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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별세에도 '슬픔 표현' 못하게 만든 네이버

일산백송 2022. 5. 9. 08:00

강수연 별세에도 '슬픔 표현' 못하게 만든 네이버

이우연 입력 2022. 05. 08. 17:16 수정 2022. 05. 08. 18:26 
개편 후 '화나요', '슬퍼요' 이모티콘 없어져
네이버 "특정 감정 막기 위한 조치 아냐"
"의견 교류 수단 없앤 것"vs"부작용 막아야"
네이버 기사 추천 스티커 갈무리. 위 이미지가 개편 전, 아래 이미지가 개편 뒤.

지난 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는 어린이날 전날 서울 영등포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할아버지와 손자와 관련된 기사들이 올라왔다. 기사 댓글창에는 ‘안타깝다’는 반응과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댓글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다수의 공감을 받은 한 댓글이 있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근데 공감 누를 게 없다’라는 한 누리꾼의 댓글이었다.

네이버가 지난달 28일 뉴스 하단에 있던 ‘감정스티커’를 ‘기사 추천스티커’로 바꾸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계속 나온다. ‘화나요’나 ‘슬퍼요’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스티커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특정 감정 표현을 막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스티커 버튼을 눌러 뉴스 기사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감정을 표시하는 데 익숙한 이용자들 사이에서 해당 기능을 되살려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네이버는 2017년부터 기사 본문 하단에 뉴스를 읽고 느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좋아요’, ‘훈훈해요’, ‘슬퍼요’, ‘화나요’, ‘후속기사 원해요’ 등 5가지 공감 버튼을 제공해왔다. 네이버는 지난달 28일 이를 ‘쏠쏠정보’, ‘흥미진진’, ‘공감백배’, ‘분석탁월’, ‘후속강추’ 등 5가지 추천 버튼으로 대체했다. 네이버는 공지에서 “사용자들이 기사를 보고 감정 표현을 단순히 남기는 대신 꼭 기사를 추천하고 싶을 경우 자세한 추천 사유를 선택해 표기하는 형태”라며 “사용자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언론사들이 공들여 작성한 좋은 기사들이 발굴될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라고 했다.

그러나 개편 이후 ‘화나요’와 같은 부정적 감정 버튼이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냐’, ‘정치적인 이유로 없앤 것이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로 ‘화나요’ 폐지에 집중됐던 비판은, 개편 일주일이 지나고 화재로 인한 사망과 배우 강수연씨의 별세를 알리는 기사들이 나오자 ‘슬퍼요’ 폐지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네이버에 올라온 강씨의 별세 소식을 알리는 기사의 한 베스트 댓글은 “부고 기사에 이딴 것밖에 누를 게 없다니, 네이버는 슬픈 유저들 감정 표현도 못 하게 하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solc***)”라는 댓글이었다. 네이버 관계자는 “(서비스 개편이) 특정 감정 표현을 막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 추천 서비스로 개편하면서 바뀐 것”이라며 “‘화나서 기사를 추천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특히 기존의 ‘화나요’ 버튼이 기사의 내용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인지, 기사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화가 나는 것인지 구분할 길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이용자들이 ‘감정스티커’를 의사표현과 소통의 도구로 써오는데 익숙해진 탓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 네이버 뉴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박인태(28)씨는 “국내에서 포털은 의견 교류의 장이 된 지 오래다. 독자들은 기사를 추천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남기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해 포털에서 뉴스를 보기도 한다”며 “(부정적 감정 표현 버튼을 없앤) 네이버의 이번 개편이 독자 중심의 개편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다만, ‘감정스티커’와 뉴스 포털 댓글이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하는 용도로 일부 변질된 점도 있어 폐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홍식 중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의 공감 표시는 지인의 글에 대한 감정 표현으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지만, 뉴스 포털의 공감과 댓글은 부정적인 감정을 뱉어내는 공간이 돼버린 지 오래”라며 “지금처럼 감정 표현이나 댓글 창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관련 기능을 없애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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