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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월북 증거는?’ 유족 민원… 靑, 文퇴임일에야 한줄 답변

일산백송 2022. 6. 22. 08:32

[단독] ‘월북 증거는?’ 유족 민원… 靑, 文퇴임일에야 한줄 답변

입력 : 2022-06-21 08:21/수정 : 2022-06-21 14:01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이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민원과 청와대의 답변. 유족 제공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이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민원과 청와대의 답변. 유족 제공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이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민원과 청와대의 답변. 유족 제공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서해 피격 공무원 이대준씨의 유족이 ‘월북 프레임’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 취지로 지난해 1월 제기한 민원을 1년4개월간 검토하다 지난달 9일 “민원처리 예외에 해당한다”는 한 줄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지난달 9일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유족은 “아무런 답변을 못 받다가 대통령의 퇴임일에 이르러 ‘예외’ 답변을 접하니 조롱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해당 민원은 이대준씨의 형 이래진씨가 2020년 10월 28일 청와대에 전달한 ‘상소문’의 답변을 촉구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문 전 대통령을 향해 해양경찰과 국방부가 언급한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은 증거가 없다고 호소하면서, 명예 회복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이 민원 답변이 있던 날 이대준씨 관련 자료는 법원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됐다.

文 퇴임일에 답변된 한줄 “민원처리 예외”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래진씨는 지난해 1월 7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상소문에 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민원을 제기했다. 이래진씨는 본인을 소개한 뒤 “대통령께 드린 상소문에 관한 답변이 없어 본 내용을 올린다”고 민원 내용을 서술했다. 이 민원은 지난해 1월 13일 정상적으로 신청·접수됐고 청와대로 이관됐다.

이래진씨는 그로부터 약 1년4개월간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최종 민원 처리기관인 대통령비서실은 지난달 9일 오전 10시56분3초에 민원을 접수했다. 대통령비서실은 1분여 뒤인 오전 10시57분57초에 처리결과(답변내용)를 이래진씨에게 공개했다. “본 내용은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상 민원처리 예외에 해당합니다”라는 한 줄이었다.

이래진씨가 답변을 해 달라고 한 상소문은 2020년 10월 28일 그가 청와대 행정관에게 건네 문 전 대통령에게의 전달을 부탁한 것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 김홍희 해경청장, 윤성현 해경 수사정보국장의 해임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해경과 국방부가 부주의하게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 의사를 언급했고 유족의 고통이 크다는 이유였다. 정부가 면밀한 조사 없이 월북을 언급해 자국민인 유족 인권이 유린됐다는 말, 군이 과연 이대준씨 구출에 만전을 기했느냐는 의문도 상소문에 담겼다.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 함께 탔던 이들의 증언도 소개됐다.

“충분한 조사 없이 월북 발표” 의미 있던 항변

그는 해경을 향해서는 “항해일지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월북이라 발표하고 있다” “오로지 한달 동안 동생의 통장 거래내역만 분석한다”고 했다. “월북이라는 증거가 다수 있다고 하면서도 무궁화10호 직원들의 진술은 공개하지 않는다. 무궁화10호 직원들은 ‘도저히 월북할 수 있는 해상상태가 아니었다’고 했다” “동생 회생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니 동생이 채무를 변제할 의지가 매우 강했고, 이미 3년동안 나눠 변제하면 된다는 계획에 대해서 법원과 합의돼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래진씨는 국방부를 향해서는 “동생이 육성으로 ‘월북했다’고 말했다고 국방부에서 말해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까지 했는데 그 후 또 말을 바꿔 동생 육성이 없다고 한다” “사고 한달동안 말을 몇 번이나 바꿨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발표를) 왜 그리 서둘렀느냐”고 했다. 그는 한 탈북 군인이 “북한군이나 보위부는 교란하기 위해 역정보를 흘린다. 감청 내용만 믿고 단순하게 월북으로 몰아가면 북한에 놀아나서 국민을 두 번 죽이는 꼴”이라고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을 소개하며 문 전 대통령이 귀 기울여 줄 것을 부탁했다.

답변 없던 호소들은 시간이 흘러 의미 있는 항변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해경과 국방부가 최근 2020년 9월 내놓았던 발표를 뒤집고 유족에게 사과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지난 16일 “월북 의도를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방부도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반대로 이대준씨의 월북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동료들의 관련 진술이 애써 배제됐던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이대준씨의 아내는 “어이 없는 상황에 눈물조차 안 날 정도”라고 했다.


“어차피 대통령 지정기록물 대상, 비공개”라던 청와대

대통령과 청와대의 답변을 얻지 못하던 유족은 자료를 공개해 달라는 소송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청와대·국방부·해경을 상대로 이대준씨 사망과 관련한 정보들을 공개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피고 측은 기일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를 제시하며 공개 불가론을 폈다. 처음에는 해경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였다. 이후에는 해당 정보가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는 이유, 다음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의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이유, 다음엔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 발생 가능성 이유가 제시됐다. 마지막 주장은 “어차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재판은 번번이 몇 분 만에 끝났다. 멀리서 달려온 유족은 허탈한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가 개인정보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를 유족 측에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래진씨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게 “행정법원 판결에 즈음해 공식적 입장을 알고 싶다” “어떤 식의 열람이 가능한지 알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연락해 물었다. 그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래진씨는 문 전 대통령이 “패소 판결에 대한 정부 항소를 자제하라”고 언급한 내용을 전하는 2017년 언론 기사도 박 전 수석에게 보냈다.

정부는 항소로 답했다. 국가안보실과 해경은 지난해 12월 2일 서울행정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국가안보실과 해경은 항소심에서도 피격 공무원 사건 관련 정보가 ‘대통령 지정기록물 대상’이라는 의견을 이어 갔다. 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달 9일 서울고법에서는 이 사건의 변론기일이 열렸다. 피고 측은 이날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말하고 법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갔다. 이래진씨는 “많지도 않았다. A4용지 한 장이었다. 그걸 안 보여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월북’ 언급 의도 있었나… 수사로 밝혀질 듯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했던 정보가 대통령기록물로 보호되던 이날은 이래진씨가 대통령비서실로부터 비로소 한 줄의 민원 답변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유족은 1년4개월간 묵묵부답이던 청와대가 비로소 ‘민원처리 예외’를 말하고, 동시에 관련 기록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유족은 진정 중요한 것은 색깔론이나 정쟁이 아닌 국가의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라고 했다. 유족은 국가가 이대준씨를 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 같은 잘못을 덮기 위해 조직적으로 이대준씨의 월북 의사가 거론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10월 8일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한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이대준씨의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들었다” “이제 기대하는 것이 없다”며 이 편지를 반납했다. 이대준씨의 아내는 “대통령의 편지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배신감이 컸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이번 사안이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지만 유족은 22일 김종호 전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유족은 애초 검찰과 경찰 중 어떤 수사 주체에 진상규명을 요청할 것인지 숙고했었다. 핵심은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될 것이라고 보고, 대통령기록물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서울중앙지검에의 고발을 선택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공무집행방해 이외에도 사자명예훼손,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죄명이 거론된다.

이경원 조민아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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