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부는 정말 닮아가는 것일까요?
SBS | 한세현 기자 | 입력 2015.05.21. 15:00 | 수정 2015.05.21. 16:00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노부부들을 보면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말투, 성격, 심지어 얼굴 모양까지도 닮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부부는 닮아간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매우 비과학적입니다.
오랜 시간을 같이 산다고 해서, 태생적으로 DNA가 섞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가 닮은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과학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이와 관련해, 지난 2005년 영국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영국 리버풀 연구진이
남녀 각 11명에게 부부 160쌍의 사진을 뒤섞은 뒤 인상이 닮은 남녀들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서로 닮은 것으로 지목된 남녀 가운데 실제 부부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웃거나 찡그리면서 얼굴 근육과 주름, 모양이 변하는데,
오래 산 부부들은 감정 표현이 비슷해지면서 이런 근육과 주름의 움직임이 같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한마디로 동일한 상황을 자주 공유하면서, 같이 웃거나 찡그리는 경우가 많아져
인상이나 표정이 닮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부부는 질병도 닮아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한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움직이면서 또 음주나 흡연 같은 나쁜 생활습관도 공유하게 되면서
앓게 되는 질병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에선 오래 산 부부일수록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복부 비만 등
대사성 질병을 같이 앓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심리학자들은 부부는 닮아가는 게 아니라 원래 닮아 있었던 거란 학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대학 지각실험실이 학생 30명에게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고
매력적으로 끌리는 사진을 고르게 했습니다.
학생들이 받은 사진 가운데는 자신의 모습에서 성별만 바꾸어 놓은 사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실험에 참여한 학생 상당수가 자신의 성별을 바꾸어 놓은 이성 사진이 끌린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격이나 공통의 관심사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순간적인 이끌림에는 닮은 사람에 호감도 중요하다는 이른바 '일치 가설'입니다.
생물진화학자들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배우자를 선택하는 현상을 유전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부모를 닮은, 즉 자신과 유전자가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근연교배는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선택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한 점들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기전을 가지고 있단 겁니다.
과연, 부부는 닮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 닮은 사람을 선택한 것일까요?
과학은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사람은 자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끌린다.'라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다시 말해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옥시토신 같은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돼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오늘(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가 서로 닮으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바치는 최상의 배려이자 사랑일 것입니다.
닮아가는 부부가 더 많아지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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