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하나쯤 있어야 할 문화공간이 왜 사라져갈까
김태훈 기자 입력 2019.01.19. 16:36 수정 2019.01.19. 20:03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의 주방에서 이성민 대표가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 / 김태훈 기자
2018년 11월 16일. 한 카페의 개업 10주년 연속공연 무대였다. ‘45일간의 인디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진 공연무대에 오른 음악인 키라라가 한마디를 던졌다.
“‘룰루랄라’ 없어지면 어떡하죠?”
그 말을 듣고 보니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이하 룰루랄라) 주인 이성민 대표(46)도 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게, 어떡하지?’ 개업한 지 10년을 맞았지만 한편으로 몇 달 뒤 폐업이 예정된 상황에서 연속공연을 기획한 것은 그저 마지막까지 손님들에게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는 3월 말로 예정된 폐업을 두 달 남짓 남겨둔 이 시점에서도 이 대표는 가게 문을 닫은 뒤 무엇을 할지 확실히 계획해 두지 않았다.
만화카페로 개업, 인디음악 공연장으로
“잘 모르겠어요.” 이 대표는 문을 닫은 뒤에 무엇을 할지, 폐업을 앞둔 지금의 심정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에 솔직히 ‘모른다’고 답했다. 이 대표의 겸손한 입으로 10년 동안 룰루랄라가 어떤 역할을 해왔고 홍대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자리잡았는지를 듣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을 다녀간 발걸음들을 복기해 보면 단순히 카페나 공연장소로만 보기는 어려운 룰루랄라만의 복합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때로는 카페이고 매주 월요일 ‘먼데이 서울’이라는 이름을 걸고 열리는 공연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자, 카레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룰루랄라의 시작은 2008년 이 대표가 만화를 주제로 한 카페를 개업하면서부터다. 현재 1500권 남짓한 각종 만화책들 가운데는 현대식 만화카페보다는 옛 만화방에 어울릴 법한 책들도 적지 않다. 개업 전 만화잡지 관련 일로 만화계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는 이 대표는 만화 전문서점이 가까이 있는 점을 고려해 일반 동호인이 그린 만화 동인지도 진열·판매했다. 만화가들이 쓰라고 널찍한 책상에 라이트박스까지 달았다. 룰루랄라는 굳이 만화 분야가 아니더라도 홍대 주변 예술가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고 지인들과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독립음악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2011년, 맞은편에 있던 식당 두리반이 강제 철거되면서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철거 반대활동을 하던 음악인들이 차츰 룰루랄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리반에 있던 악기와 장비를 옮겨 공연을 열었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과 ‘단편선’ 등 독립음악계에서 알려진 인물들이 룰루랄라의 정체성에 공연공간이라는 이름표 하나를 붙여주는 역할을 했다. 폐업 이후 계획이 없는 이 대표는 그때도 별다른 계획 없이 주 1회 공연을 시작했다. 그저 공연 중에는 밥이나 술 대신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식탁을 옮기는 정도의 노력이었지만 60명 정도가 최대인 수용공간은 꽉꽉 들어찼다. 이 주간 정기 공연은 6년 넘게 계속됐다.
그리고 그동안 룰루랄라는 특색있는 맥주를 골라 팔거나 맛있는 라면과 카레를 파는 곳으로 ‘맛집’ 타이틀까지 달았다. 이러한 10년 행보의 마지막은 45일간의 연속공연이 장식했다. 10주년 기념공연이자 룰루랄라의 고별무대이기도 한 이 공연은 이 대표의 ‘무계획성’이 반영돼 실제로는 52일 동안 이어졌다. 지난해 8월 개업한 지 꼭 10년을 맞았을 때 건물주는 건물을 리모델링하겠다고 통보했다. 1층에 자동차정비소가 있는 외진 골목에서 작은 간판 하나만으로 발길을 끌었던 룰루랄라였지만 상권의 변화는 예상 못한 변수였다. 대형 쇼핑몰 건물이 두 곳이나 바로 옆에 들어서고 지하철 출구도 코앞에 생겼다. 이젠 외지고 찾기 어렵다고 하기 힘든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 대표는 떠나는 마당까지 덤덤하다. “사실 리모델링을 해야 할 정도로 건물이 낡긴 했다”는 그는 “가게를 연 것도 룰루랄라가 처음이었지만 닫는 것도 처음이라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계속하라고 조언해도 10년 사이 엄청나게 올라버린 임대료를 내며 홍대에 계속 남을지 결정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문을 닫는다는 것이 크게 실감나지도, 걱정스럽지도 않지만 문득 이런 생각은 들었다. “지난 10년간 만난 사람들이 거의 전부 여기 룰루랄라에서 만난 사람들이거든요. 그분들 덕에 여기까지 온 건데, 이 공간이 사라지면 이제 그 사람들 어디서 어떻게 만나지 하는 생각이에요.”
풀무질 책방의 내부 전경 / 김태훈 기자
‘불온 서적’ 팔다 구치소 수감생활도
독립음악계의 ‘성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요 정거장 역할은 톡톡히 한 룰루랄라가 폐업을 앞둔 비슷한 시기 상업성과는 거리를 둔 또 한 곳의 문화공간도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풀무질 책방’은 25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은종복 대표(54)가 떠나고 서점을 새로운 젊은 인수자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속적으로 누적된 적자 때문에 5월까지 인수자가 없으면 책방 자체가 흔적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명맥은 유지하게 된 셈이다.
