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0대 소녀의 임신..'사랑' 아니면 '일탈'?
뉴시스 | 오동현 | 입력 2015.12.04. 06:01 | 수정 2015.12.04. 10:03
10대 미혼모 10명 중 7명 "사랑했으나 임신까지는…"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1. 둘이 열심히 벌기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릴 때 아기 키우는 사람이 많이 생겼잖아요. (유정·가명·19)
#2. 제가 임신하기 전까지는 10대에 임신하는 것이 좀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처음 임신한 데다 좋아하는 사람의 애를 가졌으니까 당연히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미·가명·18)
#3. 애는 키울 수 있어도 결혼은 무리에요.
남자 친구가 나이도 젊은데, 또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 거 아니에요.
요즘 애들은 일주일 사귀다 헤어지고 그래요.
나중에 이혼해서 '이 사람이 새 아빠다' 그러면 아이가 싫어할 거 같아요. (소영·가명·19)
【서울=뉴시스】 우리의 성문화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임신·출산을 경험하는 10대 여성이 늘고 있다. 사진은 위기청소녀(女)를 위한 거리축제 ‘Sum-day : 썸데이’. (사진=뉴시스DB)
우리의 성문화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위 사례처럼 임신·출산을 경험하는 10대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15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대체로 미혼 동거와 자녀 출산에 개방적인 가치관을 보였다.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56.8%)이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자는 2012년보다 0.5%p 늘어난 26.4%로 나타났다.
2014년 여성가족부 추산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모는 3만8000여 명이다.
이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⅓ 이상으로 추정돼 잠재적 미혼모는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보건협회 서정애 인구사업과장은 '10대의 로맨스, 임신에 대한 그녀들의 선택'이라는 연구 논문을 통해 "가족 내 친밀감·결속감이 부족한 10대 여성일수록 로맨스를 삶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높다"고 짚었다.
논문 심층인터뷰에 응한 민숙(가명·16)양은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마음이 좋아요. 남자라서 더 기댈 수 있잖아요.
'나 오늘 슬프다'그러면 '누가 울렸느냐'고 말해주는 것이 든든해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남자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보다 더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는 돌봄 기능을 상실한 가족 대체뿐 아니라 가족 밖 독립적인 생활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성과 사랑의 결합은 종종 '동거'를 동반한다.
실제 10대 미혼모 중 대다수는 남자 친구(아이 아버지)와 동거 경험이 있었으며,
이 기간에 임신한 경우가 많았다.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전임교수의 '십대 청소년 미혼모의 출산 및 양육경험'이라는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10대 미혼모(174명)들의 평균 성관계 경험 나이는 15.9세로 나타났다.
이들 스스로 밝힌 성관계 사유 중 가장 높은 비율(37.6%)은 '서로 사랑해서'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분과 나이가 주는 지위 불안정 등으로 임신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미혼모 중 67.1%는 '임신은 원하지 않았던 결과'라고 응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도 21.4%로 많았다.
대부분 "충격에 빠져서 매일 울다시피 하고,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했어요",
"놀라서 그냥 빨리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10대 미혼모는 "몸 안에 한 생명이 있다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남자친구 아기를 갖고 있다니 기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같은 생명에 관한 경이로움은 출산을 선택하고, 양육을 결정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는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10대 미혼모들의 임신지속 사유는 '생명에 대한 애착(13.8%)' '낙태는 죄를 짓는 일이라서(10.8%)'
'혼자서라도 아기를 키워야 할 것 같은 책임감(10.8%)' 등이다.
그러나 정작 아이 아버지들은 '양육을 찬성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30.3%)'
또는 '양육은 찬성하나 도와줄 수 없다(18.2%)' 등 유보적이거나 회피적인 반응이 절반 가까이나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향후 양육미혼모들의 부담과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불어 10대 미혼모의 가족들은 '임신중절(37.0%)'이나 '사회복지기관 상담(34.6%)' 등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부모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녀를 입양 보낸 10대 미혼모들은 '후회스럽다' '절망스럽다' '화난다' 등의
부정적인 감정상태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한 연구 참여자는 "(아기가) 계속 생각나고 하루라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키울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아기를 보낸 것이 후회된다"고 정서적 고통을 토로했다.
게다가 10대 미혼모를 바라보는 따가운 사회적 시선도 상처로 다가왔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미성년자의 임신·출산은 10대의 대표적인 '일탈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리고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좀 안 좋게 봐요.
(출산 후) 퇴원하고 오는데 애가 애를 낳았다고 수군거리는 것이 듣기 싫었어요."
이처럼 10대 미혼모 중 약 81%가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관해 '매우 심각하다'
또는 '심각한 편이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자녀양육을 결정한 10대 미혼모들은 '힘들지만 아이와 함께라서 행복하다(62.5%)'는 반응이 많았다.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37.5%)'이라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은 미혼 임신부가 출산한 뒤 6개월까지 살 수 있는 '기본생활형' 21곳과
미혼모가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공동생활형' 39곳 등 전국 60곳에 불과하다.
논문 저자인 김혜영 과장은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혼란과 어려움에 대해 경계하고 구분 지어
배제하기보다는 돌봄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남보다 이른 성 경험과 자녀 출산만을 이유로 이들의 교육권을 박탈하거나
노동시장의 진입을 방해하는 구태의연한 관행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odong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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