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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들의 소리없는 전쟁'..소비자가 선택한 자동차 색깔 1위는?

일산백송 2018. 1. 21. 00:03

중앙일보

[별별 마켓 랭킹]'무채색들의 소리없는 전쟁'..소비자가 선택한 자동차 색깔 1위는?

김도년 입력 2018.01.20 00:01 수정 2018.01.20 10:13

 

2010년~2017년 현대차 판매량 85%가 무채색

19세기말 자동차 시초부터 자동차는 무채색.."청교도주의 반영"

스마트폰 확산으로 흰색 1위 올라..볼륨감 돋보이는 회색 2위

핑크·골드 등은 금융위기 이후 반짝 유행.."위기엔 화려한 색 선호"

 

현대 싼타페 흰색 [사진 현대차]

 

'빨간 자동차에 몸 싣고서 떠나는 여행 너와 둘이서….' 가수 이효리와 김건모가 함께 부른 노래 '빨간 자동차'입니다. 30대 여성들의 노래방 애창곡인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에도 '이렇게 초록 바닷속을 달리는 빨간 자동차를 타고…'라는 노랫말이 나오지요. 대중가요 가사에는 유독 빨간 자동차가 많이 등장합니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탈출하고픈 욕망을 한번쯤 타보고 싶은 '빨간 자동차'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빨간 자동차는 흔하진 않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 중 빨간색 자동차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얼마든지 개성 표현이 자유로워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옷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자동차 색상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앙일보가 2010년부터 8년간 현대자동차가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의 색상별 비중을 조사한 결과, 총 513만1457대 중 85.7%가 흰색과 회색·검은색 등 무채색 계통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아파트 주차장에만 내려가 봐도 쉽게 알 수 있지요.

 

자동차 색상은 19세기 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유럽·북미 할 것 없이 무채색 비중이 가장 컸습니다. 성기혁 경복대 미대 교수는 "자본주의 태동기의 청교도적 신념이 부의 상징인 자동차의 색깔에 적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엄격한 도덕과 검소한 삶을 강조한 청교도 정신이 자동차 디자인에 녹아들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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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무채색 가운데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회색(은색 포함) 차량이 2013년 이후부터는 흰색으로 역전됩니다. 흰색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5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입니다. 지난해 판매된 현대차 100대 중 38대(38.1%)가 흰색이었습니다.

도시화의 상징이던 '회색'이 흰색으로 역전된 이유는 뭘까요? 자동차 업계에선 2010년 이후 급속도로 보편화한 스마트폰의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중에 흰색 계통의 스마트폰이 퍼지다 보니 자동차 색상도 스마트폰과 같은 색상으로 '색깔 맞춤'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최신 자동차들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전화 통화, 음악 감상 등의 기능을 쓸 수 있는데요, 차량과 통신기기가 무선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색상까지 비슷하게 맞춰지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하게 됐습니다.

 

권기일 현대자동차 컬러팀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이 확산하면서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강조하는 미적 흐름)이 강조되고 있고, 미세먼지 심화로 친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차량에서도 흰색 계열 색상들이 인기를 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흰색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회색 계열이 완전히 밀려나 건 아닙니다. 지난해 현대차가 판매한 회색 계열 차량 비중은 32.7%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회색은 흰색이나 검은색보다 햇빛을 받았을 때의 명암이 뚜렷합니다. 같은 회색이라도 흰색 바탕 위에선 어둡게 보이고 검은색 바탕 위에선 밝게 보이는 이른바 '명도 대비'가 일어나는 것처럼 회색은 주위 빛에 따라 밝기가 달라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직선보다 유선형 디자인이 강조되는 최신 차량에 회색을 입히게 되면 반사되는 빛에 따라 울퉁불퉁한 근육질 볼륨감을 살리는 데 탁월한 것이지요.

 

그랜저 IG 회색

3위는 검은색으로 7년 연속 17~18%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100대 중 17대(17.3%)가량이 팔렸지요. 보수적인 색상을 선호하는 '콘크리트 지지층'들이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는 셈입니다.

 

2017년형 투싼 검은색

특이한 점은 핑크·카키색·금색·쑥색 등 특이한 색상의 차들이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15.3%나 차지해 3위를 기록했지만, 갈수록 비중이 줄어 지난해에는 0.4%로 떨어졌습니다. 권 연구원은 "사회적 위기가 오면 침울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패션 트랜드도 화려한 색상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위기 당시 알록달록한 차량이 유행한 것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