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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수사라 홍보했는데 '고문설'까지…이춘재 자백에 난감한 경찰
CBS노컷뉴스 박성완·주영민 기자메일보내기2019-10-08 05:10
8차 사건 범인 지목된 윤모씨, '20년 옥살이' 했는데…
이춘재 "내가 저지른 사건" 자백…신빙성 의심되지만 경찰 수사에도 '물음표'
윤씨, "경찰 고문으로 허위자백" 억울함 호소도…법적 대응 준비
법조계 "이춘재 자백 만으로는 재심 어려울 것" 전망
(사진=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모방 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까지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하면서 경찰이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만약 이춘재의 자백이 맞는다면 경찰 수사를 통해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모 씨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게 된다. 윤 씨 가족 측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8차 사건은 31년 전인 1988년 9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는 박 모(13)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입에 재갈이 물려있거나 손발이 묶여있는 등 다른 화성사건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났던 특이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체모를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다. 연구소는 정밀감식 결과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며 체모에서 티타늄이 검출됐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용의자들의 체모를 모아 감정의뢰를 한 끝에 윤 씨를 범인으로 특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체모 등에 포함된 성분을 용의자의 것과 대조하는 이른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이 적용된 이 수사는 국내 첫 과학수사 사례로 남았다. 윤 씨는 지난 2009년 8월까지 20년 옥살이를 한 뒤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8차 사건도 내가 저질렀다'는 이춘재의 최근 자백은 이런 과거를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다. 그의 자백이 거짓일 경우를 배제할 수 없지만, 윤 씨가 이춘재 대신 억울한 옥살이를 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각하는 정황이나 증언들도 뒤따르고 있다.
우선 복수의 전문가들은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의 정확도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범인을 좁혀가는 데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특정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윤 씨는 과거 재판에서 '경찰에 의해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을 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8차 사건 관련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윤 씨는 "사건 발생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에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신호철 전 시사인 기자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5월 수감 중인 윤 씨를 면회했을 때에도 그가 결백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신 기자는 "윤 씨가 8차 사건도 자기가 한 게 절대 아니라고 얘기했다"며 "재판에서 왜 졌냐고 물었더니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놈이 하소연할 데가 어디 있겠나, 억울하다.' 그렇게 얘기했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속 경찰은 사실 확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 설명은 자제하면서 난감해하는 기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다 규명해야 한다. 사실이 밝혀지면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수사 관계자는 "(의혹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정리하는 단계"라면서도 "과거 사건이라 입증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자들의 트라우마 문제도 있고, 접촉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윤 씨를 접촉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8차 사건 논란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범인을 잘못 잡았다면 경찰과 국과수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윤 씨는 '억울함을 풀겠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그의 가족이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자신이 진범이라는 이춘재의 증언만으로 억울함을 입증하기는 어려우며, 추가 증거가 나와야 재심이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대표변호사는 "이춘재의 증언에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심 개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8차 사건 수사가 명백히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와야 재심과 손해배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재판 증거로 쓰였던 체모 등 증거물이 남아있는지를 묻는 말에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psww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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