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성공요인은 150만원 월급으로 뒷바라지 해준 아내입니다
제2의 전성기 맞은 36세의 추신수 그가 꼽은 성공 비결은?
2018.09.24. |
추신수의 연속 출루 기록을 축하하는 같은 팀의 루그네드 오도어. 추신수는 연속 출루 기록에 대해 선수단 모두의 힘과 희생과 도움이 있었기에 달성됐다고 했다.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침체에 빠진 부산고를 ‘르네상스’로 이끈 주역 추신수. 그는 2001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얼굴에 여드름 가득한, 새까맣고 마른 체형의 부산 청년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었다.
미국 생활의 시작은 고통스러웠다.
“제가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루키리그에 합류했을 때는 요즘 말로 ‘멘붕’ 상태였습니다. 한국 고교야구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는데, 트리플A도 아닌 루키리그였는데도 저보다 잘하는 애들이 ‘수두룩 빽빽’이었죠. ‘아,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 아래 마이너리그가 있다. 마이너리그는 실력에 따라 트리플A, 더블A, 싱글A, 루키 리그로 구분된다.
여드름투성이 부산 청년
부산고 시절 추신수. 그는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침체에 빠진 부산고를 ‘르네상스’로 이끈 주역이다.
야구 잘하는 괴물들 사이에서 포기 대신 훈련을 택한 추신수는 2002년 시애틀 유망주 랭킹 7위, 2003년 빅리그 전체 유망주 랭킹 61위, 2005년 51위를 기록했다. 구단에서도 추신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더블A와 트리플A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추신수는 2005년 4월 22일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빅리그를 통보받는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살 아래인 아내 하원미 씨는 한 시간을 넘게 울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10경기, 18타수, 1안타에 1타점, 3볼넷, 타율 5푼6리. 성적은 처참했다.
경쟁자가 많았던 시절이다. 애덤 존스, 제러미 리드 등과 유망주 경쟁을 펼친 추신수였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대 난적은 같은 팀의 ‘일본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였다. 이치로라는 걸출한 우익수가 버티는 한 우익수 추신수가 자리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시애틀 시절 추신수는 빅리그 출전 기회가 생겨도 중견수로 나서곤 했다. 낯선 포지션에서 몇 차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시애틀은 이치로를 중견수로 옮기고 추신수를 우익수로 키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치로가 포지션 변경을 거부했다. 결국 추신수는 2006시즌 도중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됐다. 추신수에게 클리블랜드는 ‘희망의 땅’이었다. 우선 로커룸 분위기부터 달랐다. 누구 하나 말 붙여주는 이 없던 시애틀과는 달리, 클리블랜드 로커룸은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도 이런 분위기에서 터졌다. 2006년 7월 29일, 공교롭게도 친정팀 시애틀과 맞서 6회 말 볼 카운트 0-3에서 홈런을 뽑았다. 볼 카운트에 상관없이 스윙을 해도 좋다는 에릭 웨지 감독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신수는 2009, 2010시즌 2년 연속 20-20클럽(홈런-도루 20개 이상), 타율 3할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단숨에 클리블랜드 간판타자가 됐다. 자연스럽게 파워와 정확성까지 겸비한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타격의 정확성, 파워, 수비, 송구, 주루 능력)라는 평가가 따랐다. 2011시즌에는 85경기에만 출전해 타율 2할5푼9리, 8홈런, 36타점에 그쳤다.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었다.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아 왼 엄지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6주 만에 메이저리그에 복귀했지만 왼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FA 대박
2012시즌, 15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3, 16홈런, 67타점, 21도루, 88득점을 기록하며 부활한 추신수는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 추신수의 능력을 높이 산 신시내티는 그에게 1년간 737만 5000달러(약 81억 원)를 안겨줬다. 2013시즌 신시내티에서 추신수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내셔널리그 역사상 최초로 1번 타자 ‘20(21홈런)-20(20도루)-100(112볼넷)-100(107득점)’을 수립한 것이다. ‘20-20-100-100’은 아메리칸리그 톱타자로 범위를 확대해도 리키 헨더슨(1993년)과 그래디 사이즈모어(2007년)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2013시즌 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추신수는 대박을 터트렸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추신수에게 7년간 총 1억 3000만 달러(약 1467억 원)란 대박 계약을 안겼다. 이런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출루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었던 2013년 내셔널리그 출루율 2위(0.423)에 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롤러코스터 성적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추신수의 성적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첫해였던 2014시즌엔 팔꿈치와 발목 수술로 중후반에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하지만 2015시즌에는 반전의 묘미를 보여줬다. 전반기(타율 0.221) 최악의 부진을 후반기에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이다. 시즌 성적 타율 2할7푼6리, 22홈런, 82타점, 출루율 3할7푼5리, 장타율 4할6푼3리로 마쳤고, 팀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2016시즌에는 종아리, 햄스트링, 허리, 팔뚝 등을 다쳐 4번이나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다. 출전 경기 수도 45경기에 그쳤다.
2017시즌에는 149경기를 대부분 지명타자로 뛰었다. 타율 2할6푼1리, 22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22홈런은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이었다. 지역 언론은 ‘텍사스의 시즌은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추신수는 잘 쳤다’고 평가했다.
수정한 ‘레그킥’ 뛰어난 선구안에 날개 달아줘
추신수는 저스틴 마쇼어 텍사스 레인저스 보조 타격 코치의 조언을 받아 레그킥을 수정했다. 오른 다리 높이를 다소 낮추면서 상대 투수에 따라 타이밍을 맞추는 식이다. 수정한 레그킥은 추신수의 뛰어난 선구안(選球眼)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진은 추신수 선수의 타격 자세.
