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퇴 후 올스톱된 권력 수사..우려가 현실로
이태훈 기자 입력 2021. 05. 06. 11:39 수정 2021. 05. 06. 13:14
동아일보 DB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중도 사퇴한 이후 삐걱거리면서도 그럭저럭 굴러왔던 검찰의 대형 비리 수사가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간 분위기다. 수사 지휘권자인 검찰총장이 공석인 데다 차기 총장 인선 절차가 진행 중인 과도기적 상황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밀어붙이던 윤 전 총장이 사퇴하면 정권 수사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 전 총장이 3월 4일 여권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반대하며 사퇴한 이후 검찰에서 진행된 대형 수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사건이 거의 유일하다. 불법 출국금지에 개입한 혐의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소환조사하면서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수사가 이 정도로 진척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확실하고 탄탄한 증거가 바탕이 된 공익제보자의 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연초 해당 의혹이 불거진 직후 별도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도록 지휘한 윤 전 총장의 결단도 실체를 규명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전 총장은 1월 기존에 수사를 해온 안양지청의 ‘사건 뭉개기’ 논란이 제기되자 지난해 서울동부지검에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했던 이정섭 부장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지정하고 사건을 수원지검 본청으로 재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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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지난해 가을 감사원 이첩 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던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은 윤 전 총장의 사퇴 이후 수사 동력을 상실한 듯 별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실무 정부부처와 청와대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로 꼽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월 기각되면서 청와대 윗선으로 수사가 뻗어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 동력 상실의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외풍을 막고 수사를 독려하던 검찰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사라진 것이 일선 수사팀에게는 믿고 의지할 지향을 잃어버리게 돼 수사 진도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총장이 ‘적폐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후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을 향해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나섰을 때만 해도 고위층 비리에 대한 국가 사정(司正) 기능이 작동되고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입시 비리 등을 파헤친 ‘조국 수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는 여권이 수사팀을 해체시키는 검찰 인사를 단행해 충분한 수사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청와대 참모진 등을 기소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해 윤 전 총장의 측근 간부들이 한직으로 좌천되면서 수사를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었지만 검찰은 여권 인사 연루설이 나돌았던 ‘라임’,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과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횡령 의혹을 수사해 윤 의원을 기소하는 결과를 냈다. 그러나 올 3월 4일 윤 전 총장이 검찰 수사권을 지키고 자신의 대권 출마를 위해 검찰을 떠난 이후에는 힘겹게 굴러가던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스톱된 상태다. 그나마 지난해 말 ‘추-윤 갈등’ 사태 이후 소신 행보를 하고 있는 조남관 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검사) 체제가 중심을 잡으면서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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