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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조는 왜 황제에 오르지 않았는가

일산백송 2014. 6. 28. 14:45

조조의 일생을 보면, 그 자신이 어떻게 말하더라도, 그는 스스로 황제를 향한 길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갔다. 만일 건안원년(196년)전의 조조는 이 측면의 노력이 그저 조용히 기초를 준비하는 것이었다면, 건안원년부터는 아주 튼튼하고 힘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건안원년8월, 조조는 친히 낙양으로 가서 한헌제를 배알한다. 그리고는 한헌제를 데리고 허창(許昌)으로 천도한다. 헌제는 그의 수중의 괴뢰가 되었고, 에이스카드가 되었다. 그리고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의 우세를 확보하였다. 헌제는 조조를 대장군, 무평후(武平候)에 임명했다. 그러나, 원소가 불만을 가지자, 조조는 대장군의 직위를 원소에게 양보하고 스스로 사공(司空)의 자리에 앉고,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된다. 이때부터 조조는 사실상 조정을 장악하게 된다. 조조의 실력이 커짐에 따라, 조조의 조정에 대한 장악력도 강화되고, 헌제는 점점 더 허수아비가 되었다.

 

건안22년(217년) 4월, 한헌제는 명을 내려 조조로 하여금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정기(旌旗)를 사용하도록 하고, 외출시에는 황제처럼 좌우에서 엄밀하게 경계하고, 행인들이 통행할 수 없도록 하였다. 5월에는 조조가 제후로서의 궁전인 풍궁을 건립한다. 6월, 조조는 군사 화흠을 어사대부에 임명한다., 10월, 한헌제는 명을 내려 조조에게 천자와 마찬가지로 모자에 12근의 옥구슬을 달 수 있도록 하고, 전용으로 만든 금은거(金銀車)를 사용하고, 6마리 말이 끌게 한다. 동시에 장자인 오관중랑장 조비를 위국태자에 임명한다.

 

이처럼, 조조는 황제위를 빼앗고,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황제에 이르는 길에서 거의 종점에 다다른 것이다. 조조는 일찌감치 조정의 일체 대권을 장악해서, 스스로 실제상의 황제가 되었고, 형식적으로도 황제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조조가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것은 그저 황제라는 칭호에 불과했다.

 

사실상, 조조의 한황실을 대체하겠다는 의도는 일끼지 명확하였는데, 왜 죽을 때까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 그 한 걸음을 아들에게 남겨두었을까? 조조는 왜 스스로 황제라는 칭호를 갖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손권은 조조에게 황제가 되라고 청했다. 그러나, 손권이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다. 먼저, 손권은 이렇게 하는 것이 조조의 신임을 얻고, 오나라와 위나라간의 화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전심전력을 다해서 촉을 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양양의 전투에서 손권은 유비의 수중에서 형주를 빼앗기 위하여 배후에서 관우를 습격했고, 이것은 조조를 크게 도운게 되었지만, 유비에게는 죄를 지었다. 오. 촉간의 10년에 걸친 연맹관계도 이로써 끝난 것이다. 이 때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조조와의 갈등을 해소해야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앞뒤로 적을 맞이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사실 손권은 조조가 진짜 황제로 칭한다면, 위나라내에서도 한을 옹호하는 파에서 강렬하게 반대할 것으로 보았고, 조조가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은 오나라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킬 것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서 손권은 그렇게 권한 것이었고, 조조는 그 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둘째, 당시의 형세로 보더라도, 함부로 황제를 칭하면, 확실히 정적과 한을 옹호하는 세력들에게 여론상의 빌미를 줄 수 있었고, 스스로 정치적으로 피동적인 입장에 처할 수 있었다. 조조의 일생을 보면 내부의 반대와 반란은 거의 모두 그가 위공(魏公), 위왕(魏王)에 오를때 발생했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증명이다. 그러므로 계속 한헌제를 놔두는 것이 한을 옹호하는 파를 다독거리고, 내부를 공고히 하는 방법이었으며, 그 작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셋째, 건안15년(210년)부터, 조조는 계속 "본뜻을 명확히 밝혀 왔다" 자기는 절대로 한나라를 대체해서 별도로 나라를 만들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아주 간절하게 말했다. 이것을 거의 10년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생각을 바꾸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명예와 명성은 아주 불리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냥 예전대로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넷째, 더 중요한 것은 조조가 아주 실질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권을 장악한다면 허명은 없어도 좋다는 것이다.

 

다섯째, 건안24년(219년)에 조조는 이미 65세였다. 나이도 많았고, 스스로 남은 생이 얼마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였다. 이것이 아마도 황제를 칭하지 않은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조는 황제에 오르지 않은 것은 전면적으로 비교형량한 후에 내린 명석한 결론이었고, 주도면밀하고 멀리 내다보는 책략이었다.

출처 : 중국,북경,장안가에서
글쓴이 : 중은우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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