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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도 얌전한데…투표소에 반려견 데려가도 되나요?

일산백송 2022. 6. 1. 17:31

덩치 커도 얌전한데…투표소에 반려견 데려가도 되나요?

중앙일보

입력 2022.06.01 17:09

업데이트 2022.06.01 17:16

서울 강남구 주민 정모(56)씨는 지난 3월 대통령선거 날 투표소를 들어가다 발걸음을 멈췄다. 주민센터 4층 투표소 입구에 몸길이 30㎝ 정도의 개가 보호자 없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개를 무서워하던 정씨는 현장에 있던 투표관리관에게 내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투표사무원은 “개가 성격이 얌전해 보여서 입구까지만 들여보냈다. 보호자가 곧 투표를 마치고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정씨는 “투표 때마다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을 마주치는데 정확한 출입 기준이 없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을 넘어서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투표소를 찾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동물을 보면 공포감을 느끼는 시민도 적지 않아 반려동물의 투표소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자체 투표 관리매뉴얼을 통해 반려동물 출입을 일정 부분 규제하고 있지만, 규정이 모호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대선 날 울산 울주군 호연초등학교 1학년 1반 교실에 마련된 범서읍 제10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강아지와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뉴스1

투표소 안 반려동물에 엇갈린 반응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투표하러 나서는 길에 산책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은평구에서 소형 반려견을 키우는 강모(27)씨는 “선거날이 휴일이다 보니 강아지들과 외출 나가는 길에 투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표 대기하면서 품에 안고 있으면 귀엽다고 좋아하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투표소에 동물을 데리고 오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송파구 주민 김모(28)씨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투표소에까지 동물을 데리고 와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투표관리관마다 판단 제각각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중앙선관위의 투표 관리매뉴얼에 따르면 투표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반려동물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 장애인 보조견 뿐이다. 그 외 동물은 원칙적으로 동반 출입이 금지된다. 다만 선관위는 ‘투표소 질서유지와 선거인 안전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반려동물 동반 출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보호자가 품에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반려동물은 출입이 제한된다. 투표소 출입 가능 여부는 현장의 투표관리관이 판단한다.

“질서유지? 표현 모호”

현장에선 투표 관리매뉴얼에 적힌 예외 사유 표현이 추상적이라 일관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방선거가 진행된 1일 경기 구리시의 한 투표관리관은 “선관위로부터 반려동물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지는 못했다”며 “개가 옆에서 가만히 있어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질서유지라는 표현은 모호한 것 같다”고 했다.

선관위는 투표소마다 상황이 달라 일괄적인 지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원칙상 기표소가 있는 공간에 안내견 외의 반려동물이 들어가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면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유권자마다 다를 수 있어 현장 상황에 따라 투표관리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