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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이야기

교회 갔다 왔다고 거짓말한 지 몇년째인가

일산백송 2014. 10. 11. 14:56

교회 갔다 왔다고 거짓말한 지 몇년째인가
한겨레 | 입력 2014.10.11 11:00 | 수정 2014.10.11 11:10

[한겨레][토요판] 인터뷰; 가족 부녀의 '종교' 분쟁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처럼 서서히 영혼을 잠식시키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다."(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부엉이> 중)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산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 깊숙이 남아 있는 그런 상처 말이다. 

개인에게도,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화목해 보여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말 못할 고민이 있다. 

내겐 '종교'가 고민거리다. 

그것은 헤다야트 소설 첫 문장처럼 

"영혼을 서서히 잠식시키는 상처, 그리고 그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는 고통"이 되어버렸다.

신자들은 주일이라고 말하는 일요일. 

여지없이 문자가 온다. "교회 다녀왔냐"고 묻는 아버지의 연락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다녀왔다"고 답한다. 

대답을 하자마자 '어느 교회, 어떤 말씀, 몇 부 예배' 식의 질문이 연달아 쏟아진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거짓말을 한 지 몇 년째인가. 

매번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교회 안 갔어. 가서 무의미하게 앉아 있을 바엔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라고 답했다. 

평생을 목회자의 삶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그 시간만큼을 '목사 딸'로 살아온 나. 

우리는 수화기를 마주하고 처음으로 종교에 대해 대화를 시작했다.


'목사 딸'로 살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걸 포기했어요
뭐든지 기독교 중심이었어요
이제 넓은 세상으로 갈래요

아버지
세속에 빠져 성을 탐닉하는 게
네가 말하는 넓은 세상이니?
요즘 이상한 사람들 만나니?
당장 기도원에라도 다녀와라
"안 믿는 사람 만나지 말랬더니…"


아빠, 이제 그런 문자 보내지 마요. 

제가 교회를 다녀 왔다고 하면 그걸로 안심이 되나요? 

몸만 예배당에 있으면 뭐해요? 

설교 시간에 졸고 있을 바엔 차라리 집에서 잠을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의미 없이 오가는 것, 남들에게 보이는 형식, 이젠 거짓말 못하겠어요. 

그리고 저, 교회 안 간 지 몇 년 되었어요.

아버지
교회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지켜야 할 도리야. 

네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주일에는 예배당에 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아빠는 네가 단 한번도 형식적으로 교회를 간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몇 년 동안 교회를 가지 않았다고? 사실이니? 거짓말이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종교가 있냐는 질문을 받아요. 

지금까진 당연히 기독교라고 답했죠. 

러면 반사적으로 "교회 나가요?"라는 말이 나와요. 

무슨 의미 같아요? 그만큼 무늬만 신자인 사람이 많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생각을 달리한 후엔 무신론자라고 답해요.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졌거든요.

아버지
무신론자라니, 자유로워졌다라니…. 

종교가 네 삶을 구속하기라도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다니.


아빠,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 딸'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어렸을 때는 신을 믿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삶은 언제나 신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모든 관계에 있어 신(종교)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무언가 하려 해도 '나는 그러면 안 되니까'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어요. 

이런 생각들이 힘들었어요. 

학교를 다닐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요. 

모든 것들이 기독교 윤리에 어긋나면 안 된다가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생각 때문에 포기하게 된 것이 너무 많아요. 

이제까지 좁은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넓은 세상을 향해 가고 싶어요.

아버지
넌 지금까지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어. 

무엇보다 지금의 네가 있었던 건 네 스스로의 힘이 아니야. 

그건 주님의 축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마, 그걸 모르는 건 아니잖니. 

좀더 넓은 세상? 그건 타락하고 세속적인 쾌락일 뿐이야. 그건 성경에도 나와 있잖니.


아빠, 학창시절 내내 아빠가 제게 한 말이 '교회 안 다니는 애들과 친구 하지 말라'였어요. 

