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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

박성철·송호경과 김달현·장성택 … 대남 특사 엇갈린 운명

일산백송 2014. 10. 7. 12:24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박성철·송호경과 김달현·장성택 … 대남 특사 엇갈린 운명
[중앙일보] 입력 2014.10.07 00:43 / 수정 2014.10.07 01:09

박성철·송호경 끝까지 파워 유지
김달현·장성택은 자살·처형
개혁·개방 성향 인사 대부분 비운

북한의 조문특사로 2001년 3월 24일 서울 청운동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송호경(왼쪽) 당시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정몽준(손 잡은이) 현대중공업 고문에게 조의를 표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02년 10월 26일 북한 경제시찰단으로 서울을 방문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을 둘러보는 장성택(왼쪽)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지난 2월 판문점 남북고위급접촉 북측 단장으로 나온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 [중앙포토]


평양 고위인사의 ‘깜짝방문’은 북한담당 기자들에겐 고역입니다.
남북 협의는 극비리에 이뤄집니다. 발표도 전격적이죠.

지난 토요일 오전 7시 반쯤 ‘남북 행사관련 브리핑 예정’이란 통일부발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기자들은 인천으로 내달려야 했습니다.

연휴를 맞아 가족·연인과 가평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이나 서울 여의도 세계불꽃축제에 가려던
기자들은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2000년 추석연휴 첫 날 전격방문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밀착취재하느라
나흘간 제주 등지를 떠돈 기억도 떠오릅니다.

고위급 인사의 파견은 남북 모두에게 긴요한 카드입니다.
상대 최고권력자의 의중을 타진하고, 비공개리에 협의·교감할 수 있는 채널이란 점에서죠.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땐 더 절실합니다.
베테랑급 남북 회담 관계자는
“당국대화가 ‘약속 대련(對鍊)’이라면 특사나 밀사는 성패 예단이 어렵고 긴박감 넘치는 진검승부”라고
귀띔합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용해·김양건 노동당 비서 일행은 사실 특사에 가깝습니다.
대통령 면담이나 친서는 없었지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의 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입니다.
공식 특사의 경우 최고지도자의 위임장을 지참하고,
상대측 경찰(북한은 인민보안부)총수의 신변보장각서를 받아 방문합니다.

남북 간 고위급 파견의 효시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의 서울·평양 상호방문입니다.

김일성을 면담한 이후락 부장은 자살용 극약까지 챙겨갔다니 치열했던 냉전시기를 짐작할만합니다.
추석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이끌어낸 1985년 7월 박철언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보의 방북이나
1990년 9월 서동권 안기부장의 평양방문도 최고지도자간 소통인 셈입니다.

북한의 경우 특사로 낙점됐던 인사들 상당수는 위세를 떨쳤습니다.
7·4공동성명 조율을 맡은 박성철(2008년 사망)은 부주석까지 올랐고,
첫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을 만든 싱가포르 비밀접촉의 북측 주역인 송호경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대남라인에서 승승장구했죠.

물론 남한 방문이후 비참한 운명을 맞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1992년 경제시찰차 왔던 김달현 부총리는 숙청돼 2·8비날론공장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자살했습니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경우 2002년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다녀갔는데요.
서울 유흥주점에서 부화방탕(浮華放蕩)했다는 소문에 휩싸였고,
권력남용까지 겹쳐 ‘혁명화 교육’을 당했죠. 결국 지난해 조카 김정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당시 시찰단장이던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도 김정은 주도의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희생양으로 형장의 이슬이 됐죠.
이명박 정부 때 남한을 극비리에 다녀간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은
간첩죄로 2010년 초 공개총살됐습니다.

비운의 주인공들은 대개 개혁·개방파로 간주된 인사입니다.
우리 당국자 사이에선
“얄미운 북한 고위인사를 숙청리스트에 올리려면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 치켜세우면 된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옵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일행에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실세 3인은 안도해도 될 듯 합니다.

특사나 밀사는 경색국면을 뚫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본질적 국면변화엔 역부족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이벤트성 남북관계는 곤란하단 얘기죠.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인천방문 보고를 마친 3인은 새 대남전략을 짤겁니다.
첫 단추는 ‘통 큰 규모’의 이산상봉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다음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도 당당히 요구했으면 합니다.
물론 4년전 천안함 폭침도발에 대한 시인·사과와 관광객 피격사망에 대한 유감표명이
북측 대표단 보따리에 담겨있어야하겠죠.

권력핵심인만큼 북한 관영매체가 발뺌하는 천안함과 무인기 침투 등의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엉킨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낼 결정적 한올을 지금 3인이 쥐고 있습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