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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 출발한 '63빌딩보다 큰 배'…韓·中·日 관문을 돌다

일산백송 2019. 5. 9. 06:44

조선닷컴
인천서 출발한 '63빌딩보다 큰 배'…韓·中·日 관문을 돌다
유병훈 기자 입력 2019.05.08 14:42 | 수정 2019.05.08 15:09

4월 26일 개장한 인천 크루즈터미널 첫 출항 크루즈 탑승기
63빌딩보다 큰 초대형 선박...최대 4280명까지 승선 가능
한국 트롯가수 공연에서 브라질 삼바 리듬의 댄스파티까지


선내 메인 홀(좌측)과 메인 홀의 장식들/인터넷 블로그


몸을 쏘는 듯한 햇볕에 나른했다. 두 눈을 감으니 바닷내음이 두 뺨을 스쳤다. 

눈을 뜨자 수평선 위로 황혼녘의 자주빛 태양이 떠오르는지 지는지 분간이 안 됐다. 

떠다니는 특급호텔, 크루즈선 갑판 위에서 맞은 여행이 실감났다.

지난달 26일 오후 4시 개장한 인천 크루즈터미널에서 첫 출항한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Costa Serena)'호에 올랐다. 여행 가이드는 "이 배는 '신계(神界·신들의 세계)'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른 승객을 따라 뱃머리 쪽 메인 홀에 도착하니 하늘색 구름 위에 올라탄 화려한 옷차림의 9명의 고대신화 조각상이 천장에 장식돼 있었다. 2007년 이탈리아에서 취항해 지중해를 누비던 이 배는 2015년부터 동아시아 바다를 가르고 있다.

코스타 세레나호는 선체 무게만 11만4500t에 이르는 초대형 선박이다. 

길이(290m)는 63빌딩을 뉘여놓은 것보다 16m 길었고, 높이는 14층 빌딩만 했다. 

이 배에는 총 3780명의 승객과 1500명의 승조원이 탑승 가능하다. 

배가 크면 엔진도 클텐데, 대형 고급 세단처럼 한밤중에도 객실에선 뱃고동이나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9공구 인천항 크루즈 터미널이 개장한 후 가장 먼저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출항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천에서 출발한 크루즈는 중국 상하이와 일본 후쿠오카를 들렀다가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28일 오전 9시 상하이 우송코 국제 크루즈 터미널에 내린 후 오후 6시까지 시내 단체관광을 하고, 

다시 배에 올라 30일 일본 후쿠오카 도착했다. 후쿠오카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유 관광을 했다. 5박6일 여정 중 상하이와 후쿠오카에서 관광을 한 17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은 배 위에서 보냈다.

고기잡이 선원들은 고기와 싸우느라 배 위에서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여객선 아닌가. 

크루즈에 처음 올랐을 땐 육지와 떨어져 고립된 배에서 엿새를 어떻게 보낼지 아득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바다 위 특급 리조트를 체험하는데 5박 6일이 짧았다.

최대 300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극장과 카지노, 4D극장, 바(bar), 수영장, 헬스장, 스파, 자쿠지(온수풀)가 갖춰져 있었다. 또 환영·송별쇼를 비롯해 댄스·요가 강습, 건강 강좌 등 매일 21~48가지의 선내 이벤트도 준비돼 있었다.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을 고르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났다. 저녁에는 콘서트와 마술쇼, 레이저쇼 등이 열렸다. 한국에서 트롯 경연프로그램 '미스트롯'이 인기라더니, 승선 마지막날 밤에는 유명 트롯 가수가 귀를 즐겁게 해줬다.


다양한 선내 프로그램. 요가 강습(위)과 댄스 파티(아래) 등이 쉴새 없이 이어진다/유병훈 기자


공연이 끝난 후에는 댄스 파티가 열렸다. '몸치'에게 댄스라니. 멋적어 하며 구경이나 하려던 참에 브라질 출신의 댄싱 마에스트로가 무대로 이끌었다. 그의 리드를 따라 몸을 흔드니, 그게 댄스였다.

