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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할인' 토요타, 속은 이미 썩었다
전민준 기자 입력 2019.12.09 06:06 수정 2019.12.09 13:30
/사진=뉴시스
토요타와 혼다, 닛산. 지난 2000년대 초반 한국시장에 진출한 다수의 일본 자동차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이다. 일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곱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 일본차 3사는 대대적인 홍보나 광고, 할인 없이 고객 입소문으로 견뎌왔다. 2019년 7월 일본정부의 보복성 수출규제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진행됐던 시기에도 공격적인 마케팅 없이 제자리를 지켰다. 제품 품질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내세우며 ‘노(No) 할인’을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패한 일본차 3사의 속내를 낱낱이 파헤쳐봤다.【편집자주】
[부패한 일본차-상] 잘 나가던 일본차… 문제는 수익성
“우리는 할인 안 합니다.”
일본자동차 전시장에서 차 값 할인을 요구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지금까지 일본 수입차 업체들은 공식적으로 ‘노(No) 할인’을 고수하며 그들만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켜왔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수시로 할인하는 독일차 업체들과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본차 업체들에게 ‘노 할인’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 이면에는 ‘노 할인’으로 짭짤한 재미를 봐온 본사의 숨은 압박이 있었다.
2017년과 2018년 유례없는 호황을 겪은 국내 일본차 업체들은 본사 배불리기의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2017년엔 토요타코리아(이하 토요타)가 이익잉여금 315억원을 모두 일본 본사에 배당으로 넘겨 논란이 됐다.
지난해에는 당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혼다코리아(이하 혼다)가 당기순이익의 50%인 64억원을 배당을 통해 일본 본사로 넘겼다. 이 같은 배당으로 일본 본사 입장에선 가격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 반면 한국닛산(이하 닛산)의 경우 2016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부진을 겪으며 가격을 내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가격 할인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3사 모두 재무실태가 부실하다. 2016년부터 3년간 이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300%를 넘었다. 산업과 업종, 기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정부는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기업에 대해선 ‘건전성 위험’을 경고한다.
최근 ‘노 할인’을 고수해 오던 혼다와 닛산, 토요타까지 하반기 대대적인 할인에 나선 속사정은 뭘까. 과거 한차례 부실 도마에 올랐던 일본차 업체들의 ‘경영실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3년간의 일본차 ‘천하’
2019년 7월 17일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차 3사는 일제히 2018년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일본기업 회계연도는 3월)를 내놨다. 말그대로 2018년 국내 수입차시장은 일본차 천하였다.
토요타는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매출 1조원을 웃돌아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8년 토요타 매출은 전년대비 14.1% 증가한 1조1976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5968억원 이후 4년 연속 매출 최고치를 경신하는 호조세가 이어졌다.
영업이익은 12.1% 늘어난 612억원, 순이익은 43.3% 급증한 509억원으로 역시 모두 사상 최대치를 달성해 2000년 국내 진출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실적을 견인한 베스트 모델은 ‘렉서스 ES’다. 렉서스는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만1576대가 팔려 실적호조의 주된 동력이 됐다.
혼다 또한 파죽지세였다. 2018년 매출은 전년대비 12.3% 늘어난 4673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2015년 2133억원에 비해 3년 만에 2배 이상 수직상승했다. 영업이익은 196억원으로 무려 292%나 뛰어올랐다. 순이익도 127억원으로 122.8% 증가하는 등 2018년 토요타와 함께 일본차 브랜드의 고공성장을 이끌었다. 혼다는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순이익의 절반이 넘는 배당금을 일본 본사에 보냈다.
이에 반해 닛산은 지난해 신차 부재로 실적이 꺾였다. 매출은 전년대비 25.5% 감소한 2106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 140억원, 순손실 14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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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무건전성 회복 실패
우수한 실적에도 할인에 야박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빚이 많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차 3사는 실적 개선에도 재무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일본차 3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2016년 774.1%에서 2018년 386.1%로 대폭 줄었지만 개별기업의 부채비율은 여전히 200%를 넘는다.
가장 심각한 곳은 닛산이다. 3년 연속 자본잠식에 빠졌다. 토요타도 2016년 1521%에서 2018년 281%로 크게 개선됐으나 위험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같은 기간 혼다의 부채비율은 41%에서 116%로 오히려 상승했다. 금융권에서 부채비율 200% 넘는 기업은 관리기업으로 분류한다.
더 문제는 전체 부채 가운데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업체별 단기부채는 토요타 1099억원, 혼다 609억원, 닛산 448억원 등이다. 토요타는 전체 부채 가운데 60.4%, 혼다와 닛산은 각각 67.4%, 30.9%가 단기차입금이다. 대부분 일본 본사로부터 빌린 돈이다. 3사 모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2020년 3월까지 갚아야 한다.
한국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일본차 업체들이 할인을 못하는 속사정에는 상당한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며 “노 할인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병행하면서 여태껏 버텨왔다”고 귀띔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본 본사의 자금 상환 압박은 커지고 이익을 내라는 압박도 큰 만큼 할인을 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 한국서 번 돈 상당수 일본 본사로 빼돌려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2017년 3월~2018년 3월) 토요타의 매출은 전년보다 22% 증가한 1조490억원이었고 당기순이익으로는 355억원을 거뒀다.
토요타는 이 가운데 전년 결손금(약 40억원)을 제외한 315억원 전액을 일본 본사에 배당해 미처분이익잉여금은 ‘0’이 됐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영업이익에서 법인세와 각종 비용을 빼고 주주에게 배당한 후 회사에 남은 재원이다. 이익잉여금이 없으면 돈을 빌려 투자해야 한다.
2000년 설립된 토요타는 이익 모두를 항상 일본으로 보내 빈축을 사왔다. 토요타는 2007년 이후 2009년(50%)을 제외하곤 배당성향이 100%였다. 지난해에는 2011~2014년에 쌓인 적자를 털어버리자마자 다시 이익 전액을 보냈다.
지난해 대규모 흑자를 낸 혼다는 중단됐던 배당을 재개했다. 2016년 47억원에 이어 2017년 64억원을 배당했던 혼다는 2018년 건너뛰었으나 올해엔 다시 배당(64억원)을 결정했다. 지난해 순이익과 비교한 배당성향은 50%다. 혼다는 일본 혼다 본사가 95%, 정우영 혼다 회장이 5%의 지분을 쥐고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 번 돈 대부분을 일본 본사에 그대로 송금한 셈이다.
한국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일본차 업체들은 본사의 수익만 극대화하고 투자로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며 “할인은 없다며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2호(2019년 12월10일~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전민준 기자 minjun8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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