2018시즌 초반 추신수는 부진했다. 시즌을 앞두고 연마한 ‘레그킥(앞다리를 들었다 놓는 것)’이 말썽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이어졌다. 바뀐 하체 자세에 신경 쓰다가 서둘러 타격하다 보니 변화구에 방망이가 헛도는 경우가 잦았다. 추신수는 저스틴 마쇼어 레인저스 보조 타격 코치의 조언을 받아 레그킥을 수정했다. 오른 다리 높이를 다소 낮추면서 상대 투수에 따라 타이밍을 맞추는 식이다. 수정한 레그킥은 추신수의 뛰어난 선구안(選球眼)에 날개를 달아줬다. 5월 14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시작해 7월 21일까지 69일간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최근 11년간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출루 기록이다. 추신수는 이 기간 52경기에서 타율 0.337, 13홈런(29타점)을 썼다. 출루율은 무려 0.468이었다. 추신수의 출루 행진은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팬들은 ‘나는 매일 출근하지만, 추신수는 매일 출루한다’, ‘추신수가 오늘도 1루를 밟았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며 그를 응원했다.
53경기 연속 출루에 실패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추신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엔 많은 팬이 슬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 다시 베이스를 밟을 겁니다.”
한국인 타자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 선정
추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 박정태의 외조카이기도 하다. 2010년 11월 3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롯데 자이언츠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시합 전 당시 대표팀 추신수(왼쪽)와 박정태 롯데 2군 감독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속 출루 기록으로 인해 추신수는 데뷔 첫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인 타자로는 최초였다. 박찬호(2001년)와 김병현(2002년)이 올스타에 뽑혔지만 모두 투수였다. 올스타 경기에서도 추신수는 안타를 기록하며 ‘출루 본능’을 자랑했다. 지난 7월 18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2018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8회 초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추신수는 ‘좌타자 킬러’로 불리는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 조시 헤이더의 158km 직구를 받아 쳐 좌전 안타를 기록했다. 추신수는 안타에 이어 득점도 올렸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조지 스프링어의 좌전 안타로 2루에 진루한 뒤 시애틀 매리너스의 진 세구라의 3점포가 터져 홈을 밟았다.
추신수가 꼽는 성공 요인
추신수는 자신이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은 영어다. 운동선수가 영어를 잘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온종일 훈련만 해도 세계 최고 선수들을 따라가기 벅찼지만, 추신수는 언어 정복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영어는 알파벳 소문자도 모르는 수준이었습니다. 구단에서 통역을 붙여줬죠. 통역이 장난기가 많은 친구였는데, 저보고 동료들에게 ‘하이 니거(nigger : 흑인을 모욕적으로 낮춰 부르는 말)’라고 인사를 하라더군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빨리 동료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큰 소리로 ‘하이 니거’라고 외쳤죠. 선수들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더군요. 순간 ‘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죠. 통역이 ‘농담한 건데 진짜 말할 줄은 몰랐어! 그 말은 실제로 쓰면 큰일 나니까 앞으로는 절대 쓰지 마’라고 말한 뒤 동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더군요. 동료들은 그제야 웃으며 넘어갔지만 소심한 성격의 전 더 위축됐죠. 말이 안 통하니 정말 외롭더군요. 누구에게도 제 적막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홀로 베갯잇을 적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통역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 되는 영어지만 먼저 다가가 최선을 다해 친해지려는 노력을 보였죠.”
추신수는 영어에 능통한 다른 한국인 스포츠 스타와는 달리 개인 영어 교습을 받지 않았다. 추신수는 자서전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꿈꾸다》(2011년 3월 출간)에서 이같이 밝혔다.
“제 영어 원칙은 한 가지입니다. 무조건 어울리기죠. 친구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였다가 ‘아, 이럴 땐 이런 표현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귀가 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말도 조금씩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다음부터 내 단어가 되고 내 문장이 됐습니다. 미국인 선수들도 이렇게 노력하는 저를 위해 다양한 영어 표현을 가르쳐 주기도 했죠. 흔히들 운동선수라면 운동만 잘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팀 문화 등에 자연스레 섞이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팀워크란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알파벳 소문자도 몰랐던 그는 올스타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자연스러운 영어를 뽐냈다. 추신수의 영어 실력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밑바닥에 있을 때부터 믿어준 아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한 추신수는 가족과 함께 올스타 레드카펫 쇼에 참석해 꿈 같은 시간을 만끽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내 하원미 씨, 추신수 선수, 장남 무빈 군, 딸 소희 양, 차남 건우 군.
둘째는 아내 하원미 씨다.
“아내는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자랐습니다. 맏딸이다 보니 부모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큰 고생 없이 지냈을 겁니다. 그런데도 못난 나를 만나 부모님 밑에서 누리던 것의 반도 못 누리며 고생을 하며 살았지요. 마이너리그 때는 월급이 150만 원도 안 됐는데, 그때 아내가 정말 심하게 고생하며 내 뒷바라지를 해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청순함과 발랄함은 어디 가고 출산 후 억척 아줌마로 변한 모습에, 때론 내 무능을 탓하며 오히려 그런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죠. 그래도 아내는 내가 야구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짜증까지 다 받아줬습니다. 이젠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가 성공해서 만난 아내가 아닌, 마이너리그의 밑바닥에 있을 때부터 날 믿고 미국까지 건너온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부부보다 우리 부부 사이가 특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후배들 잘 챙기기로 유명한 추신수. 그는 스프링캠프 때마다 만나는 마이너리그 후배들한테는 자신의 용품을 아낌없이 내놓고 식사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그런 그가 후배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노력한 시간은 결과로 빛을 발하는 법이다.”
글 jobsN 최우석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조선일보 DB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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