입도 호강했다. 매일 저녁 정찬(正餐)에는 김치를 포함해 스무가지가 넘는 메뉴가 나왔다. 

아침 점심으로 제공되는 뷔페도 신선했다. 조리 인력만 200여명. 지갑에 여유가 있다면 5성 호텔 레스토랑 경력의 쉐프가 운영하는 선내 일식당과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가 볼 수 있다.

◇상하이에서 만난 동양의 베네치아 '주가각'

배에 오른지 이틀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있는 도시 중국 상하이에 내렸다. 

상하이는 완연한 늦봄이었다. 6월만 되도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시작된다는데, 아직은 상춘(賞春)하기에 괜찮았다.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주가각(朱家角)에서 나룻배를 타고 장강(長江)의 봄바람을 쐤다. 주가각은 중국 강남의 6대 수향(水鄕) 중 한 곳이다. 외국 사신들이 머물렀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사신 대신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됐다. 운하 옆으로 이어지는 전통식 상점들과 돌다리들은 고대 중국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감상을 줬다.


중국 상하이의 주가각. 나룻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유병훈 기자


상하이 시내로 들어가 예술인이 모여살던 태강로를 걸었다. 골목 풍경은 근대 개화기 시절같았다. 

태강로 골목 사이를 걷다보면 골목에 퍼지는 군것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네발 달린 것 중에 책걸상, 날개 달린 것 중에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 아닌가.


◇아시아의 관문, 녹음(綠陰)으로 가득 찬 후쿠오카


상하이에서 다시 배에 오른지 12시간만에 일본 규슈(九州)의 중심지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후쿠오카는 과거 조선통신사와 일본 견수사(遣隋使) 등이 오고 간 관문이었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 도시이기도 하다. 

두 나라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는데, 주요 여행지나 번화가 곳곳에 한국어 설명문이 함께 있다.


후쿠오카 기온 사찰거리를 들렀다. 이곳은 후쿠오카의 중심부인 하카타역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교외로 나온 듯 조용했다. 누군가 기온 사찰거리에 가면 일본이 자랑하는 양갱·우동·소바의 발상지 기념비도 있으니 느긋이 찾아보라 했는데, 정말 찾아볼 만 했다. 



오호리 공원 내 일본정원(위)과 아크로스 후쿠오카/유병훈 기자


이어 찾은 후쿠오카 성터에선 오호리 공원(大濠公園)과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호수를 둘러싼 오호리 공원을 거닐다 공원 안에 있는 일본정원을 둘러봤다. 

입장료는 240엔. 넓진 않지만, 오밀조밀 조화를 이룬 일본 조경(造景)을 감상할 수 있다.


친환경 건축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아크로스 후쿠오카'도 후쿠오카에서 들러봐야 할 명소다. 

건물 한 면을 마치 산비탈 정원처럼 꾸며 130여종의 식물을 심었다는 아크로스 후쿠오카는 그 자체로 도심 속 생태계를 이룬다. 아크로스 후쿠오카 인근에는 후쿠오카의 3대 별미로 꼽히는 하카타 라멘과 멘타이코(명란젓), 모츠나베(곱창전골) 맛집도 있어 여행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에 좋다. 


크루즈 여행 주관사인 롯데관광개발은 각 기항지 별로 4가지 단체관광 상품과 개별 자유관광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자유관광을 선택하면 발길 닿는대로 가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교통편 등은 여행객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단체관광 상품을 선택하면 한두곳의 명승지만을 둘러볼 수 있지만 이동이 편했다. 선택은 여행객의 몫이다.


부산항에 도착하기 전날 선상 파티에서 광주광역시에서 온 이모(72)씨를 만났다. 

이 씨는 크루즈여행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행사 단체관광을 가면 유명관광지는 꼭 들러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크루즈 여행은 내가 원하는 만큼 맘껏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필자에겐 무료 칵테일과 댄스 수업이 특히 좋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8/20190508015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