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자주 선보였던 어퍼컷 세리머니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 유세장 지지자들은 왜 열광할까. 문재인 정부를 향한 것일 수도, 국정에서 한 방을 보여주겠다는 의지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면 선 넘은 도발이겠지만, 자신감은 대단해 보였다. 헤비급 권투선수를 연상시키는 윤 대통령의 풍채와 어퍼컷은 썩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임기 두 달이 지난 현재 국정 상황은 윤 대통령이 보였던 자신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능력주의 인사, 도어스테핑이라는 어퍼컷은 허공을 갈랐고, 대통령은 인사 실패, 각종 설화, 배우자 리스크 등의 잽을 연타로 맞았다. 30%대로 내려앉은 지지율은 윤석열 정부 현재를 말해준다.
이용욱 논설위원
일각에선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 20%대로 폭락한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지만 사정은 더 나쁘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휘말렸지만, 현 정부는 가랑비에 옷 젖듯 지지율을 까먹었다. 훅 한 방에 휘청이는 것보다 연타로 맞은 잽에 골병드는 법이다. 계속되는 잔펀치에 속병이라도 든 것일까. 윤석열 정부는 우왕좌왕한다. 작은 잘못은 너그럽게 봐준다는 허니문 기간임에도, 여권은 늘 소란스럽다. 임기 말에나 있을 법한 현상들도 보인다. 과장을 보태자면 두 달 지났는데, 두 달 남은 것 같다.
특히 비선보좌 논란은 전형적 임기 말 현상이다. 과거 비선 문제는 임기 후반 국정 장악력이 약해진 권력자가 사적 인연의 사람들과 국정·인사를 논하게 되고, 비선들이 월권과 부정을 저지르면서 불거지곤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첫 순방인 나토 정상회의에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인사비서관 부인이 동행하고, 전용기로 귀국까지 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통령실에선 믿을 수 있는 사람 도움을 받는 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알려지면 곤란한 무슨 비밀이 있어, 사적 인연을 공무에 끌어들인 것인가 되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을 단죄했던 윤 대통령 주변에서 비선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의 말이다. “최순실도 1호기(전용기)는 못 탔다.”
윤 대통령의 ‘버럭’도 임기 말 대통령들과 비슷하다. “열심히 일했는데, 너무 몰라준다.” 과거 대통령들도 그렇게 억하심정을 풀었다. 윤 대통령은 부실인사 비판에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며 격앙했는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던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가 떠올랐다. 윤 대통령은 만취운전 등이 확인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언론, 야당의 공격 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고 했다. 과거 대통령들도 갈수록 남 탓을 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에 “의미 없다”고 했는데, 4년차 대통령들이 한다는 ‘역사와의 대화’를 벌써 시작한 것인가.
설상가상, 국민의힘은 아수라장이다.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당원권 정지, 이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투쟁, 대표를 차지하려는 윤핵관들끼리의 신경전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그로기 상태가 됐다. 집권여당다운 국정 책임감은 온데간데없다. 여당 못지않게 한심한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도 역전당했다. 이런 식이면 여당이 대통령보다 먼저 흰수건을 던질 수도 있다.
모든 혼란은 윤 대통령의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됐다. 윤 대통령은 국정지식과 정치경험이 부족한 약체 후보였음에도 정권심판론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했고, 이런 오해는 윤 대통령이 국정을 만만하게 여기도록 했을 것이다. ‘어려운 검찰총장도 했는데, 국가 운영쯤 못하겠느냐’는 자만심까지 겹친 것 같다. 검찰식구들을 요직에 앉힌 것도 국정을 검찰 운영하듯 하면 된다고 자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정은 검찰조직보다 복잡미묘하다. ‘한잔혀!’식의 골목대장 리더십으로 경제·안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겠는가.
윤 대통령은 한없이 신중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시원시원한 결단의 리더십이라고 주변에서 추켜세울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겐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비칠 수 있다. 검찰 특유의 호승심이 발동해 현재 국정운영 방식을 고집한다면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대통령 혼자만 모르는 레임덕이 시작될 수 있다. 국정의 무게를 절감하지 않는다면, 임기 말 남는 것은 윤 대통령 본인의 늘어난 몸무게밖에 없을지 모른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흘러간 복서의 모습으로 대통령이 기억된다면 국민들에게도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