풀무질은 대학가의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인 1985년 성균관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으로 문을 열었다. 1993년 4월부터 대표를 맡아 서점을 운영해온 은 대표는 풀무질의 역사만큼이나 다른 사회과학서점들의 어제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서울대 앞 ‘백두’ ‘전야’, 고려대 앞 ‘장백서원’ ‘황토’, 연세대 앞 ‘오늘의책’ ‘알서림’, 서강대 앞 ‘서강인’, 한국외국어대 앞 ‘죽림글방’, 성균관대 앞 ‘논장’ ‘변증법’, 서울시립대 앞 ‘창의’, 한양대 앞 ‘한마당’, 이화여대 앞 ‘다락방’, 홍익대 앞 ‘이어도’, 숙명여대 앞 ‘숙명인’, 경희대 앞 ‘지평’, 중앙대 앞 ‘청맥’, 동국대 앞 ‘녹두’, 건국대 앞 ‘인서점’이 있었죠.”
그는 비슷한 시기 서울 곳곳의 대학 앞에서 문을 연 사회과학서점 가운데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풀무질과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두 곳뿐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아직 학생운동이 ‘가투’를 벌이던 때 풀무질은 시위에 나서는 학생들의 가방을 맡아주고 전경을 피해 몸을 숨기는 학생들을 위해 쪽문을 열어두곤 했다. 은 대표 본인이 고초를 겪은 적도 있다. 사회운동단체와 노동단체 등의 팸플릿이나 자료집을 서점에 구비해 두던 1997년 이들 책자와 함께 <전태일 평전> 같은 책을 판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고, 구치소에서 수감생활도 해야 했다.
수감기간 동안 서점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생긴 빚은 이후 영업상황이 악화되면서 점차 대출이 늘어나기 시작한 출발점과도 같았다.
“제가 맡은 25년을 ‘책방’, ‘책가게’, ‘책무덤’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어요. 처음 인수해서 사회과학서점 성격이 살아있던 시기는 책방이었고, 그 뒤 매출이 줄면서 고시수험서 같은 책들도 팔아서 버티던 때가 책가게, 그리고 아예 찾는 발길이 끊기면서 5만권 책들이 그대로 묻혀 있으면서 버티던 때가 바로 책무덤이죠.”
은 대표의 어머니가 서점에서 일하고 아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대출을 받는 데 명의를 빌려주는 등 가족의 삶까지 온전히 투자해 버틴 책무덤의 시기는 녹록지 않았다. 관만 짜지 않았을 뿐이지 무덤처럼 책들이 묻혀 있던 최근 몇 년을 지나 풀무질에는 반짝 활기가 돌고 있다. 역설적으로 폐업 위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균관대 졸업생 등 과거 풀무질을 찾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생맥주 미팅’에 참석했던 은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직접 “프랑스에서는 동네 책방을 열면 10억원을 무이자로 빌릴 수 있게 문화를 살리는 제도가 확립돼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지만, 정부는 물론 시민들의 반응도 별반 달라지지 않던 터였다. 지척에 자리잡은 대형 인터넷서점의 오프라인 중고서점 매장은 붐비지만 각종 책읽기 모임과 강좌를 열어도 풀무질로 내려가는 계단의 발걸음 소리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조용했던 것이다.
폐업 위기 상황에서 맞은 ‘반짝 특수’가 최대한 길게 이어져 새로운 인수자에게까지 긍정적 영향을 주길 바라지만, 은 대표는 6월까지 자신이 맡은 영업상황을 마무리지으면 미련없이 풀무질을 떠난다. 제주도에서 지금의 풀무질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책방을 열고,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울 테니 현지에서 막일을 해서라도 벌어서 지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남은 빚은 서울의 집을 팔아 갚고 새로운 인수자는 빚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아무런 부담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은 대표는 “10년 전부터 적자가 쌓여 현재까지 출판사에 지급하지 못한 돈만 1억원 가까이 되는데, 출판사들은 돈을 받지 않겠다고도 하고 각지에서 돈을 보내주시기도 해서 감사하다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어쨌든 이런 도움은 받지 않고 스스로 남은 빚을 해결한 뒤 후임자에게는 어떤 부담도 없이 시작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시장의 급변, 이색 서점들 문 닫아
30년이 넘는 세월을 한자리에서 보낸 풀무질만큼은 아니지만 특히 출판시장을 둘러싼 환경의 악화는 책과 시민들을 이어주는 공간의 축소로도 나타난다. 서울 마포구에 있던 ‘빨간책방 카페’는 팟캐스트에서 도서분야 청취율 1위 자리를 수년간 놓지 않았던 ‘이동진의 빨간책방’ 방송의 인기와 함께 시작했음에도 3년을 겨우 넘기고 문을 닫았다. 해당 팟캐스트는 300회를 넘기며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고, 카페를 운영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별다른 경영상의 문제를 겪은 것도 아니다. 출판사 관계자는 “임대계약 만료가 다가온 시점이라 여러 차례 고민하며 회의를 거쳤지만 2018년 12월 31일부로 더 이상 문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차후 책과 독서를 주제로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할 수도 있다는 말은 남겼지만 결국 수익이라는 결정적 요인을 넘어서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화공간들을 바라보는 시선, 특히 이들 공간을 사랑했던 시민들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역력하다. 본인도 한동안 독립서점을 열고 운영에 참여했지만 결국 문을 닫은 경험이 있는 직장인 이모씨(34)는 룰루랄라의 단골을 자처한다. 이씨는 “물론 비영리가 아니라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니 살아남으려면 일정한 수익이 나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며 “그런데 돈벌이와 무관해 보이는 문화활동을 하면서 길게는 10년 넘게도 버티는 룰루랄라 같은 예를 보며,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이런 성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건 아닌가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부터 풀무질 책방의 단골이었다는 김현철씨(36)도 “풀무질만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동네서점이 있다면 직접 책을 보며 고르는 맛을 느끼고 책을 사겠지만 이미 다 죽어버린 마당에 소비자가 이들을 돕고 싶어도 택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극히 적다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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