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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갈 데까지 갔다"..영장전담 합의부 신설 목소리

일산백송 2018. 9. 12. 07:35

한겨레

"법원이 갈 데까지 갔다"..영장전담 합의부 신설 목소리

입력 2018.09.12. 05:09

 

법원 '유출 재판기록' 파기 방조 후폭풍

영장전담 법관 '사법부 불신' 부채질

압수수색영장 심리 사흘이나 끌고

기록유출 유해용과 함께 근무 인연

법관 1인이 발부 여부 결정 부작용

"사법부 스스로 특단조처 해야" 지적 법

[한겨레]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대법 기밀자료 무단 반출과 파기 혐의와 관련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의 자기 증거인멸이 거센 ‘후폭풍’을 불렀다.

 

영장전담법관이 압수수색 영장 심리를 무려 사흘이나 끄는 사이에 전직 법관이 증거를 파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11일 법조계에서는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영장법관이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반응과 함께 사법부 스스로 별도의 영장심사부 설치 등 특단의 조처를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번 일은 잇단 영장 기각으로 가뜩이나 커지고 있던 ‘사법부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고위 법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이날 “어젯밤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수사상 긴급을 필요로 하는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된 날부터) 사흘씩이나 들고 앉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심받을 만한 행동”이라며 “사법부에 더는 나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우려했다. 박훈 변호사도 페이스북에 “법원이 갈 데까지 가고 있다. 법원이 증거인멸 방조범을 불사하며, 똘똘 뭉쳐 방어벽을 치고 있다”는 주장을 올렸다.

 

더욱이 이번 영장을 기각한 박범석 판사가 대법원에 근무할 때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 휘하 재판연구관이었다는 관계까지 알려지면서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더는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한때 거론됐던 법원 외부의 특별재판부 설치는 이미 ‘실기’를 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법부 스스로가 자기 재판의 판관이 되는 모순을 피하려면 명망 있는 법조인들로 독립된 재판부를 꾸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국회 등 정치권의 무관심 탓에 적절한 시기를 놓쳐 버렸다는 것이다. 법관 출신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 외부의 특별재판부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그사이 이미 많은 증거인멸이 이뤄졌을 것이고, 입법이 언제 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영장전담 합의부’의 신설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관 1명이 혼자서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기존 영장전담법관들 말고 합의부(법관 3명) 형태의 전담 재판부를 새로 설치하자는 것이다. 재판부 구성도 ‘재판장의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험 기수가 대등한 법관들로 하고, 수사 대상자들과 근무연이 겹치지 않는 법관들로 엄선하자는 제안이다.

 

고법부장 출신의 변호사는 “전담 재판부 신설은 국회의 입법 사항이 아니라 법관들의 업무 분장 차원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사법부의 위상 실추를 이제라도 막으려면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사법 농단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드러나는 사법 농단 실체와 증거인멸 시도 등을 접하고 더는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강희철 서영지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