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든 가난하든 모두 불구속 재판"
이은택 기자 입력 2021. 02. 25. 03:02 수정 2021. 02. 25. 04:23
美일리노이주, 보석금 제도 첫 폐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살인과 같은 중죄가 아니면 모든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빈부 차별’ 논란이 제기돼 온 피고인 보석(保釋) 제도를 없애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형사 피고인이 보증금을 내고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하는 보석금 제도(cash bail)를
사실상 전면 폐지하는 것은 미국에서 일리노이주가 처음이다.
일리노이주의 이런 결정에 흑인사회와 라틴계는 환영했고 경찰과 보수 진영은 반발했다.
22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이날 보석금 제도 폐지 내용을 담은 사법개혁 법안에 서명했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부자를 대우하는 불균형한 제도를 종식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공동체, 지역, 국가에 만연한 구조적인 인종 차별을 해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보석금 제도 폐지의 의미를 설명했다. 보석금 제도 폐지법은 2023년 1월부터 적용된다.
일리노이주의 흑인 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는
“새 법이 시행되면 판사는 그 어떤 형태의 보석금도 책정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미국의 모든 주에서는 형태가 각기 다른 보석 제도가 시행 중인데 보증금을 낼 형편이 되는지에 따라
석방 여부가 갈리는 것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일리노이주의 보석금 제도 폐지를 두고 찬반 대립이 빚어졌다.
폐지를 찬성하는 쪽은 ‘돈이 많으면 구속을 면하고, 없으면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보석금 제도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칼리프 브라우더 사건’이 꼽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브라우더는 17세이던 2010년 강도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3년간 구금됐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당시 3000달러의 보석금을 내지 못했다.
수감 중 가혹 행위를 당했던 그는 6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2013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결국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석금 제도 유지를 찬성하는 쪽은 범죄자들이 지역사회에 복귀하면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검사 출신인 짐 더킨 주 하원의원(공화당)은 22일 “범죄자들과 갱단의 명예를 존중하라는 법안”이라고 했다.
일리노이주 보안관협회와 경찰협회도 반발했다.
이들은 정신적인 문제나 약물중독 치료가 필요한 이들까지 풀려나면 지역사회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리노이주보다 먼저 보석금 제도 폐지를 시도했던 곳도 있었지만 반발에 부딪혔다.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부터 미국 50개 주 중 처음으로 보석금 제도를 일부 폐지하려 했으나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뉴욕주는 지난해 1월부터 경범죄, 비폭력 중범죄 피고인에 대한 보석 제도를 폐지하고
이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했다가 이후 총기 범죄와 살인 등이 늘자
6개월 만에 불구속 재판 대상 범위를 대폭 줄였다.
보석금 제도 폐지를 이끈 프리츠커 주지사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유대계로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는 미국 정치인 중 최고 부자로 꼽힌다.
2015년 주지사가 된 그는 하이엇 오너 가문으로 32억 달러(약 3조5600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규모가 31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도 많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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