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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이야기

황혼이혼, 그 뒤늦은 후회

일산백송 2015. 11. 10. 10:42

[법과시장]황혼이혼, 그 뒤늦은 후회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입력 : 2015.11.09 05:34|조회 : 70414

얼마 전 한 중년남자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군데군데 얼룩이 있는 셔츠에 한동안 수염을 안 깍은 듯,
초췌한 행색의 그 분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꺼운 서류봉투를 내놓았다.

“집사람이 보낸 이혼소장을 받았어요.”

소장을 읽어보니 남편 나이 61세, 아내 59세,
두 사람은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두 딸을 낳고 30여년을 같이 살았다,
아내는 결혼기간 중 남편의 폭언, 폭행과 지나친 인색함, 아내에 대한 무시와 냉대로 고통스러웠지만,
자식들 때문에 참았다, 금년 초 둘째딸이 결혼해서 엄마로서의 의무는 다했기 때문에
이제 이혼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폭행의 증거로 진단서, 병원진료기록, 폭행당한 모습의 사진, 부서진 살림을 찍은 사진이 있고,
엄마 말이 맞다는 딸들의 진술서도 붙어 있었다.
남자분의 허름한 행색과는 달리 그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각자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30억대 자산가였다.
겉으로만 보면 자식들 잘 키워 출가시키고
이제부터 부부가 함께 풍요로운 노후를 즐기면 되는 모양새였다.

남자분은 소장에 적힌 폭행, 폭언, 아내에 대한 무시와 냉대, 지나친 인색 등 이혼청구원인은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도대체 왜 그러셨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 분의 대답은 이랬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중학교 때부터 가장노릇을 해야 했다.
신문배달과 막노동을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꼭 성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명문대학교 진학에 성공했고, 장학금과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다.
삶의 유일한 목표는 ‘돈을 벌어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대기업에 취직해 10여 년을 다니다가 그만 두고 자기사업을 했는데 한동안 심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했습니다.”
낮에는 자기사업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돈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집 사람과 아이들이 맘에 안 들면 화내고 욕하고 때린 적이 많아요.
내가 정말 힘들게 번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것도 맘에 안 들었고요.
그래도, 돈 벌고 나면 잘해주려고 했어요. 일단 돈을 벌고 나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 드디어 몇 년 전 수십억의 재산을 모으는 데 성공해서
그 때부터는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수십년간 악화된 가족관계는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수십년간 남편한테 당해온 아내는 매사에 엇나가고, 두 딸도 아버지를 피하기만 했다.
아내를 달래기 위해 1년 전 집 두 채 중 한 채를 아내 이름으로 바꿔주고 다이아반지도 사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아내가 고생한 것이 불쌍해서 다이아반지를 사줬는데 안 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왜 안 끼냐고 욕을 해서 부부싸움이 됐는데, 집사람이 다음날 짐을 싸서 나갔어요.”
집을 나간 아내는 남편 전화도 받지 않다가 집 나간 지 한 달 만에
처형을 통해서 이혼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
남편은 그 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하고 돌아와달라’는 문자를
하루에도 수십통씩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전 재산을 아내에게 주겠다고까지 했지만 아내는 이혼만을 원한다고 했다.
‘남은 인생은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내의 확고한 의사였다. 딸들도 엄마편이었다.

“난 집사람이 없으면 못 살아요. 집사람이 없으면 돈도 필요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돈돈 하면서 살지는 않았을 것을...”
남편의 얘기는 눈물 속에 끝이 났다.
어떻게든 아내로부터 이혼을 안 당할 방법이 없겠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남편의 질문에 희망적 답변은 줄 수 없었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한 남자의 뒤늦은 후회에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란 말을 보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