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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침실로 알려진 경복궁 연길당, 알고 보니 '부엌'이었네

일산백송 2019. 6. 14. 08:45

한겨레

왕의 침실로 알려진 경복궁 연길당, 알고 보니 '부엌'이었네

입력 2019.06.14. 05:06 수정 2019.06.14. 07:26

 

광화문 현판 실체 알린 '영건일기'

서울역사편찬원서 번역본 발간

공사 현장 기능공들 안전에 세심

고종 직접 비계 올라 시찰 기록도

 

<경복궁영건일기>에 기록된 광화문 현판에 대한 부분에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를 뜻하는 ‘묵질금자’(墨質金字)라고 쓰여 있다. 서울시 제공

 

왕의 침실(침전)이나 신하를 접견하는 장소로 알려졌던 경복궁 연길당과 응지당이 왕의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이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광화문 현판이 지금의 ‘흰 바탕에 검은 글자’가 아니라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였다는 사실을 지난해 확인했던 <경복궁영건(건축)일기>를 통해서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조선시대 하급 관리인 한성부 주부 원세철이 1865~1868년 경복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영건일기>를 번역한 <국역 경복궁영건일기>를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지난해 정재정 서울역사자문관과 이우태 서울시 시사편찬위원장, 기미지마 가즈히코 일본 도쿄가쿠게이대 명예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일본 와세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던 9책짜리 <경복궁영건일기>를 번역했다.

 

그동안은 고종 때 이뤄진 경복궁 중건 과정에 대한 사료가 거의 없어,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임금의 침전이나 신하 접견소로 추정됐던 연길당과 응지당은 ‘중간 부엌’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별도의 건물로 지어진 강녕전과 그 부속 건물인 연생전과 경성전이 애초엔 하나의 건물로 계획됐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 밖에 번역 책임자인 배우성 서울시립대 교수(국사학)는 이 책을 통해 경복궁 안의 6개 수문과 물길, 두 갈래의 배수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발견된 도면과 문헌 가운데엔 경복궁의 물길이 각각 어떤 성격이었는지 정확하게 표현한 사료가 없었다.

 

앞서 지난해 말 석조미술사 연구자 김민규씨가 광화문 현판 색상이 본래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였으며, 건춘문은 ‘흰 바탕에 녹색 글자’, 영추문은 ‘흰 바탕에 검정 글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도 <경복궁영건일기>를 분석한 결과였다.

 

조선 전기의 경복궁 배치도. 서울시 제공

경복궁 중건이 당시 국가적 공사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주변의 저택을 매입하거나, 원납(오늘날의 기부채납)받았다는 내용이 이 책엔 세세히 기록돼 있다. 또 삼청동, 동소문 밖, 옥천암, 영풍정 등에서 공사에 필요한 돌을 가져왔는데, 옥천암의 돌을 45마리의 소가 운반하는 과정에서 혜경교(혜정교) 다리가 무너져 인부가 다쳤다는 대목도 있다.

 

당시 공사 현장 기능공들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쓴 부분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부계(비계=공사용 계단)에 대나무 난간을 설치하고, 이를 손으로 잡기 쉽게 포장해놓았다는 내용이 있다. 또 고종이 직접 광화문 공사 현장에 나와 건축 자재를 옮기기 위해 설치한 부계에 올라 현장을 둘러봤다는 기록도 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경복궁영건일기> 번역을 통해 알려진 새로운 사실들을 오는 17일 오후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 책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경복궁 중건의 역사, 첫 장을 열다’)를 마련해 공개할 예정이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