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식
검사 출신 법조인이 금감원장에 임명된 건 1999년 금감원이 설립된 이후 처음입니다.
이 원장은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3년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하고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과 경제범죄형사부장 등을 역임하며 특수통 검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와 국정농단 수사까지,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검찰 내 대표적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돼왔습니다. 지난 4월 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분리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자 이에 반발하며 검찰을 떠났다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을 총괄하는 금융감독원의 수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원장은 취임식에서 금융시장 교란 행위에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며 불공정 거래 근절이 금융시장 활성화의 토대가 될 것이라며 금융 시장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혔습니다.
'적재적소' 언급 6시간 만에‥'적재적소'와 '검찰 출신'은 동의어?
이복현 원장의 임명이 이뤄진 어제(7일) 상황을 잠시 되짚어 보겠습니다.
어제 아침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정부 요직을 검찰 출신이 독식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원칙입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이 '적재적소'라는 인사 원칙을 언급한 지 약 6시간 뒤,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금감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이 원장을 제청한 금융위원회는 이 원장이 검찰 재직 시절 굵직한 경제범죄 수사를 통해 경제 정의를 실현해 왔고, 금융회사의 준법 경영 환경을 조성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등 금감원의 당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됐다고 제청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 원장의 이력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내정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공인회계사 시험과 사법시험에 동시 합격한 금융·경제 수사 전문가이며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 형사부장을 역임한 분입니다."
이른바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을 의식해 이 원장의 '경제' 관련 이력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민주당 "검찰 출신 아니면 유능한 인물 씨 말랐나"
더불어민주당은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내정되자 "검찰 출신이 아니면 대한민국에 유능한 인물은 씨가 마른 것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조오섭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를 자리 나눠주기로 여기는 것 같다"면서 "검찰편중, 지인 찬스 인사라는 비판에도 마이웨이 인사를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상희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단순히 검찰 편중 인사라고 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면서 "검찰이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윤석열 사단에 속한 검사들이 모든 요직을 꿰찬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청래 의원은 SNS에 "또 검사인가"라며 "전두환 때는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여사란 말이 있었는데 윤석열 때는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검사, 검사 위에 여사라는 말이 회자 될지도"라고 적었습니다.
보수 언론도 '쓴소리'‥'검찰 공화국' 현실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크게 비판할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역시 검사 출신인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다 보니 권한이 강한, 이권이 개입될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서에는 믿을 만한 사람, 자기가 같이 일하면서 검증이 된 사람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수 성향 신문들조차 잇따라 윤석열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중앙일보는 오늘(8일) <금융감독원장까지 검사 출신‥적재적소 맞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금융위에선 이복현 신임 원장에 대해 금감원의 당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했지만 그가 과연 적임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설은 "이 원장은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나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등의 수사 참여에서 보듯 기업과 금융을 '범죄'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봤던 사람"이라며 "그간 봐주기 논란을 빚은 라임·옵티머스 사건 재수사와 각종 금융범죄 수사를 원활히 지원할 순 있겠지만 금감원의 업무는 그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기관까지 검찰 출신을 줄줄이 앉히는 건 지나치다"며 "세상에는 검사 말고도 유능한 사람이 많다. 자리에 걸맞는 유능한 인재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조선일보도 어제(7일) 검찰 편중 인사를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곳곳에 검찰 출신, "인사가 편중되면 판단이 치우칠 수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에 검사 출신인 조상준 변호사를 임명한 것을 두고 "새 기조실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형사부장으로 발탁했고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변호인도 맡은 인사"라며 "국정원의 조직·인사·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요직에 최측근 검사를 기용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장차관급에서도 6명이 검찰 경력이 있고 장관급인 국가보훈처장엔 처음으로 검찰 출신이 임명됐다"며 "검찰 편중 인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참고로 해당 사설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임명되기 전에 나왔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검찰 편중 인선에 대한 비판을 잘 듣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사를 찾겠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인재 풀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을 해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금감원장 임명을 두고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8일)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선 이복현 원장에 대해선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한데다 오랜 세월 금융수사 과정에서 금감원과 협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금융 감독규제나 시장 조사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주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또 '검찰편중 인사라는 지적으로 강수진 고려대 로스쿨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군에서 제외된 것인가'라는 질문엔 "전혀 아니다"라며 다른 이유가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인재풀이 너무 좁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그런 거버먼트 어토니(정부 소속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며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금감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경우는 규제 감독기관이어서 적법 절차와 법적 기준을 갖고 예측 가능하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집행을 다룬 사람들이 가서 역량을 발휘하기에 아주 적절한 자리"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출신 금감원장 임명'에 대한 비판론을 일축하는 한편, 아직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공정거래위원장에도 법조인 출신을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이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대해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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