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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봉제공장 미싱이 돌아간다

일산백송 2021. 10. 17. 17:08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봉제공장 미싱이 돌아간다

류인하 기자 입력 2021. 10. 17. 13:38 수정 2021. 10. 17. 14:29 

[경향신문]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아이리스’ 봉제공장 직원들이 지난 15일 오징어게임 아동복 제작작업을 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드드드득…드드드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아이리스 무역’ 봉제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퍼져나왔다.

직원들은 맡은 공정에 따라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장 한 켠에는 완성된 초록색 추리닝(트레이닝복)이 쌓여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5일 이 곳은 아동복 업체에 납품할 ‘오징어게임’ 추리닝 700벌 제작에 한창이었다.

아이리스 고종현 사장의 부인이자 납품·제작 전반을 맡고 있는 김진자씨는 “어제는 밤 10시까지 작업을 하다 퇴근했다. 늦은 시각까지 일한 것도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입은 티셔츠 사이로 팔에 두른 압박밴드가 언뜻 드러났다.

그는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살아남을 길이 안 보였는데 적은 물량이라도 일할 수 있으니 좋다”면서 “이번 특수가 한 달 이상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봉제산업에도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할로윈데이까지 겹치면서 국내 봉제업체에 오징어게임 추리닝 제작 주문이 쏟아진 덕분이다.

추리닝은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입은 초록색과 경비원들이 입은 분홍색 두 가지 종류로 제작되는데,

이 봉제업체에서는 3세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입을 수 있는 아동복을 제작한다.

김씨는 “12일부터 주문이 들어와서 재단·가공을 완료하고 본격 작업에 들어간 상태”라며

“오늘 700벌 납품분까지 합하면 이번주만 1500장 이상 만들었다”고 말했다.

추리닝 제작은 재단에서부터 박음질까지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김씨는 “원사 질에서부터 마감까지 중국산이 국내산을 따라올 수는 없다”면서

“중국산은 한 번만 빨아도 보풀이 일어나는데 전부 원단과 기술 차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한 봉제업체에서 만든 오징어게임 추리닝에는 국내산임을 알리는 ‘MADE IN KOREA’ 태그가 붙어있다. 류인하 기자


공장 한 켠에서 재단을 하던 고종현 사장은 “오늘이 월급날인데 이번달은 빚 내지 않고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편하다”고 말했다. 일본 수출을 주력으로 해온 아이리스는 한일무역분쟁과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면서 대출로 버티고 있는 상태다. 1986년부터 성북구에 자리잡고 35년간 봉제공장을 운영해온 아이리스조차 코로나19 장기화에 휘청이고 있는 것이다. 통상 봉제업은 기본급 없이 완제품에 따른 개수임금제로 공임을 받는 고용형태인 ‘객공’ 체제로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이 곳은 월급제로 운영한다. 일감이 많든 적든 직원들 급여는 반드시 챙겨야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곳 방침이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서울 종로구와 중랑구에 이어 세 번째로 봉제공장이 많은 곳이다.

관내 2144개 제조업 사업체 가운데 70%인 1510개가 봉제업체다. 종암동, 장위동, 월곡동, 석관동 일대는

동대문 배후지역으로 1980년대부터 봉제공장이 밀집했으며, 의복산업과 주변산업인 섬유제조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베트남·미얀마 등 해외공장으로 일감이 몰리면서

국내 봉제산업이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1993년 전국 4만2000여 개에 달했던 봉제업체는 2015년 기준 2만5227개로 줄었다. 싼값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중국에 물량을 빼앗기면서 국내에 남은 의료봉제업체 중 68.3%(1만7233개)가 4인 이하 영세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전체의 90.1%(2만2748개)가 9인 미만 사업체다.

아이리스 고종현·김진자씨의 손녀딸이 15일 오징어게임 추리닝을 입고 앉아있다. 류인하 기자


성북구는 열악한 봉제업체 되살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열악한 영세 봉제업체 환경개선 작업을 시작으로 제작에서부터 유통·판매까지 가능한 봉제산업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령화되고 있는 봉제인력 육성도 시행한다. 구 관계자는 “올해 관내 영세봉제업체를 대상으로 업체당 900만원 상당의 미싱기 등 봉제장비, 아이롱(공장용 다리미), 환풍시설 및 노후장비 교체작업을 시행했고 현장점검 후 필요시 공기청정기, 소방장비 추가설치 등도 지원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성북스마트패션산업센터도 개관한다.

자동재단실, 샘플실, 디자인실, 패턴실 등 최첨단 장비가 구축된 종합 패션산업센터 운영을 통해 봉제인력 교육, 온라인 판로지원, 청년 패션창업 인큐베이팅 지원 등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특수작업이 가능한 봉제기기 ‘오드람프’ 등 특수봉제장비 4종도 관내 영세업체에 무료로 대여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해나가기로 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17일 “관내 봉제업체 사업주들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분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지원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해나갈 것”이라며 “국내외 바이어분들도 합리적 가격과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성북구 봉제업체의 문을 두드려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15일 아이리스를 방문해 고종현·김진자씨와 면담을 나누고 있다. 류인하 기자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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