택 기자입력 2022. 10. 1. 11:14수정 2022. 10. 1. 15:27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과 더불어 ‘한·일 프로레슬링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장 안토니오 이노키(79ㆍ본명 이노키 간지)가 1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 매체들이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노키는 194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이후 브라질에 이주했으며, 현지를 방문한 역도산에 의해 스카우트돼 일본으로 귀국한다.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하게 된다.
1976년 6월 26일 도쿄에서 열린 안토니오 이노키와 미국 헤비급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에서 두 선수가 서로 악수하고 있다./AP 연합뉴스 1976년 6월 26일 도쿄에서 열린 안토니오 이노키와 미국 헤비급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AP 연합뉴스이노키는 김일, 자이언트 바바와 더불어 1960년대 일본 레슬링계를 풍미한 인물로 꼽힌다. ‘불타는 투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으며, 그를 계기로 많은 후배 스타들이 일본 프로레슬링을 이끌었다.
국내에서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거장인 김일과의 경기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 9월 데뷔전이 김일과의 첫 대결이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노키는 김일에게 패배한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대결한다.
김일 선수 대 이노키 선수 프로레슬링 경기 75.3.27./국가기록원 제공 1993년 2월25일 전 프로레슬러 김일(오른쪽)과 안토니오 이노키가 15년만에 서울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전기병 기자이노키는 또 정치인으로도 활약했다. 그는 1989년 스포츠평화당을 창당해 참의원에 당선됐으며, 1995년 참의원 선거 낙선 후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18년만인 2013년에는 참의원에서 일본유신회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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