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모든 사람' 보호한다던 윤석열 정부, '특고'엔 모르쇠
화주단체, 화물노동자 특수 지위 빌미로 교섭 주체 안 나서
대선 때 노동권 인정 약속한 여당, 화물연대에 모순적 태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가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와 전 차종·전 품목 확대 적용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지 12일로 6일째에 접어들었다.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는 이날까지 네 차례 협의를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본질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보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연대와 국토부에 따르면, 양쪽은 전날 10시간 넘게 3차 교섭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화물연대는 국토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토부는 입장 표명은 하지 않은 채 파업 철회를 요구하고 향후 대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4차 교섭이 진행됐지만 합의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태 본질은 화물연대 조합원 상당수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데 있다.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안전운임제도 이 같은 지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고 적정한 소득을 보장해 안전사고를 막는 게 안전운임제 취지다.
하지만 정부는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면서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강경 대응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화물연대의 교섭 상대방이 아니고, 파업을 파업이 아니라 ‘집단 운송 거부’로 규정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노사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지만,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화물노동자의 지위 속에서 화주단체들은 교섭 주체로 나서지 않는 실정이다.
화주단체가 화물연대와 교섭할 경우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는 부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교섭 상대방 찾기’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택배노조는 노동조합 지위를 정식으로 획득했는데도 불구하고 택배사와는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화물연대는 그동안 노정교섭에 비중을 두고 활동해왔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임해온 상황에서 안전운임제와 같은 성과를 거두며 유효하게 그 체제가 작동해왔다”며 “이번에는 정부 태도에 (문제 해결이) 달려있다”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정부 대응이 지난해 한국이 추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원칙) 위반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은 ILO가 개입해달라는 서한을 ILO 사무국에 보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법률원 노동자권리연구소의 윤애림 박사는 “정부는 화물연대가 노동3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인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대선 때 사각지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과 이번 총파업 대응이 상반된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밝혔다.
국정과제에는 “특고·플랫폼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명시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지난달 29일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배달노동자·대리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 당사자들의 모임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1호 법안으로 산재보험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노동자 요구를 수렴했다고 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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