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계열사 SPL 제빵 공장에서 숨진 A 씨(23)가 사망 전 남자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CBS노컷뉴스 보도화면 캡처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홀로 작업하다 끼임 사고로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가 사고 당일 연인에게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며 과도한 업무 강도를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은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숨진 여성 노동자 A씨(23)가 사고 당일 남자친구인 B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B씨가 “오늘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묻자 A씨는 “일 나 혼자 다 하는 거 들킬까 봐 오빠 야간 (근무로) 오지 말라고 했다. 사실 이건 일상이야”라고 말했다.
또 “남은 시간 힘내자”는 B씨의 말에 A씨는 “졸려 죽어. 내일 롤치킨 (만들 거) 대비해서 데리야키 치킨 500봉을 깔 예정. 난 죽었다. 이렇게 해도 내일 300봉은 더 까야 하는 게 서럽다”고 털어놨다. 이에 B씨는 “속상해. 한 명 더 붙여 달라고 그래. 바보”라며 안쓰러워했다.
강 지회장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연인 사이였다. 사고 당일에는 B씨가 먼저 퇴근하고 A씨는 공장에 남아 근무를 했다. 이들은 이틀 뒤 휴가를 내고 함께 부산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었다고 한다.
강 지회장은 “카톡 대화 마지막에 A씨의 답변이 없으니 B씨가 ‘무슨 일 있어? 왜 카톡을 안 받아?’라고 묻는 내용이 있었다”며 “참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직원 사망 사고 바로 다음 날 작업을 강행한 SPC 계열사 SPL 제빵 공장. CBS노컷뉴스 보도화면 캡처
강 지회장은 “그날은 업무량도 많고 전날 했던 물량도 밀려와서 A씨가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한다”며 “11시간 동안 15㎏짜리 통을 계속 받아서 12단으로 쌓아야 하는데 집중력도 떨어지고 얼마나 힘들었겠냐.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근무 환경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15분씩 휴식을 취하게 돼 있는데 청소 등을 하면 실질적으로는 7~8분밖에 쉬지 못한다고 하더라”며 “그날 A씨도 쉬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일의 강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 지회장은 사고 당일 2인 1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꼬집었다. 회사 측은 ‘매뉴얼대로 2인 1조 근무를 했다’고 밝혔는데, 실질적으로 한 명이 근무를 설 동안 다른 한 명은 배합실 밖에서 다른 일을 했기 때문에 둘이서 함께하는 2인 1조 근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강 지회장은 “공장 일의 특성상 기계에 미끄러져서 쓸려 들어갈 수도 있고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2인 1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 기계를 잡아만 줬어도 사망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면서 “2인 1조라고 해도 한 사람은 재료를 갖다 주고 배합해서 나온 소스를 옮기는 등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2인이 함께하는 작업이 되려면 3인 1조는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5일 경기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A씨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배합기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숨졌다. 현장에는 A씨 외 다른 직원이 1명 있었지만 해당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사망 사고 바로 다음 날 작업을 강행한 SPC 계열사 SPL 제빵 공장. CBS노컷뉴스 보도화면 캡처
강 지회장은 또 사고 다음 날 회사 측에서 다른 직원들에게 작업을 계속하도록 지시한 데 대해 “(회사에서) 일을 하라고 개별적으로 연락이 왔다더라. (직원들 입장에서는) 안 나가면 혹시나 불이익을 받거나 승진에 문제가 있을까 봐 나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노동자를 감정이 없는 기계로 보는 거 아닌가”라며 “우리도 최소한의 감정이 있는데, 바로 옆에서 그걸 보면서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걸 말해 준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18일 SPL 안전책임자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배합기에 자동 멈춤 설비가 없었는데, 해당 설비 설치가 의무인지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도 이번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정치권에서도 사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바로 옆에서 동료가 기계에 끼여서 목숨을 잃었는데 또 기계를 돌려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라며 “정말 반노동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강동석 SPL 대표이사를 오는 24일 종합감사 증인으로 불러 사고 경위 및 대응책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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