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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범칙금 못 내 700만명 면허 정지.. 미국 저소득층 발이 묶였다

일산백송 2018. 5. 21. 12:56

한국일보

[특파원 24시] 교통 범칙금 못 내 700만명 면허 정지.. 미국 저소득층 발이 묶였다

송용창 입력 2018.05.20. 15:04 수정 2018.05.20. 16:48

 

지방정부, 예산 확보 위해

무리한 교통단속 일삼아

 

미국의 지방 정부가 재정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교통 범칙금을 부과해 서민들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의 한 흑인여성은 2007년 불법 주차 단속에 걸려 범칙금 151달러를 부과 받았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 여성은 기한 내에 돈을 납부하지 못해 추가 벌금이 지속적으로 쌓여갔다. 이후 7년간 이 여성에겐 부과된 돈은 약 1,100달러였다. 반 정도는 조금씩 지불해 갚았지만, 반은 내지 못해 6일간 옥살이도 했다. 단 한번의 불법 주차에 대한 대가였다.

 

2014년 경찰 당국의 인종 차별로 소요 사태가 벌어졌던 미주리주 퍼거슨시의 교통 단속은 인종 차별적 요소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법무부 조사에서 경찰 당국이 시 재정 수입을 끌어올리기 위해 교통 범칙금을 무차별적으로 부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공중 안전에 초점을 맞춘 법 집행을 하는 게 아니라, ‘미수금 처리 대행사’ 같이 시민들의 주머니를 노려 ‘중세 시대의 강도 국가’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처럼 지방 정부가 예산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교통 단속을 벌여 범칙금을 부과하는 관행이 미 전역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각 주의 운전면허 정지 기록을 분석한 결과, 미 전역에서 교통 범칙금을 내지 못해 운전 면허가 정지된 사람이 7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관련 자료가 없거나 이를 제공하지 않은 주들을 감안하면 그 숫자가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운전 면허는 출퇴근, 업무, 자녀 등하교, 장보기 등 일상 생활에서 필수적인데 무리한 범칙금 부과로 저소득층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인구 840만 명인 미 동부 버지니아주의 경우 2016년 말 기준으로 교통 범칙금을 내지 못해 운전 면허가 정지된 이가 64만7,517명(7.7%)이었다. 범칙금 미납으로 면허 정지가 가장 많은 곳은 텍사스 주로 140만 명이었다.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주는 법정 벌금 미납을 이유로 면허 정지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캘리포니아주도 6월부터 범칙금 미납 때문에 면허를 박탈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버지니아주 시민단체인 법률지원정의센터는 지난해 버지니아주가 반헌법적 제도로 운전 면허를 정지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이 단체의 안젤라 시오피 법률국장은 WP에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갚고 면허증을 되찾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엄격하다”며 “이는 단순히 운전이 아니라, 생존과 가족을 돌볼 권리에 대한 문제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