전 우스갯소리로 넘겼죠. 왠 줄 알아요? 그 말대로라면 왕따로 살 수밖에 없거든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았어요. 

오히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그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 기독교인들은 그 반대예요. 

편협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건 물론이고 멀쩡한 사람들을 헐뜯고 비난하죠. 

한국의 기독교는 부패했어요. 비단 한국의 문제는 아니겠죠. 

기독교는, 신을 믿는다는 그 믿음은 생각의 자유를 통제하고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지 못해요.

아버지
아빠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어. 

그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마음 아픈 일이지. 

그럴수록 굳건한 믿음으로 기도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지금까지 부모 말 잘 듣고 거스른 적 없는 네가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지 아빠는 당황스럽구나. 

왜 이렇게 변한 거니?


맞아요. 한번도 부모님 말을 거스른 적 없었어요. 

물론 목사 딸로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건 인정해요. 

'목사 딸'이라는 이미지가 적어도 '나쁜 아이'라는 이미지로 비치진 않잖아요. 

연기하며 사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목사 딸로 산다는 건 <주홍글씨>의 에이(A) 자처럼 제 삶을 지배했어요. 

이제 저도 서른이에요. 이십대 내내 누굴 만나든 아빠가 목사 딸이라는 것이 걸렸어요. 

목사 딸이어서 헤어진 적도 있었다고요. 전 아빠가 목사라는 게 부끄럽다고요.

아버지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아빠가 부끄럽다니. 주님의 종인 목회자에게 부끄럽다니. 

넌 다른 아이들보다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났어. 그건 네 삶의 축복이고. 

네가 이렇게 된 데에 아빠의 기도가 부족한 탓일까…(아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도대체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믿지 않는 사람 만나지 말랬더니 이상한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 거 아니야? 


"종교 강요는 폭력이라고요"

딸 지금까지 부모님 말에 순종하며 살아왔잖아요. 하지만 이젠 제 삶을 살아야죠. 

착실하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아빠가 원하는 대학도 갔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부모님께 손 벌린 적도 없었고요. 

제가 종교를 버렸다고 해서 아빠와의 관계가, 가족 관계가 깨진 건 아니에요. 

앞으로도 그럴 테고요.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그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버지
세속에 빠져 성을 탐닉하고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네가 알게 된 신세계니? 

네가 기도하지 않은 동안 세상에 물들어버린 것 같다. 

(버럭 화를 내면서)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기도원에 며칠 다녀와서 회개해.


성을 탐닉했다고요? 

왜 교회를 가지 않으면, 당연하듯 쾌락에 빠져 산다고 생각하죠? 유희라고요? 

그게 바로 기독교인들이 가진 편협적이고 좁은 시야 아닌가요? 화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회개라고 하셨죠? 회개하면요? 또 연기를 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렇게 하면 뭐가 남나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만 하라니. 

원하신다면 아빠 앞에서는 그렇게 해주죠.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아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할 의무는 없어요. 

부모의 종교를 자식에게 강요하다니, 이건 폭력이에요. 


아버지
인문학 들먹거리면서 궤변을 늘어놓더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지금 당장 정신차리지 못해? 종교는 강요가 아니야. 

더욱이 믿음은 강요가 아닌 자신의 체험이란 건 그 누구보다 네가 알잖아! 

네가 성장하면서 겪었을 내적 갈등은 모든 사람이 겪는 거야. 

모든 기독교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이해를 바라지도 않아요! 아빠는 그러기 힘들 테니까.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런 딸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세요. 

아니, 바라봐주세요. 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더니 

"여지는 없겠지만 생각해볼 문제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띠띠띠. 

나는 끊겨버린 전화를 든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적 속에 몇 분이 지났을까. 

문자 한통이 왔다. "이번주부터 ○○교회에 나가"라는 아빠의 메시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던데, 과연 종교 앞에서도 가능할까. 내겐 너무 먼 얘기다.

종교에서 자유를 찾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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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정다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싸워도 좋고, 인신공격을 해도 좋습니다. 

꼭 해법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의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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