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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전교 1등' 엘리트 의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일산백송 2020. 9. 23. 19:27
환자는 '전교 1등' 엘리트 의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혜정
입력 2020.09.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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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만난 의사와 한국 의사의 차이점.. 소통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한 이유
[이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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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능후 장관 서명식 참석 가로막은 전공의들 정부 합의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합의서에 서약하지 못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합의 장소인 서울 퇴계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을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난 한국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주 의사를 만나야 했었다. 그들의 치료 능력과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환자가 전교에서 1등한 엘리트 의사를 원할까? 내 경험상 대답은 '아니요'다.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가 언제나 의사의 의료적 시술이나 치료, 또는 기술이 뛰어난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내원자에게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듣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전문가에게 안내만 제대로 해줘도 되는 경우도 있다. 증상을 지닌 환자이기 전에 존엄을 지닌 한 인간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만 가슴에 품고 환자를 대해도,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는 친밀해지고 정서적/심리적인 지원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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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에 귀기울일 의사를 만나려면...

만 3살이 넘어 아이의 발달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발달이 다른 아이를 처음 접하는 대다수의 엄마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디를 찾아가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누구부터 만나야 하는지 도통 아는 것이 없었다. 내 주변에 장애를 지닌 친구 한 명 없다는 사실이 너무 막막했다.

"엄마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니에요?"
"아이가 천재라도 되길 원하는 거예요?"

수많은 날을 하얗게 지새웠다. 백 번 아니 '천 번의 망설임'이라고 말해도 부족하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집 근처 소아과를 몇 군데 방문했다. 언어 구사와 신체운동 능력처럼 눈에 보이는 발달의 증거만을 보고, 의사들은 엄마인 나를 의심하고 판단했다. 모욕감과 수치심에 집에 와서 눈물 바가지를 쏟아냈다. 졸지에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길 바라다 못해, 아이의 장애를 원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얘기에 귀기울일 의사를 만나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병원 순례를 해야 할까?' 그 후로 다시는 아이의 발달 문제로 한국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차라리 나 혼자 인터넷을 검색하고 닥치는 대로 장애 분야 관련 책들을 공부하는 게 속이 편했다. 환자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소통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쓰는 책이 오죽할까 싶어 웬만하면 영어 원서 책을 찾아 읽었다. 다행히 새로운 분야 공부를 좋아했고, 고맙게도 영어 서적도 대충 읽을 수 있었다.

호주의 멜버른에 정착한 후, 이곳의 시스템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고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던 아이를 집 근처 공립학교에 입학시키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자리잡게 하느라 분주했다.

"나에겐 특별한 문제가 보이지 않네요. 그래도 부모가 걱정된다면 발달 전문가를 만나 봐야죠."

20여 분 아이와 얘기도 해보고, 부모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한 후에 호주 GP(General Practitioner, 한국의 1차 진료 기관으로 GP의 의뢰서가 있어야 상위 진료를 받을 수 있음)가 답했다. 이걸로 충분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호주 GP의 말에 한국 의사들에게서 받은 상처와 불신이 치유됐다.

얼마 전 한국 의사들의 집단 의료 거부 사태가 발생하자 소셜미디어상에서 한국 의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증언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과잉진료, 과잉처방, 협박에 가깝게 들리는 불안을 조장하는 표현, 환자와 대화할 줄 모르는 권위적인 태도 등 주로 의사의 윤리적인 면에 대한 성토이다. 한국에 살면서 내가 경험한 불쾌한 기억들이 단지 나만의 몫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국 의료시스템에 익숙한 이민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호주 의료시스템의 충격을 겪어야 한다. 내가 가장 놀란 지점은 한국에서는 간호사가 하던 역할의 대부분을 호주에서는 의사가 직접 한다는 점이다. 예약 시간에 맞춰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의사가 직접 나와 환자를 맞고 진료실로 안내한다. 진료실은 오직 환자와 의사만의 공간이고 진료가 끝난 후 배웅도 의사의 몫이다. 예약제가 자리 잡은 덕분에 환자들이 몰리지 않아 병원은 언제나 한적하고 평화롭다.

이민 초기에는 짜증도 났다. 한국이라면 한 번 방문(onestop)해서 다 처리해 줄 일도 호주에서는 두세 번 각기 다른 의료 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호주의 2, 3차 병원은 환자를 직접 유치하는 방식이 아닌 동료 의사들(GP)이 써준 의뢰서에 따라 환자를 받는 방식이다. 그래서 호주에서 좋은 의사 조건에는 환자에게 잘 맞는 타의료인에게 의뢰서를 써주는 항목이 추가된다.

집 근처 동네 의원(GP)과 상위 병원의 전문의는 한 환자를 두고 '의뢰서-진료 후 결과 보고'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 공조한다. 예로 GP가 아동발달 전문의를 의뢰해줬다면, 아동발달전문의는 아이를 면담하고 진료한 후의 결과를 GP에게 보내 아이를 함께 이해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GP가 해결할 수 있는 진료나 치료 등은 굳이 전문의를 통하지 않고 GP가 담당하도록 서로 소통한다. 자연스럽게 주치의 개념이 형성되고 의사 간 경쟁이 줄어드는 구조다.

내가 이해한 호주의 의료시스템은 환자와 의료진, 의료진 간에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며 공공의 기능을 감당한다. 이때 환자의 권리와 함께 의료인이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양쪽을 보호하기도 한다. 호주 의사는 한국 의사처럼 환자 유치 경쟁을 할 필요가 없고, 새로운 첨단기기 도입 경쟁이나 병원의 확장과 인테리어 등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구조다. 상황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호주의 의사들이 보통 GP는 환자 한 명당 15분, 아동 발달 관련 전문의는 한 시간 간격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는 이유다.

"혹시 더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게 있나요?"

질문 많은 환자에게 한참 동안 답한 호주 의사들은 또 묻는다. 한국에서 '3분 진료'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자세, 의사에게 질문 한 번 하려면 눈치를 보며 적절한 타이밍을 치고 들어가야 하는 고난도 기술들은 쓸모없는 능력이 되었다.

소통할 줄 아는 의사에 대한 믿음

호주에 산다고 해서 마냥 의사들의 진료에 만족하고, 호주의 의사들은 언제나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완벽한 시술과 수술을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GP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기도 하고, 더 좋은 전문의를 찾아 수소문하고, 빠른 치료를 받기 위해 사보험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도 호주의 의료시스템에 큰 불만이 없는 이유는, 소통할 줄 아는 의사가 나를 진료할 것이란 믿음, 상위 진료가 필요하다면 나에게 잘 맞는 전문의를 의뢰해 줄 것이란 신뢰, 나를 환자이기 전에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윤리를 갖춘 의사들을 만난다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 호주, 중국, 영국, 베트남, 인도 등 호주에 살면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분야별로, 상태에 따라, 영어 능력을 고려해서 선택한다. 얼마 전 부인과 관련한 초음파 검사 의뢰서를 받으러 한국인 GP를 찾아가서 요청했다.

"부탁이 있는데요,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의뢰서 써주세요." 의사가 미소 지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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