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유학후 月150만원 인턴…발목잡힌 기러기아빠의 노후
[가정의 달 기획-기러기아빠 20년②-1]자녀교육 '올인'했지만…청년실업에 노후 '뒷전'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신희은 기자 |입력 : 2015.05.05 05:05|조회 : 60801
편집자주|1990년대 중반 상류층을 중심으로 조기유학 붐이 일면서 아내와 자녀를 해외로 보내고 국내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기러기 아빠'가 사회현상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20년. 기러기아빠가 대중화하면서 해외로 떠난 상당수 자녀들이 대학진학과 취업, 결혼을 앞둔 청년기에 진입했다. 최근 국내외 경제난, 청년취업난은 물론 달라진 가족관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는 기러기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년 유학후 月150만원 인턴…발목잡힌 기러기아빠의 노후
해외 유학·어학연수 상담 모습. / 사진 = 머니투데이DB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10년 넘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A씨(28·여).
미국 동부의 명문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현지취업에 실패해 돌아왔다.
대학 성적도 우수하고 대기업에서 인턴까지 했지만 고국에서의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영어를 '무기'로 대기업과 은행권에 입사지원서를 내밀었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오랜 유학생활로 '한국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낙방의 이유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문화적 거리감이 적다고 어필했지만
면접관들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해외대학을 졸업한 게 되레 단점이 된 셈.
유학으로 보낸 시간과 돈이 아깝지만 결국 김씨는 대기업 공채는 포기하고
한 중견기업의 해외마케팅 부서에서 한 달 150만원 가량을 받는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김씨는 "석사학위 취득도 생각도 했지만 그 동안 기러기아빠로 생활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생각에 작은 회사부터 다니며 구직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해외 취업 어려워 한국 돌아왔지만…'낙동강 오리알'
글로벌 경제침체 등으로 한국을 떠난 유학생들이 해외에서도 취업난을 겪고 국내정착도 어려워지면서
'기러기아빠'들의 주름살이 늘고 있다.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한국에서 살며
수년간의 외로움을 견뎠지만 취업 전까지 뒷바라지를 마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취업이 어려워진데다가 국내 기업의 기준도 까다로워져 오히려 취업시장에서 유학생의 메리트가 없다는 게 기러기아빠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유학생을 '현실도피'로 보는 시각마저 있다고 토로한다.
아들을 뉴질랜드로 보낸 기러기아빠 B씨는 "10년 전만해도 유학생이 적었기 때문에 눈에 띄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며 "해외에서 취업이 쉽지 않아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시키고 한국에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C씨(32)의 아버지도 "유학생 메리트가 전혀 사라졌다"며 "영어이외에 어필할 수 있는 능력도 많지 않다보니 국내 학생들에게 기회가 더 가는 게 현실이다. 기업에서 유학생들을 오히려 뽑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심해졌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결국 미국에서 돌아온 아들의 용돈까지 챙겨주고 있다.
◇취업난 빠진 자녀들…기러기아빠 노후는 뒷전
자녀들이 취업난에 빠져있는 사이 기러기아빠들의 '노후'는 더 뒷전으로 밀려났다. 연평균 1억원 정도를
송금하는 기러기아빠들의 사정상 노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대다수 기러기아빠들이 대기업이나 전문직, 자영업자 등에 종사해 소득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해외에 교육비 등을 송금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고 나면 노후를 위해 저금하기는 불가능 하는 설명이다.
13살 아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내고 4년 전부터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D씨. 국내 대형 건설업체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매년 7000만~8000만원을 학비와 생활비 몫으로 보내고 있다.
D씨는 "캐나다에 사는 친척 집에 머무르고 있어 주거비가 덜 들지만 생활비와 부모님 용돈 등을 드리고 나면 월급만으로 저금을 하기엔 빡빡하다"며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1년에 1억원 드는 게 기본인데
노후 준비는 거의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1년에 정씨와 비슷한 금액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 E씨도 팍팍한 생활에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노후를 잘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며
"절대 여유롭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유학생활에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관계가 멀어지고 비용도 많이 드는 만큼,
뚜렷한 목표나 꿈이 없는 해외유학은 오히려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과거 유학을 통해 '영어만 되도 괜찮다'는 식의 유학생활은 자녀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해외와 국내 어느 한쪽에도 적응하지 못할 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도 유학생이라고 해서 인정해 주던 시대가 아니다"며
"기러기아빠 생활이 길어질 수록 한국 정서와도 멀어질 뿐더러 유학을 하고 있는 자녀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윤 기자 트위터 계정 @mto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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