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분노, "경로당 예산 삭감하면 겨울에 어디로 가란 건지"
[김정연 기자]
▲ 경로당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갈 곳이 없고 만날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만 지내다가 경로당이 문을 열어 하루 하루가 즐겁다는 어르신들은 이렇게 친구도 만나고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사는 게 즐겁다는 어르신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김정연
최근 어르신들에게 소중하기만 한 경로당을 뒤흔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전 발표된 2023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에 따르면, 경로당 냉·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 사업 예산이 예년에 비해 5.1% 적은 648억 9600만 원으로 편성됐다. 복지부는 예산 삭감과 관련 "경로당 냉·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 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1년 재정사업 자율평가'에서 전년도 및 최근 5년 간 실집행률이 낮아 2023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5% 감액했다"고 밝혔다. 5년 간 평균 실집행률은 90.3%인데, 2019년 93.6%, 2020년 83.1%, 2021년 89.1%이다(국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
2020년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감염병에 취약한 어르신들의 집합을 금지하면서 꽤 오랫동안 경로당을 폐쇄했었다. 운영한 날보다 운영하지 않은 날이 더 많은 때도 있었다. 경로당 문을 닫으면서 예산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코로나가 활개를 치던 때엔 경로당 문을 열 수 없으니, 당연히 냉난방비와 양곡비를 쓸 수 없었고 그대로 반납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후 상황을 살피지 않고 실집행률을 들이밀며 예산을 삭감하다니...
"예산 더 필요한 상황에 삭감을 하면...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란 건지"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이번 예산 삭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2020년 초부터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이란 힘든 시기를 겪어내신 어르신들은 요즘 경로당 문이 열려 너무나 좋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방문상담을 위해 전화를 걸면 경로당에 와 있으니, 경로당 가는 시간을 피해서 오라고 했다.
이번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삭감은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일하는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치매노인 맞춤형사례관리사 전수정(가명)씨는 "경로당에 난방을 하지 않으면 겨울에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코로나 때문에 예산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못 쓴 건데, 그때는 코로나 걸린다면서 문도 안 열어줘서 (어르신들이) 갈 데가 없어 고생했는데... 그때 쓰지 못한 한 예산을 반납한 거 아닌가. 안 그래도 물가가 올라 오히려 예산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삭감을 하면 어르신들은 이제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분노했다.
경로당 관리를 하는 서영진(가명) 어르신은 "이제 여기(경로당)도 춥고 (여기서) 밥도 못 먹으면 아예 경로당을 이용하지 말라는 거지. 그럼 어르신들은 겨울이고 여름이고 어디로 가라는 거냐"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
5월에 코로나19 감염병으로 고생하신 하순이(여, 가명) 어르신은 그때를 회상하면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걸렸을 때 죽다 살아났어. 딸이 나 만나면 큰일 날까 봐 오지도 않고 배달시켜서 아파트 문에다 걸어놓고 전화만 했어. 많이 서운했는데 어쩌겠어. 지도 코로나 걸리면 안 되니까 그런 건데. 근데 경로당 친구들은 반찬 해다 놓고 가고 곰탕 끓여서 놓고 가고... 코로나가 다 낫고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서 밥을 못 먹었는데 친구들이 이것저것 해서 경로당에 가져와서 나를 먹인 거야... 그래서 몸이 많이 좋아져서 기력을 빨리 찾았어. 아니면 나는 지금까지 누워서 못 일어났을 것 같아..."
김삼순(여, 가명) 어르신은 "여기는 시골이라 시내에 나가려면 1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고,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없어서 시내 나갔다 오기도 힘들다"라며 "경로당에서 하는 요가랑 노래교실은 인생의 낙인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안 열었을 때 몸이 많이 아팠지. 이제 다시 경로당에 나가서 요가도 배우고 노래교실에 가서 손뼉 치고 노래도 불러서 신나고 여기저기 쑤시는 것도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겨울에 추운데 집에 있으면 웃풍도 있어서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은데 경로당에 나가면 거기는 따뜻하니까, 몸이 풀려서 어깨도 덜 아프고 좋지"라고 경로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로당이 어르신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있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어르신은 혼자 밥을 먹지 못해 영양결핍이 올 정도로 살이 빠졌다가 경로당에 다니고 나서야 사람들과 제대로 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시골에 살고 있어 이웃이나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파서 누워 있어도 모르고 설사 죽어도 아무도 몰랐을 텐데, 경로당에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걱정하며 집에 찾아와준다고 했다. 덕분에 아파도 기력을 찾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경로당에서 운영하는 요가와 체조, 노래교실 등은 어르신들에게 삶을 살아갈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해 가만히 있으면 안 쑤시는 곳이 없다는 한 어르신은 경로당에서 운영하는 노래, 요가, 체조교실 덕분에 아픔을 잊는다고 말했다.
한 어르신은 우울증이 와서 약을 먹어도 잠을 못 잘 때가 있는데, 낮에 경로당에 나가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다가 집으로 돌아와도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고 했다.
개중엔 집에서 냉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경로당에 가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따뜻한 물도잘 나와서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 자살률 1위' 불명예 벗으려면
정부는 이번 예산 삭감에 대해 지난 9월 22일 '정책브리핑'을 통해 "(삭감의) 가장 큰 이유는 해당 예산이 낮은 실집행률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통계를 확인해보면 해당 사업의 실집행률은 5년 평균 90% 정도였다. 예산을 배정했음에도 매년 10% 정도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3년도 해당 사업의 예산이 올해보다 5% 감액되는 건 사실이지만 앞서 확인한 실집행률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실질적으로 개별 경로당이 받는 지원 규모는 올해와 동일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2년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로당의 문을 닫은 적이 많아 예산 자체를 집행할 수 없었다. 코로나란 특수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감안하지 않고 예산 삭감에 나선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올해 들어 물가가 급상승하고 있고 최근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모두 인상돼 기존의 예산으로는 경로당을 코로나 이전처럼 운영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사람의 마음과 관심으로 운영되는 곳.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고, 아직 우리만의 '정'이라는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바로 '경로당'이다. 요즘 도시에선 앞집 혹은 옆집과 인사 한 번 나누지 않는 이들도 많다. 서로 문을 잠그고 생활하기에, 사람이 죽어도 최소 일주일 이상 썩은 냄새가 나야만 신고를 하고 문을 열어보는 등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특히 어르신들에겐 사람과 사람이 모여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물어주는 그런 곳이 거의 없다. 경로당 이외에는 말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2년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무려 2010년부터 기록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그로인해 가족모임 등이 줄어들면서 노인 우울증도 늘어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신호가 오고 있는 것이다. 노인 자살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 더욱이 1955년~1963년에 태어난 베이붐세대가 노인인구로 진입하고 있기에, 이 문제는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노인인구 증가와 저출산의 가속화... 변해가는 인구구조 속에서 노인문제는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이는 경로당 예산 삭감 문제를 단순히 냉난방비와 양곡비를 줄이는 차원으로 봐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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